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는 텔레비전은 아니지만, 가끔 접하게 되는 프로그램이 바로 주말 오락 프로그램들이다. 이유는 무거운 생각없이 그냥 켜 놓고 이일 저일 하면서 한가롭게 보낼 수 있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말이다.
이런 쇼오락 프로그램들의 요즘 경향은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흡사<투루먼 쇼>와 같은 일반인의 일상에 이벤트를 주어 이를 훔쳐보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프로그램의 대명사 중에 『목표달성! 토요일』이란 프로그램의 "악동 클럽"이라는 코너를 들 수 있다.(내가 다른 것은 많이 못봐서 사실 다른게 대명사일 수도 있다.) 내가 매주 마다 빼놓지 않고 본 것은 아니지만, 보다보다 못해 이렇게 언급을 한다.
TV의 부조리한 행태에 다시 한번 떨더름함을 표현하며, TV가 바뀌지 못할망정 시청자가 바뀌길 간절히 바래본다.
1. 인가 학과(學科)는 누가 정하는가?
예전에 한동안은 '신문방송학과'가 대학 입학을 지원하는 수험생들에게 인기학과로 두각된 적이 있었다. 그 후에도 '컴퓨터학과 (해킹과 관련된 폭넓은 학과)' '게임학과' 등 여러 학과들이 시대를 대표하는 냥 인기 학과의 물망으로 자리를 바꿔갔다. 아울러 직업 역시 위와 같은 패턴으로 장래를 선택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에 있어, 그 책임은 진학을 결정하는 당사자 학생에게 있겠지만, 진학을 결정하는 시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선택'이란 고민이 그야말로 순수 무결정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전무(全無)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단순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긴 성급한 사고일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진학 결정의 시기에는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듯이) 귀가 얇아지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TV이다. TV가 만든 조립된 이미지는 선택하는 이들의 하나의 표상이 되어 버린다.
이는 청소년의 여러 문제 사항 중에서도 가장
보편전이고 중요하면서도 개인적·사회적으로 큰 우려와 파장을 갖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음란/폭력을 운운하는 어른들의 우려(인냥) 운운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
해야될 사회적/대중적 담론이다.
그런데 이걸 소리 높여 외치지 사람이 있는가? 몇 해전 내가 선택의 순간을 맞을
때도,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없다.
'청소년'에 관한 담론 역시 팔아먹을 만 한 것(issue)만이 집중받고 가치있는 것인가? '우리의 청소년'을 걱정하는 모든 이에게 묻고 싶다.
2. '위하여(for)'의 파시즘
사설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본래 여기서 하려고 한 이야기는 '악동 클럽'에 관한 이야기인데 말이다.
가장 최근에 본 이 프로그램에서는 오디션을 통과한 학생들이 합숙훈련을 들어가는 단계였다. 그 이전에는 몇 차(아마 1-3차까지였을 것이다.)에 걸친 예비 선발 대회를 갖게 했고 이러한 과정을 오랜 기간(대략 6개월 정도) 방영했다.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오디션을 방영하게 되게된 배경을 추측해 보면, 악동 클럽 이전에 있었던 '꼴지 탈출' 코너의 학생들이 오디션 과정에서의 재미와 이러한 것들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악동 클럽'은 연예인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을 위한다는 코너이니 오디션과정을 오래 보여줘도 별다른 비난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 전의 '꼴찌 탈출'의 경우, 꼴지를 선발하는 오디션 과정에서, 공부를 잘 할 수 있게되는 과정과 무관한 장기를 선발의 기준으로 삼아, 이를 방영함으로써 여러 곳으로 많은 문제 제기를 받았었다.)
여하튼 이러저러해서 합숙에 접어든 지금, 나름대로 긴 시간이 지난 지금 '악동 클럽'의 행태는 어떤가? 최근에 본 프로그램에 따르면 현재 합숙하는 학생들 중에 2명을 탈락시킬 결정을 하는 단계로 알고 있다. (참으로 추악한 기성 세대의 논리와 자본의 만남이 빚어낸 역겨운 슬러시가 아닐 수 없다!) 이도 모자라 인터넷 iMBC의 『목표달성! 토요일』의 코너에는 합숙하는 학생들을 인기투표하도록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그것도 대중매체를 통해 적나라하게 모든 이에게) 평가 받는다는 것은,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낙오의 지위에 머문다는 것은 철든 어른들도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기성 유명 연예인에게도 이러한 비슷한 잣대를 들이덴다면 얼마나 힘든 고통일까?
그런데 iMBC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들을 평가하라고 올라와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와 과정을 참가자들이 모르는 바는 아닐테지만, 이로서 '악동 클럽'의 행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악동 클럽' 기획 초기, 프로그램을 살펴 보자. 각 학교 교장들을 베이스로 깔며, 청소년의 문제를 '악동 클럽'이 대대적으로 해소해 준다는 듯한 분위기의 모습을 말이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보여준 의도는 그들의 존재와 함께 해 온 단순한 '구호'일 뿐인가? (늘상 그런 식으로 생존하는 것은 저널일 수도 있지만 여긴 '청소년, 그리고 삶'이라는 문제가 긴박히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아마 곧 '악동 클럽'에서 탈락자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방송은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이다.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다'던 파시즘 미학의 결정체를 우린 곧 만나게 될 것이다!
3. (우리의 청소년을 외치던) 그들은 어디 갔나?
필자는 21살이고, 사실 정신연령상은 청소년 수준에 경제적으로 보호받는 대학생이다. 따라서 부모의 마음을 직관적이고 체화되어 알 수는 없다. 당신들의 걱정하는 마음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런데 저널을 만나다 보면, 이를 알고 이를
외치는 이들이 많다. 어른신네들 말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 갔냐? 선정, 폭력 이야기만 나오면 무슨 호떡집 불난 것 마냥 모여,
한 마디씩 내밷고 가던 그들은 지금 뭐하냐는 것이다.
청소년에 관한 여러 사안의 중요성 우위를 가리는 것은 어려운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보편 다수의 지금 청소년에게 중요한게 뭔가. 성숙했기에 하는 말이 아닌, 성숙되어진 관심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위하여'를 외쳐라!) 아울러 단순하지 않은 사안은 단순히 바라보는 지금의 문화에 단순히 '추억'으로 소급시켜버리는 우리내 모두 자성을 가져보자. (mamor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