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경 소규모 체인망으로 개봉했던 영화 <원스>는 볼만한 이들은 꽤들 봤을 것이다. 필자도 아주 최근 수원(사는곳)에 내려왔을 때 운좋게도 관람할수 있었고 많은 이들의 찬사를 확인할수 있었다.
영화는 음악이 주가 되는 영화이고 (그래서 어딘가에선 ‘뮤지컬영화’라고도) 사랑 이야기이고 젊은날의 초상이 담긴 아일랜드 작품이다. 그런데 <원스>는 자세히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스토리에 극적 반전도 없는데 어떻게 유럽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을까. 이 칼럼에서는 그 점을 주로 생각해볼까 한다.
<원스>가 어필할수 있었던 점, 첫째 음악
당연한 말인지 모르지만 <원스>는 주인공들이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의 힘이 가장 컸다고 생각된다. 영화 시작에서 ‘남자’가 부르는 ‘Say it to me now'는 짙은 호소력이 있고, 남녀의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Falling Slowly'는 요즘 길거리에서 들린다는 소식도 있을 정도로 가장 히트(!)하였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아트필름 뮤지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감독 존 카니의 발언인데 이는 정확히 들어맞은 걸로 보인다. 감독, 배우들 모두가 밴드에서, 또 뮤지션으로 크고 작게 활동했다는 영화 뒷이야기를 듣고 나면 역시 <원스>에서 보인 뛰어난 음악성이 이유가 있구나, 알게 된다.
비단 남녀주인공뿐 아니라 영화의 조연들이랄 수 있는 사람들도 음악의 감상자로서 충실했던 것 같다. 처음에 여자(마케타 잉글로바)가 연습하는 악기가게의 주인은 남녀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때 흐믓하게 바라본다. 또 마침내 스튜디오를 임대해 데모테입을 녹음할 때 담당 기사도 처음엔 이 오합지졸 ‘악단’을 무시하지만 실력을 보고는 최선을 다해 제작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지만 대출을 하러간 은행 직원도 왕년에 자기도 음악을 했다는듯 글렌한사드-남자 역-앞에서 기타를 치고 말이다.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 작은 돌풍을 일으킨 <원스>의 음악과 연출스타일은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에 목말랐던 계층이 많았음을 현재의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필자 생각에 이런 모습들은 예전에 영국 인디영화 ‘풀 몬티’와 발레를 소재로 한 ‘빌리 엘리어트’에도 비교되는 듯 하다.
어필 요소 두 번째, 그들의 사랑!
투명하다, 정직하다, 위로를 준다, 치유한다, 충만한 느낌이다.
이 작품에 대한 지난 몇 달간 네티즌 20자평에서 골라본 표현들이다. 그만큼 <원스>에서 묘사되는 남녀의 사랑이 따뜻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구나, 싶다. 독립영화, 게다가 영화쪽에선 변방인 아일랜드산이라 그런지 간혹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보면서 작은 것들에 미소짓고 보고 나면 무언가 감성의 충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국경도 나이차도 없다지만 ‘the guy'와 ’the girl'(영화에 그렇게 나옴)의 차이는 사실 컸다. 남자는 음악씬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싱어송라이터로 오매불망 데뷔만을 꿈꾸며 길거리에서 외롭게 노래하고 있었고, 여자는 이른바 싱글맘으로 아기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헤어진 것도 기다리는 것도 아닌’ 상태로 남편과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그들이 ‘만난다’. 어쩌면 서로의 쓸쓸함을 서로가 알아본다 해도 요즘같은 세상엔 먼저 손을 내밀기가 어려운건 아닐까. 이미 세파에 너무도 찌들었기에, 또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는 변명으로... 하지만 어쩌면 기적과도 같달까, 남과 여에겐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구차한 각자의 삶을 뒤로하고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사랑이 풍덩 빠지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수도 있는거구나’라는 대사가 있는데, <원스>의 ‘폴링 슬로울리’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노래 가사에 따르면 ‘천천히 빠져들어요, 자신만의 멜로디를 부르며.’ -그런데 falling은 아시다시피 중의적이다. 내려오다와 빠지다.- 사실 이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극명하게 두갈래로 나뉘는데, 말이 필요없기 때문에 구구절절 논하는 것은 ‘배신행위’라는(ㅎㅎ)것이 하나고, 그럼에도 불구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분석해보는 이 두가지이다. 밝히자면 이 칼럼은 그 둘 사이에서 다소간은 어정쩡한 채이다. 분명한건 이 글을 운영자님께 보낸 후 다시금 영화음악을 무한반복 들을거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때 이상하게(?)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그만큼 이 작은 영화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돌아보게 하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이든 아니든 표현하게 하는 실로 위대한(!) 힘을 지닌것 같다. 그리고 음악이나 사랑 외에 본인이 눈여겨본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런던으로 떠나려는 주인공에게 보였던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무덤덤한듯 아들의 떠남을 받아들이고 약간이나마 모아놨던 돈을 가져가라며 흐믓한 얼굴로 ‘노래 다시 틀어달라’던 그 노인의 모습.
어차피 모든 것이 선택이라면, 뮤지션은 음악적 성공을 위해 해외로 가고, 여자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그 자리에 남는 결말이 꽤나 긴 잔상으로 남았다. 요즘 잘 듣고 있는 토이(Toy)의 노래처럼,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once)의 기억을 간직한채 뜨겁게 안녕, 하고 싶은 때이다. 2007년의 영화들과도. (hana)
* 이메일을 통해, 영화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frontier41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