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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60년대 한국 멜로영화 가운데 가장 음울한 정서를 투영하고 있는 이만희의 <휴일>(1968)은 어쩌면 복잡다단했던 60년대 한국 사회의 발견하지 못한 구멍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2005년에서야 아카이브 창고에서 발견되어 최초로 공개됨으로써, 비로소 한국영화사를 되짚는 중요한 계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구멍은 ‘발견’이어서 다행이지만, 안타까운 시대의 산물임을 증명할 수밖에 없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더 더욱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영화평론가 (故)이영일 선생은 “한국의 1950년대와 60년대가 역사적 대혼란상을 겪은 시기이며, 해방, 모럴(moral)의 신구교체등 생활 자체가 완전히 뒤집힌 시기였고 그에 따라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제기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영화의 부흥이 있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 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남아있는 50년대, 60년대 한국 영화들을 살펴보면 50년대와 60년대의 다양성, 기술력 역시 매순간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가족)멜로 드라마의 경우를 보면 50년대에는 <자유부인>과 같은 멜로가 있었는가 하면 60년대에는 <로맨스 그레이> <로맨스 빠빠> <삼등과장> <박서방> 등과 같은 화합을 목적으로 한 멜로드라마, 기본적으로 신파성을 담지한 <어느 여배우의 고백> <미워도 다시 한번>역시 멜로의 한 축을 대표하고 있다. 이러한 멜로(군)영화들 가운데 두드러지게 다른 축을 형성하는(혹은 상실의 시대임을 자인하는) 60년대 후반의 독보적인 멜로영화 <휴일>은 당대의 한국영화의 무의식적인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가 당시로서는 어떤 모럴의 통제에 의해서든, 시대적 검열에 의해서든 공개될 수 없었던 환경에서 등장했었기 때문이다.(이 영화는 당시 후반작업이 끝나 완성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검열에 의해 끝내 개봉되지 못했다)

<휴일>은 제목 그대로 어느 ‘일요일’ 하루 동안 벌어진 남녀의 이야기다. 주인공 허욱(신성일)은 일요일의 어느 날 연인 ‘지연(전지연)’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걷다가 충동적으로 새점을 본다. 새가 고른 종이에는 “여자를 가까이 마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크게 손재를 볼 것이니, 몸가짐에 유의하도록 해라”라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적혀있다. 허욱은 이미 손해 봤다며 택시를 잡아 탄다. 이때 허욱이 택시를 잡는 장면은 평범치 않다. 그는 구겨진 지폐 조각을 택시운전사에게 내밀었다가 거부를 당하고, 다음 택시를 탄다. 허욱은 택시에 타라는 운전사의 말에 “지금 몇시나 됐소?”라 묻는다. 택시 운전사는 “10시 17분 전입니다. 늦었는데 타시죠”라 답한다. 이 말에 허욱은 바로 택시에 올라 탄다. 여기서 택시 운전사가 말하는 ‘늦었는데’ 란 무슨 의미일까. 허욱이 어디를 가려는지, 혹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간밤에 재미 많이 보신 모양이죠? 몹시 피로한 얼굴입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피곤한 얼굴들입니다. 일요일에 만나는 사람들은 더욱 피로한 얼굴들이죠” 허욱이 택시에 타자 마자 내뱉은 택시 운전기사의 이러한 말들은 새점쟁이의 점과 맞물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일요일(휴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온전한 의미로서의 휴일이 아닌 오히려 더 피곤한 날임을 그리고 몸가짐에 주의해야 하는 등의 날임을 상기시켜준다.

두 사람의 직설화법은 마치 운명론처럼 영화의 분위기를 처음부터 제압한다. 게다가 새점을 보고, 택시에 타는 순간의 허욱의 태도는 철저히 타의에 의한 충동적(우발적) 행위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허욱은 새점쟁이와 택시운전기사의 말에 개의치 않아 한다. 그의 무심한 행동들은 조만간 만나게 될 지연과의 만남에서도 다르지 않다. 커피값이 없어 무심히 공원을 걸을 수밖에 없고, 목적없는 만남인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새 임신 6개월이라는 지연의 걱정은 허욱으로 하여금 돈을 꾸러 돌아다닐 수밖에 없게끔 한다. 지연은 허욱이 돈을 마련해 올 때까지 심하게 몰아치는 모래 바람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허욱은 돈을 꾸러 친구들을 찾아간다. 술을 마시거나, 갓 만난 여자와 정사를 벌이고, 심심해서 목욕을 6번이나 하는 친구들에게 허욱은 정중하게 돈 빌리기를 포기한다. 결국 친구의 돈을 훔친 그는 지연과 산부인과에 가지만, 의사로부터 지연의 몸상태가 안 좋아 오히려 수술을 권유받지만, 그 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영화상에서는 생략되어 있지만 수술을 선택한 지연과의 ‘합의’는 온데 간데 없고, 병원에서 나온 허욱이 술집에 가서 낯선 여자와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점프컷 된다.

<휴일>은 당대를 특별히 60년대로 본다고 혹은 또 다른 시기로 가정한다 해도, 별다를 바 없는(단지 근대화가 된지 얼마 안 된 현대사회로 보아도) 시간성을 가지고 있다. 휴일이라 해서 신나지도 않고, 여유롭지도 않고, 마냥 쉬기에는 너무 피곤한 날 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어떤 인물들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거기다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주인공 허욱이라는 캐릭터다. 애인을 수술대에 올려놓고도 혼자 빠져나와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그리고 다른 여자와 충동적인 만남을 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이 영화에서는 굳이 주인공에게서 찾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기계적 인간의 삶이 가라앉히는 침전물과 같은 ‘휴일’이라는 상징이 오롯이 당대를 점찍는 메타포일 수 있다면,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시대의 우울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이만희 감독의 멜로영화들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수적으로는 적지만 강렬한 성과를 이룬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멜로 영화의 대표작 <귀로>(1967) <만추>(1967) <삼포가는 길>(1975) 등은 분명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미학적 성취를 짚는 데 있어 빼놓지 말아야 할 작품들이다. 특히 위의 멜로영화를 포함해 <휴일>까지 묶어보면 이만희감독이 추구했던 멜로영화의 공통된 특성들을 파악할 수가 있다.

네 영화는 모두 전형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개인의 감수성을 다룬다. 즉 당대의 멜로드라마에서 항상 장애물로 걸리는 것은 인물과 인물간의 가족(가부장을 포함한)문제였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이 붙는 멜로드라마로 순수한 ‘멜로’코드를 드러내기 보다는 혈연문제가 항상 엮어짐으로써 갈등과 화합이 주요한 내러티브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만희의 언급한 네 편의 영화는 철저히 혈연문제(가족)의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 멜로 영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그의 영화에서 신상옥감독 등이 보여줬던 가족이데올로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멜로장르에서 가족이 배제되었다면, 이만희는 그만큼 ‘장르’인식을 냉정히 하려고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멜로코드는 더욱 오롯이 남녀관계에 집중된다. 남녀는(혹은 부부는) 각기 개인적인 사연이나 상실감을 안고 있다. 그들은 ‘달콤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만희 영화에서 달콤한 사랑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절망에서부터 영화를 풀어나간다.

<휴일>은 그런 절망이 가장 극단적으로 반영된 영화다. 주인공은 자신의 애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다. 지연을 만나기 전에 방황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어찌해야 할 지 몰라 길을 걸어간다. 단지 변한 것은 지연이 죽었다는 것. 영화는 명백하게 오프닝과 후반부에 종을 울려댄다. 종이 울려 정신차려보니 자신은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애무를 하고 있다. 그제서야 그는 지연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절망은 주인공 허욱에게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결정된 운명론, 현대사회의 우울, 방황하는 개인, 금전 이것들이 <휴일>의 저면에 깔려있는 절망의 정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결코 ‘멜로’라 칭하기 어려울 만큼 비관주의 코드로 일관되어 있다. 암묵적으로 동의했지만, 결코 들춰낼 수는 없었던 소시민들의 우울은 ‘휴일’에 반대로 사랑 역시도 보존할 수 없는 삶 속에 함몰 되었었다. <휴일>을 통해 당대를 메울 수 있는 힘은, 우리가 그 구멍을, 상실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by vovov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