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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또 조폭들의 이야기인가 보다. 또 싸움 잘하는 두 명의 남정네들이 폼을 잡는가보구나. 처음엔 그렇게 언뜻 넘어갔었다. 그러나 추석과 그 다음 주까지 예매율이 높은 것을 보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은 데다, 지인들이 알려준 줄거리는 큰 관심을 몰고 왔다. 게다가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썼다는 말까지 듣고 나니 궁금증을 참을 수 없게 되어 결국 영화관을 찾았고, 이게 웬걸 <영화는 영화다>는 또 조폭 영화냐고 지나쳐 버리기엔 서운할 만한 영화였다.

<영화는 영화다>는 한 축으로 2000년대에 반복되는 조폭이미지를 따라간다. 리얼한 세계를 그리겠다는 말 뒤에는 곧잘 조폭들의 영화이미지가 맞붙었고, 그 결말은 좌절된 꿈과 배신을 확인하고 죽어가는 주인공을 목격하는 것이었다. 조폭들의 삶을 통해 현대의 가혹한 현실을 비추는 설정 자체는 근래에 여러 번 반복되어 왔다. 이 영화 역시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는 삶과 그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보여주며, 결국 발을 헛디뎌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다>는 <비열한 거리>에 이어 조폭을 다루는 한국영화들에 관한 질문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더 재미있어진다. 조폭영화들은 자기 코드를 반복 강조하고 확장하기를 넘어서 이제 자기반성 영화까지 낳고 있는 것일까? <비열한 거리>는 조폭의 이야기를 날 것이라고 소개하는 대신,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우리 조폭 영화들에 대한 반성을 시도했다. 그 뒤를 잇는 조폭영화 <영화는 영화다>는 보다 직설적으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 묻기에 나선다.

이강패(소지섭)는 깡패다. 장수타(강지환) 역시 깡패다. 강패가 현실 세계의 깡패라면, 수타는 영화 속에서 깡패다. 그런데 강패에 따르면 수타는 영화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현실에서도 영화에서처럼 폼을 잡고 산다. 그래서 수타는 영화에서처럼 쉽게 사람을 때려눕히고 가오를 잡는다. 한편 한 때 꿈이 영화배우였다는 강패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으며 남몰래 극장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 둘이 처음 만나서 건네는 인사는 서로를 향한 비수와도 같다. 강패는 수타에게 ‘영화배우는 인생 잘 만나서 흉내만 내고 사는 것’이라 비꼬고, 수타는 강패에게 ‘한 번 사는 인생 왜 그렇게 사느냐’며 시비를 건다. 영화는 이 둘의 긴장을 담는데 영화배우 수타는 깡패 강패에게 계속 밀린다. 위의 대사만 해도, 수타는 대사가 입에 안 붙자 강패의 말을 되씹어 보며 감을 찾으려 하지만, 강패는 위의 수타의 말이 영화 속 대본에 있던 대사라는 것을 발견하고 웃긴 놈이라고 코웃음 치는 정도일 뿐이다. 강패의 말이 현실을 뚫고 나왔다면 수타의 말은 대본에 쓰인 것일 뿐이다. 그렇게 현실은 영화를 압도하지만, 수타는 강패와의 결전에서 이기기 위해 그를 좇는다.
그런데 강패 역시 자기 안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현실의 속도를 늦추고 싶고, 바꿔보고도 싶지만 그것은 결국 좌절되고 만다. 강패는 수타의 영화 대사를 따라하며 박사장이라는 배신자를 살려주는데 그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죽다 살아난다. 일찍이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던 강패가 뒤늦게 영화를 돌아 봤을 때 그가 대면하고 온 것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강패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묵직한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로부터 숨기고 흐느낀다.

영화는 거슬리거나 허술한 점을 보이기도 한다. 미나와 강패가 관계를 진전시키는 과정을 보자. 미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강패를 보고, 다음 영화 현장에서의 만남 때 기습 키스를 당한다. 그리고 클럽에서 춤을 추던 미나는 추태를 부리는 남자를 떼어내기 위해 강패를 불러낸다. 그 다음은 영화 현장에서 강간장면을 촬영할 때 강패가 미나를 진짜 강간하듯 촬영한 장면이다. 그리고 뒤이어 미나와 강패가 함께 나오는 장면은 미나가 촬영 중에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모르고 강패가 미나를 구하려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미나는 강패와 그 해변을 산책하고, 강패가 지난 촬영 때 심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하자 미나는 그에게 키스를 한다. 이 장면들이 미나가 강패를 좋아하게 된 전체 만남이자 과정이다. 이 장면들을 이어보면 그 연결은 전형적인 남성의 폭력적 제스처들과 그에 이끌리는 여성이라는 관계 를 보여준다. 게다가 그런 연결을 제하고서도 에피소드 각각의 표현들이 진부하다. 여기에 미나라는 인물의 감정이 설 자리는 없다.
또 강패가 미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 역시 조금은 진부하게 표현되고 있다. 맨 처음 키스했을 때 미나의 당찬 태도, 클럽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미나와 그것을 보는 강패 등이 그 장면들이다. 영화 내 이런 몇몇 인상들의 선택과 조절 등에서 약간의 투박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이 영화에 결정적인 누가 되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비열한 거리>처럼 촘촘한 이야기를 가지는 대신,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내뱉고, 그들의 대결은 처음부터 팽팽하기만 하다.
현실은 현실일 뿐 영화가 될 수 없어 강패의 영화로의 외도는 피범벅된 얼굴과 악마 같은 미소로 끝난다. 강패가 미나에게서 그녀가 수타와 잠시 사귀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에 이어 둘이 함께 있는 장면은 영화 촬영 속 강간 장면이다. 강패가 유심히 모니터하던 ‘네가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여자까지도 가져보고 싶었다’는 수타의 영화 속 대사처럼, 강패는 수타가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보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강패는 영화가 이기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렇게 환상이 되어 현실을 덮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히려 영화가 늘 승리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꿈이 영화 속에만 존재한다면 말이다.

맨 처음 강패를 영화에 섭외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 수타의 옷은 새하얀 색이었다. 이는 강패와 명백하게 구별되는 색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무리 단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수타의 옷은 회색에 가까운 색이다. 그때 수타는 흰색에서 회색으로, 강패의 색에 좀 더 가까워져 있다. 수타의 현실 역시 갈 때까지 가버려서 그는 믿던 매니저에게 배신을 당하고, 강패의 똘마니에게 굴욕을 당하며, 재정 상태도 엉망이고, 자존심도 구겼다. 이제 그에게도 강패와의 싸움은 실전이다.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버텨내야할 마지막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영화는 살아남아야 하는 실전이다. 바로 그 싸움에서 수타와 강패가 서있는 곳은 갯벌이다. 그들은 이리저리 구르면서 자기 색을 잃는다. 누가 누군지도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렇게 수타와 강패가 가까워졌는가 싶었을 때 강패는 다시 앞서나간다. 이때 옆으로 서서 하얀 얼굴에 눈물이 맺힌 눈으로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강패를 바라보는 수타와, 검붉은 피로 뒤덮인 얼굴을 들이밀며 흔들림 없는 눈으로 수타를 바라보는 강패는, 명확히 대비된다. 그렇게 수타는 강패를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강패는 수타를 꿈꿀 수 없으며, 현실은 영화를 다시 멀리 떼어놓는다.

계속되는 수타/강패 간 긴장과, 영화/현실 사이 긴장 속에서 그 둘은 서로를 원해 보지만 닿지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와 현실은 서로 마주보며 동등하게 거리 해야 할 텐데, 역시 무게는 강패에게 실린다.
많은 영화들이 조폭을 소재로 현실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보고자 한다. 희극에서는 서민적인 정서를 반영한 단순무식 하지만 의리와 가족애로 단단한 조폭들이, 비극에서는 충성심 넘치지만 가혹하게 배신당하는 조폭들이 현실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날 것’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러한 한국의 많은 조폭영화들에게 한 방을 먹인다. 이 영화는 영화가 손쉽게 현실을 따올 수 있다는 믿음을 의심한다. 단지 흉내만 내는 것으로 현실이 영화 속에 새겨질 수는 없다. 단지 조폭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강패의 마지막 눈빛은 영화의 손쉬운 믿음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타는 겁먹은 표정으로 지켜볼 수 있을 따름이지만, 강패가 수타에게 강제한 현실성과 마지막에 보여준 삶의 무게는 우리 어깨에 고스란히 얹힌다.
그만큼 마지막 장면에서 강패가 차 유리를 머리로 깨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웃는 모습이 섬뜩하다. 그 정지된 장면에서 수타가 겨우 따라잡은 강패는 또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는 것이다. 수타는 결국 강패를 다시 놓쳤다. 마지막 장면 강패의 시선은 감각적이고 강렬한 영상으로 말하는 김기덕 영화의 느낌을 이어간다. 김기덕의 색채가 묻어난 탓일까. 영화는 비루한 처지의 삶이 가진 진한 고통과 그에 맞먹는 에너지를 배신하지 않는다. 영화는 현실 앞에서 당황하고 구역질한다.

여기서 감독은 신중하게 고민을 이어간다. 둘의 정지된 프레임이 반반씩 붙어 하나의 회색빛 사진으로 바뀌고 나면, 그 사진이 약간 뒤로 빠지면서 텅 빈 관객석을 그려 넣은 사진'틀'이 드러난다. 영화는 수타와 강패를 다시 한 번 스크린 속으로 끌고 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강패 역시 스크린 위에 있음을 즉, 영화였음을 확인한다. 여기서 다시 둘은 하나의 색이 된다. 갯벌에서의 잿빛 싸움이 현실로 향했던 것과 반대로, 이번에 회색빛으로 섞여 들어간 둘은 자신들 모두가 영화임을 드러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 것은, 강패라는 현실과 마주하여 영화와 현실을 확인하는 영화 한편과, 강패라는 그 현실 또한 영화 속에서 보고되는 만큼 다시 한 번 더 현실과 거리두기 하고자 하는 영화가 한편이다. 영화는 영화다. 감독은 확신을 의심하는 자기 영화가 역으로 확신에 차버릴 수 있는 위험을 비켜가며, 영화와 현실이라는 질문을 지켜낸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기억해봐야 할 것은 우리가 보고 있던 자리에서의 또 한편의 영화이다. 그것은 앞의 영화들을 감싸고 있는 전체로서의 영화이고 그 전체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엔딩에 뜨는 관객석을 보고, 그래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씁쓸해 하거나, 반대로 그 사실에 안도하며 먼지를 툭툭 털고 가볍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를 압도하지만, 영화는 종종 삶을 비춘다. 우리가 본 <영화는 영화다>라는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를 찍으며 영화와 현실 사이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해 보지만 그 고민을 담은 전체 영화는 단지 그 간극만을 말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에는 현실만이 아니라 많은 바람들이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 사이사이에서 바람처럼 불어와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패는 영화배우가 되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강패가 영화를 꿈꾸는 것이 쉽게 이해되었다면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가끔 숨쉬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영화는 현실을 그리는데 미약하지만 대신 수타와 강패 모두를 함께 보여주고 질문하는 창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가 열어놓은 질문 속에서 우리 역시 질문을 받아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가끔 영화는 현실보다 더 크게 삶을 비추기도 한다고 해볼 수 있을 것이다. (gipsy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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