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이만희 감독의 <귀로>는 6.25전쟁 당시 부상당한 상이용사 최동우(김진규)와 그의 부인 지연(문정숙)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게 되는 젊은 남자 강욱(김정철)을 둘러싼 멜로드라마다.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하반신마비가 된 동우는 부인 지연과 부부관계를 맺지 못한다. 일간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동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아 매일매일 이야기전개를 고민한다. 부인 지연은 동우의 소설이 완성되는 족족 인천의 자택에서 서울 신문사까지 원고를 배달한다. 성불구 남편은 자신의 육체적 콤플렉스를 전쟁의 기억과 더불어 극복하지 못한다. 지연은 그런 남편의 비위를 맞춰가며 불안한 부부관계를 이어간다. 신문사를 드나들며 자신에게 접근한 강욱의 호의에 호감을 느낀 지연은 남편(가정)과 강욱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실 <귀로>에는 하나로 범주화하기 힘든 여러 이질적인 코드들이 부유하고 있다. 남편의 성불능, 혼외정사와 같은 멜로드라마적 스토리에, 심리적 스릴러물의 코드인 삐걱거리는 계단, 비밀을 숨긴 시선과 돌발적인 총성이 갖는 서스펜스와, “픽션을 모방하는 삶 혹은 삶을 모방하는 픽션”이라는 모더니즘 영화의 경향까지 함께 웅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느슨한 격자 모양, 혹은 미장아빔 식의 거울 구조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영화적 현실은 영화 속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고, 그 소설은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김소영)
이러한 다양한 코드들의 함유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50년대 후반, 그리고 60년대 전반에 걸쳐서 드러났던 ‘전통’과 ‘모던’의 충돌과 갈등 양상에 대해 직설화법은 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대부분의 신파조 영화들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이 영화에서 지연이 중심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남편이 작성한 원고를 배달하는 일이다. 부부의 집은 2층 양옥집이고 아이도 없는 상태에서 가정부 아주머니가 상주하고 있다. 지연은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남편을 보살피는 역할을 일정부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가사노동은 가정부가 하는 것이다. 철저히 그녀는 가사노동에서 배제되어 있다. 신문사에 출퇴근할 때 역시 그녀는 매우 모던한 스타일의 정장을 갖춰 입고 클러치백을 든 채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이동한다. 전통적인 부인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강기자와 가까워지고 멀어질 때 역시 지하철은 둘의 긴장관계를 점화시키는 현대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러한 이동 상황 속에서 그녀는 명백하게 파노라마적 시각을 매일 체험하고, 산책자로서 도시를 활보한다. 가정 내에서는 노동하지 않는 부인으로서의 역할, 가정 밖에서는 연애하는 여자로서의 유부녀인 지연은 점점 두 역할 사이에서 전통적 여성상의 압박감을 느낀다. 어쨌든 이러한 관계는 남편 동욱의 소설에서 복선처럼 구체화되어 드러나게 되고, 지연의 상황을 예측한 듯 동욱은 지연의 외도를 참지 못해 집에서 키우는 개를 총을 쏴 죽인다.
이 영화에서 전통과 모던의 충돌은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동욱의 행동은 유약한 남성 (전통)주체가 종국엔 직접적인 서사를 이끌 수 없는 양상으로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고 명시한다. 성불구인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부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동우는 그런 마음을 자신의 소설 내부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외도를 선택하는 허구의 주체와, 실제 주체를 수용하는 데서 그는 결코 허구와 현실사이의 합리적 구분을 행하지 못하는 (전쟁을 겪은) 연약한 남성주체다. 그리고 지연은 전통과 모던 양쪽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결정내리지 못한 채 침대 위에 누워있을 뿐이다. 그리고 죽음을 택한다. 지연의 선택은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모더니즘 의 한 축이다. 기본적으로 현대사회의 불안이라든가 우울증의 정서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안토니오니의 영화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특유한 정서구조와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귀로>의 해체된 가족 구성 ― 즉 남편과 부인만이 존재하는 ― 은 남편과 부인에게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난 멜로드라마를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운 기혼 여성은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전통적 여성상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지연이 남편과 강욱 사이에서 강욱을 택할 수 없음은, 불구자이지만 남편이라는 기표를 쉬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에게 돌아가 눈물 흘리며 용서를 구하는 대신 그녀는 침대에 누워 죽음을 택한다. 그 침대에는 남편은 없다. 그녀만 있을 뿐이다. 연약한 주체이지만 선택만큼은(그것이 어찌되었든)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 ‘고독한 여심’ 은 ‘방황’이라는 코드를 가진 기혼여성의 마지막 힘일지도 모른다(개봉 당시 한 신문은 이 영화를 ‘고독한 여심의 영상’ 이라고 표현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불안의 증후 가운데, 이 부부관계의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전쟁’에서 비롯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남편 동우라는 인물은 끊임없이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 불안(male anxiety) 증후의 전형인 남성성의 위기를 드러낸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글에서 정성호는 “한국전쟁은 전쟁 희생자의 양산, 물적 파괴와 함께 남한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구조의 변혁을 가져왔다. 전쟁은 극심한 인구변동을 낳았고 이에 따라 촌락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봉건적 질서와 가치들이 함께 붕괴하였다. 아울러 전쟁의 극단적인 폭력 앞에서 개인이 가진 경제적 신분적 정체성들이 정치적 선택에 따라 극단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통과 과거의 가치가 무너지고 그 대신 미국문화가 빠르게 그 빈 공간을 메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1960년대 한국사회는 전쟁으로 인해 가부장제의 위기 뿐만 아니라 남성 신체의 위기까지 불러오는 기존(전통)질서의 혼돈의 시기이다.
예를 들어 조긍하의 <육체의 고백>(1964)에서 한국전쟁 직후 미군 주둔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한국 여성의 양상은 수적으로 부족한 남성 가부장의 자리를 대신한다.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모성의 주체인 세 딸의 어머니는 식민지적 근대화의 희생자이자 가부장을 대신하는 대체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혹은 그 혼돈의 시기에서 남성성의 위기는 새롭게 부상하는 시대의 불안이다. 그리고 여성, 여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다. <귀로>에서 시대의 여성상에 대한 대립적 견해를 오롯이 품고 있는 지연은 바로 남성 불안의 반대지점에 우뚝 서 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명시하는 것은 ‘한국전쟁을 겪은 남성의 부상’이다. 부상당한 동우는 결코 자신의 성불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전쟁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대신 부동(不動)은 동우에게 ‘작가’라는 역할로서 대신할 미연의 장치인지도 모른다.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이 유약한 남성이 겪어낸 전장의 기억은 끊임없는 환청으로 그를 괴롭힌다. 그런데 지연이 그러한 남편의 트라우마까지 보듬기는 아무래도 버겁다.
<귀로>는 60년대를 경유하는 (전통과 모던이라는) 충돌적 대중심리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다. 완전할 수 없는 부부관계를 통해 상징된 연약한 도시(여성)주체, 그리고 전쟁을 극복하지 못한 남성의 불안은 전적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의 맥락을 거스르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도시를 배회하던 여성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by vovovd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