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바퀴벌레의 빠른 궤적은 매우 공포스럽다. 또한 가위에 눌려 꼼짝 못하고 보내야 하는 시간도 땀을 쏙 뺄 정도로 공포스럽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실체는 확인할 수 없이 등 뒤로 듣게 되는 소리들도 자주 오싹한 공포감을 주고는 한다. 예상할 수 있는 궤적을 벗어난 움직임, 가진 능력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사건, 시야에 확보되지 않는 것 등의 앞에서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이런 공포는 일종의 무력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을 뛰어넘는 어떤 활동이나 존재를 목격할 때, 그 무력감은 공포가 되는 것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이런 무력감을 매우 잘 활용한 영화이다. 영화는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효과적인 공포를 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무엇보다 돋보이는 공포로 만드는 것은, 이 영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공포를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매우 집약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소개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녀는 뚱뚱했었으며, 촌스러운 시골 출신에 어머니는 알콜중독자이다. 남자친구는 사회적 지위로 보나 가정환경으로 보나 자신보다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 사회의 대다수 평가 기준에서 변변찮은 점수를 받을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그러나 씩씩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있다. 현재의 그녀는 열심히 살을 빼서 예뻐졌고, 도시로 나와서 은행에 근무하고 있으며, 멋진 남자친구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은행에서 승진 후보에 올라 있으며 곧 그 노력을 보상받을지도 모를 중요한 때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그녀는 어떤 난관과 마주한다. 한 노파가 자신의 집을 담보로 한 대출금의 상환 기한을 늘려달라고 그녀의 창구에 와서 요청을 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물으러 상사에게 갔을 때, 그의 처사는 가히 위력적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러한 교묘한 압박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사는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그것은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어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좀 전에 남자친구와 그의 어머니가 통화하는 것을 들고 어머니가 그녀를 탐탁치 않아 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된 때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노파의 요청을 거절한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로 슬프고 옹졸한 어떤 선택을 보고 있다. 그것이 슬픈 이유는 그 선택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옹졸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어떤 종류의 이기적 삶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 우리는 또 하나의 슬프고 옹졸한 이기와 마주한다. 그것은 할머니가 크리스틴에게 퍼붓는 저주이다. 할머니와 주인공은 악다구니를 내며 한판 붙고, 할머니는 결국 그녀에게 저주의 주문을 거는데 성공한다. 노파는 굴욕감과 억울함에 떨며 사투 끝에 크리스틴에게 저주를 걸고 이내 죽고 만다. 은행은 여전히 질타조차 당하지 않고 건재하며 크리스틴이 그 이기의 책임을 다 뒤집어쓴다. 이 얼마나 옹졸하고 슬픈 복수인가.
그런데 그것은 어떤 종류의 필연적인 관계이자 전개이다. 노파는 영화 속 상황에서 그와는 다른 복수를, 즉 은행이라는 금융자본을 향한 복수를 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 관계 안에서 주인공이 노파의 요청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녀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삶의 그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연적이고 최선인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런 근원에 닿지 못한 악다구니들, 약하고 피해 입은 서로를 향해 상처 입히는 모습은 우리의 슬프고 옹졸한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우리의 모습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필연적인 전개를 따르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은 둘 다 밀려날 처지임에도 은행 창구를 경계로 서로가 대립하는 풍경은 끝없는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경계들, 대립들, 분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한편 크리스틴은 매우 낙관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현실감각 있고 씩씩하여 엄청난 저주의 공포나 스트레스도 다이어트를 위해 꾹꾹 참아왔던 아이스크림 통을 비우는 것으로 풀어버리고 다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녀는 결국 자신을 지옥으로 이끌 저주를 풀기 위해 기르던 고양이까지 제물로 바치고 노파를 또 한 번 희생타 삼아 살아남으려 하는데, 결론적으로는 그 노력도 끝내 실패하여 그녀는 예정대로 지옥으로 끌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수많은 공포 영화들이 그토록 전지전능한 무법자를 그려내어도 여주인공 한 명쯤은 기어이 살아남고야 말았는데, 누구보다도 현실적이며 강인한 크리스틴은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장르영화의 쾌감을 충분히 만끽시킴과 동시에 위의 실패에서 장르적 쾌감을 넘어서는 공포에 이른다. 그것은 우리 사회 속 어떤 경향이 무력감을 생산하는 지점에서 나오는 공포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낙관과 희망이 착각임이 드러날 때의 무력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촌구석의 한 소녀는 도시의 욕망을 취하고 이에 닿으려 애를 쓰지만 그것은 지옥행에 이른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패란 진정 슬픔과 좌절 등의 감정 상태를 훌쩍 넘어 삶이 끝장나고 죽음이 눈앞에 닥쳐온 공포일 것이다. 이 영화는 매우 정확하게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공포를 영화로 번역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는 것, 동정심을 발휘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 개인이라는 이기적 경계 짓기로도 충족되지 않는 끼어버린 상태는, 자기 삶의 궤적을 더 이상 예상하거나 능력으로 극복하거나 시야 속에서 통제할 수 있는 상태를 넘어 선 공포를 생산한다. 그 무력감을 이해했기에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공포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라는 창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영화는 그러한 무력감, 좌절, 혹은 실패 등 펼쳐지는 사건이 출발하는 선을 노출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틴이나 노파는 서로를 들여다보지 못할 것이지만, 관객은 크린스틴을 보거나 노파를 보거나 짠할 수 있다. 그리고 둘 간의 대립이 과도한 것임을 알 수도 있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섬세함은 우리가 또한 섬세하게 이 영화를 관찰한다면, 무력감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그 공포가 생성되는 곳을 볼 수 있게 시대가 생산하는 공포의 맥락을 이해하고 풀어내었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가장 칭찬(?) 받아야 할 것은 영화에서 공포가 시작되는 장소가 은행이라는 것, 그리고 그 주인공이 크리스틴 같은 배경 속에서 공포물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잘못된 경계와 대립과 분열일지라도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가능성을 무참히 짓밟는다. 살아가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결국 최대 악수가 되어 크리스틴을 덮쳐올 때, 그것은 우선 무력감과 공포를 동반할 것이다. 그럼 영화가 그 실패를 증거하고 거기에서 끝나버릴 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슨 수가 남을 수 있을까? 크리스틴이 지옥으로 가긴 했지만 영화는 크리스틴의 실수가 남자친구를 지옥으로 몰고 갈 것만 같은 불안감을 준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을 희생타 삼는 수들이 계속 최악의 악수들이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실제 우리의 삶의 궤적이고 아메리칸 드림이란 쫓아 쫓아가도 결국 지옥으로 향하는 착각의 꿈이라고 느낀다면, 결국 우리는 크리스틴이 어쩔 수 없었던 판단, 노파의 당연한 분노의 장면에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겠는가 하고 질문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어 짠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옹졸한 시대의 이기적 삶 형식이, 바로 오답 자체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볼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이 기회는 유쾌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에서 목격한 실패는 우선 아메리칸 드림에 실패하는 개개인의 고립된 좌절들이겠지만, 더 엄밀히 말하자면 이기적 삶의 형식이 맞이하는 좌절이고 무력함이기 때문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이렇게 실제 삶을 흔드는 무력감의 맥과 근원을 짚어내는 점에서는 섬세한 공포물이 되며, 덧붙여 그렇게 주어진 현실의 처절한 노출로 인해 현재 사회가 강요하는 삶 형식의 무력함을 목격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쾌한 드라마가 되는 풍부한 영화이고 즐거운 경험이다. (gipsymo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