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고 잠이 안와, 방안을 뒤척일 때는 종종 컴퓨터 앞에서 웹서핑을 한다. 오늘도 그러던 중, 한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유지나씨의 ‘영화장사꾼의 이상한 계산법’이란 글을 보게 되었고 문득 정교하지 못한 시선이라는 생각에 키보드를 두들겨 본다.
남성판타지?
유지나씨의 글 중에 인상적인 용어는 ‘남성판타지’이다. 어렴풋이 그 뜻을 헤아릴 수는 있겠으나, 유지나씨의 그 글 속에선 모호한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남성판타지라고 하면, 아마도 성적매력이나 조각 같은 미모 등등 일상적인 여성이라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판타지 속에 만들어진 하나의 (남성이 선호하는) 피조물에 대한 지칭으로 받아 들여 진다.
그리고 유지나씨는 아마도, 영화판이 이러한 남성판타지라는 속물스런 이 피조물에 혼탁한 상황에 대한 개탄으로 ‘영화장사꾼의 이상한 계산법’이란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 글 속에서 유지나씨가 비판하는 정확한 대상이 어떤 것인지와 무관하게, 이 글을 연유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왜곡된 공감으로 ‘남성판타지↔알량한(기타 부정적 함의)↔남성’이라는 그릇된 연상을 생산하는 것은 어딘지 불쾌하다.
이는 유지나씨의 의도와 관계없이, 정교하지 못한 시선을 통한 생각의 표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유지나씨의 글의 부분을 들어 보면,
"나는 지금 막 영화상 심사 때문에 <와니와 준하>를 다시 보고 왔는데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저 배우가 아니라 내면표정이 나오는 연기자였으면 영화가 살았을 텐데...라고. 그것도 남자들이 그 아리따운 여배우의 겉돌기 연기를 보고 하는 말이다.
적어도 남자들에겐 젊고 예뻐서 유명연예인으로 공인된 여배우가 그 알량한 남성 판타지 덕에 통하는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위 글 부분에서 ‘적어도 남자들에겐 젊고 예뻐서 유명연예인으로 공인된 여배우가 그 알량한 남성 판타지 덕에 통하는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라는 말은 유지나씨의 시선이 정교하지 못하다 못해, 아둔하다고까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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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니와 준하>에는 '알량한 남성 판타지'가 먹히지 않을 것일까? 그렇다면 영화와 영화마케팅에 작용한 순정만화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
첫째, ‘적어도 남자들에겐 젊고 예뻐서 유명연예인으로 공인된 여배우’라는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남성이 영화를 보는 행위자체는 젊고 예쁜 유명연예인으로 공인된 여배우를 보기위한 행위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여자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남자는 고작 예쁜 여자 유명연예인을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남자로서의 느끼는 불쾌함이 아니라, 영화관객의 한 명으로써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영화관을 찾는 영화관객에 대해, 영화에 대한 애착도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남성과 여성의 관객이라는 구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비논리적인 사고에 한심함을 감출 수가 없다.
한번 ‘적어도 남자들에겐 젊고 예뻐서 유명연예인으로 공인된 여배우’이라는 말을 살펴보자. 이 부분이 ‘젊고 예뻐서 유명연예인으로 공인된 배우’라는 표현이었다는 내가 하는 이러한 이야기는 불필요한 언급일 것이다. 그러나 유지나씨의 표현 속에는 한 여배우의 공인이 여성들은 별반 관심도 없는데 남성의 관심으로 공인된 배우라는 식의 논리로 소급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해당 여배우에 대한 관심이 유지나씨의 ‘적어도 남자들에겐’이라는 말을 통해 검증되거나 과학적이거나 정교하지도 못한 전체 남성 혹은 다수 남성의 공인이라는 해석의 여지 또한 갖고 있다.
또한 위의 유지나씨의 글에서 남성을 여성으로, 여성을 남성으로 치환해도 글의 맥락과 문제사안에는 변화가 없다. 즉 우습게도 본 문제사안에 대한 접근의 사고에 있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이분법을 통한 논리전개는 비약이라는 것이다.
둘째, 이어지는 부분은 더욱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 앞부분의 ‘적어도 남자들에겐’이라는 식의 정교하지 못한 남성덩어리의 상정으로 대부분의 남성을 포함하는 뉘앙스를 주는 상태에서 이어지는 ‘그 알량한 남성 판타지 덕에 통하는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라는 부분은 흡사 남자라는 짐승자체는 알량한 남성만의 판타지로 영화를 수용하는 존재라는 해석의 여지를 준다. 과연 영화관을 찾고, 평소 영화를 자주 보는 남자관객들은 자문해 봐라, 그대들은 알량한 남성 판타지로 영화관을 출입하는지...
사실, 이른바 ‘남성 판타지’라는 그야말로 나름대로의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관을 찾는 행위자체에 ‘훔쳐보기’가 함의된 상태에서 남성으로서 스크린의 상황을 훔쳐보는 것에는 때로는 ‘남성 판타지’가 작용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성 판타지가 ‘알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남성 판타지 속에는 알량한 요소가 자리할 뿐이다. 그러나 남성 판타지의 요소들에 대해 알량한 것과 非알량한 것에 대한 논리적인 논의 없이 섣부르게 ‘알량한’의 수식어가 남성 판타지라는 단어 앞에 붙는 다는 것은 ‘어떤’ 남성에게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특히 유지나씨의 글 속에 <와니와 준하>에 관한 부분에서 ‘남성 판타지’를 운운한다는 것은 유치한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장사꾼이 <와니와 준하>에 꼭 남성 판타지의 효과만을 염두에 두었을까? <와니와 준하>의 각각의 남녀 배우의 면모를 보면, 고도의 논리적 사고가 없어도 직관적인 관찰로도 남성 판타지만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와니와 준하>에는 유지나씨의 논리에서 나온 남성 판타지에 상대되는 소위 ‘여성 판타지’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즉 <와니와 준하>에 작용한 영화장사꾼의 고려사항은 유지나씨의 생각같은 성적 차이인 남성/여성에서 연유한 남성판타지가 아닌, 남성과 여성 모두를 염두에 둔 (혹은 양자를 구분하지 않은) 총체적인 알량한 판타지인 것이다.
‘남성’ 언급에 좀 더 신중해야…….
유지나씨의 글 끝부분에는 다시 한번 ‘남성 판타지’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인용하면,
“갈수록 커지는 영화제작비가 남성판타지의 대가를 치르느라 더 커지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간다.”
이 말은 일정부분 동감하는 말이나, 역시 불필요하게 ‘남성’의 들먹거림으로 글의 해석에 있어 다시 한번 왜곡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판이 유지나씨의 말처럼 남성판타지의 대가를 치르느라 더 커진다면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여성 판타지는? 마찬가지이다. 남성판타지나 여성판타지나 알량한 판타지와 영화판의 메커니즘이 맞물려 돌아가게 되는 것은 개탄해야할 사항이다.
즉, 직관적으로 유지나씨가 의심이 가야할 부분은 (성적 구분이 아닌 총체적인) 알량한 판타지에 영화제작비의 대가를 지불하는 상황이어야 맞다. 그럼에도 유지나씨는 유독 ‘남성 판타지’라는 개념을 말하는 것일까. 그 연유는 이 글의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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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커쳐가는 영화제작비가 남성판타지의 대가를 치루는 것에 대한 걱정에 앞서, 총체적으로 잘못된 판타지와 영화장사꾼의 결탁을 걱정해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또한, 현재 한국에서 영화관의 다수 관객이 여성에게 작용하는 (그 존재는 모르겠으나 있다면) 여성판타지에 대한 우려와도 균형을 같이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
무명인의 글이라면 글의 힘도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글에 정교함을 요구한다는 것은, 때론 옹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공인된’ 이의 글은 더욱 신중을 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글은 글 쓴 사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도 있는 암묵적인 힘을 가지고도 있기 때문이다. (mamoro)
niroo: 저속한 페미니스트 유지나 . -[09/10-16:24]-


그런데 유지나선생님의 전문보기가 안되네요
글을 볼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