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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이메일 시네마테크 영화연대 - Home</title>
      <updated>2010-03-11T10:15:19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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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탈리아 영화 특별전 (영상자료원, 2010.2.27 ~ 3.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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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0-02-01T20:50:44P</published>
      <updated>2010-02-01T20:59:07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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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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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yhyd.org/files/attach/images/3463/102/011/ital.jpg&quot; alt=&quot;ital.jpg&quot; title=&quot;ital.jpg&quot; width=&quot;428&quot; height=&quot;179&quot; style=&quot;&quot; /&gt;&lt;br  /&gt;&lt;/p&gt;
&lt;p jQuery1265630517890=&quot;9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o 주최: 한국영상자료원&lt;/span&gt;&lt;/p&gt;
&lt;p jQuery1265630517890=&quot;95&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o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영국 BFI, 이탈리아 Cineteca Nazionale&lt;/span&gt;&lt;/p&gt;
&lt;p jQuery1265630517890=&quot;98&quot; jQuery1265630550468=&quot;94&quot;&gt;&lt;strong jQuery1265630550468=&quot;104&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105&quot;&gt;영화제목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amp;nbsp;&amp;nbsp;작품정보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감독 출연&lt;/span&gt;&lt;/strong&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96&quot;&gt;구두닦이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 1946년 | 35mm | 93분 &amp;nbsp; &amp;nbsp; 비토리오 데 시카 프랑코 인테르&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17890=&quot;99&quot; jQuery1265630550468=&quot;97&quot;&gt;이탈리아 여행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1954년 | 35mm | 97분 &amp;nbsp; &amp;nbsp; 로베르토 로셀리니 잉그리드 버그&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98&quot;&gt;로코와 그 형제들&amp;nbsp; &amp;nbsp;1960년 | 35mm | 165분 &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 알랭 들롱,&amp;nbs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99&quot;&gt;오이디푸스왕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1967년 | 35mm | 110분 &amp;nbsp;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실바노 망가노&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17890=&quot;100&quot; jQuery1265630550468=&quot;100&quot;&gt;순응자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amp;nbsp;1971년 | 35mm | 111분 &amp;nbsp;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장 루이 트랭&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101&quot;&gt;여성의 정체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amp;nbsp; &amp;nbsp; 1982년 | 35mm | 112분 &amp;nbsp;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토마스 밀리안&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102&quot;&gt;시네마 천국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amp;nbsp;1988년 | 35mm | 122분 &amp;nbsp; 쥬세페 토르나토레 쟈끄 페렝,&amp;nbsp;&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 jQuery1265630550468=&quot;103&quot;&gt;마지막 사랑 &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amp;nbsp; &amp;nbsp;1990년 | 35mm | 114분 &amp;nbsp;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데브라 윙거,&lt;/span&gt;&lt;br  /&gt;&lt;/p&gt;
&lt;p jQuery1265630550468=&quot;10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자세한 상영정보는&amp;nbsp;&lt;/span&gt;&lt;a href=&quot;http://www.koreafilm.or.kr/cinema/program/category_view.asp?g_seq=75&amp;amp;p_seq=405&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http://www.koreafilm.or.kr/cinema/program/category_view.asp?g_seq=75&amp;amp;p_seq=405&lt;/span&gt;&lt;/a&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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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파주&gt; 폐허를 생산하는 고립된 삶</title>
      <id>http://www.yhyd.org/11013</id>
      <published>2010-01-14T15:59:57P</published>
      <updated>2010-01-14T16:25:44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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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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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img.todaystory.net/img/9dd46714c992a6875105f535ea1a3291.jpg&quot; alt=&quot;&quot; style=&quot;border:0;&quot; /&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스포일러 많습니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대학 때 만난 한 선배는 파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파주에서도 그 선배가 사는 지역은 북쪽과 맞다있어서 그곳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지만 들락거릴 수 있다고 했다. 선배에게 들었던 파주시의 한 마을은 국가에 의해 허락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마을은 주민이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고, 즉 주민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파주에는 임진각과 땅굴이 있다. 한편 몇 년 새 파주하면 헤이리와 출판단지가 생각나게 되었다. 이 설계 역시 국가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 자유롭다고 하는 예술의 터를 국가가 모으고 전시한 것이다. 어느새 파주는 주민등록증을 내야 하는 동시에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으로 생각나게 되었는데, 어쨌거나 파주는 우리가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두 공간 모두가 우리에게 허락되는 방식은 관광이다. 임진각을 지나 헤이리 예술공원을 도는 관광코스, 결국 파주는 어쨌거나 관광의 도시인 것일까. &lt;br  /&gt;그런데 영화 속 파주는 파괴되어 폐허가 되가는 것들의 이미지들이 모이고 중첩되어 있는 파주이다. 임진각을 돌면서 통일의 염원을 빌어보는 곳이기 보다는 운동을 하다 수배자가 된 사람이 있는 곳이며, 예술적인 꿈을 꾸는 곳이기 보다는 생존에 절박함을 느끼는 철거민들의 도시인 것이다. 여기에서 파주는 관광되는 곳이 아닌 겪어내는 사람들의 공간으로써의 모습을 드러낸다. 고통이 맞닥트려질 때 관광은 불편하고 하기 싫은 것이 된다. 어쩌면 영화 &amp;lt;파주&amp;gt;는 광광도시 속에 숨겨진,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공간을 그려보려는지도 모르겠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중식의 사연은 8년 전부터 시작된다. 중식은 수배를 받고 있는데, 함께 운동을 했던 선배이자 첫사랑인 자영의 집에 숨어 있는 처지이다. 그리고 자영의 남편은 교도소에 있다는데 역시 같이 운동을 했던 선배인 것 같다. 그 집에서 자신이 선배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안 중식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진다. 그런데 던진 옷이 선배 부부의 아이에게 날아가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중식은 옷을 얼른 다시 주워 입고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있다. 중식은 영화 속에서 이 첫 번째 상황을 계속 반복하는 것 같다. 그 상황은 계속 커지고 무거워지지만 중식은 이때에처럼 계속 자기 주변에 고통을 안겼다는 자신의 미욱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는 자영을 탐(?)한 죄(?)로 아이가 화상을 입자, 자신의 미욱함을 처음으로 확인한 서울로부터 도망쳐 파주로 들어온다. 중식이 꿈꾼 운동과 사랑은 모두 파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채 말이다. &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한편 은모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부모님이 물려준 집에서 언니 은수와 살고 있다. 은수는 술에 취해 밤길을 혼자 걸어가던 때에 자신을 걱정해준 중식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은모는 하나 밖에 없는 언니 은수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상황이 불안하다. &lt;br  /&gt;은모는 중식과 달리 자신이 벌이게 된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녀는 언니를 걱정하여 돈을 벌러 가출을 하지만 이때 자신의 실수로 언니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중식은 은모를 보호하기 위해 오해를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벌인 실수의 흔적을 제거한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중식의 이야기와 은모의 이야기는 은모가 두 번째로 집을 나가게 된 3년 전 상황까지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중식의 경우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아이의 화상과 가스폭발 사고로 죽은 은수의 모습)들의 반복에 대한 책임감? 혹은 죄책감?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그건 뭐랄까, 중식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은모가 언니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한 가출이나 중식을 떠나면 안 될 것 같아 집을 떠난 것 역시 소녀의 치기가 아닌 절박한, 그래서 은모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파주라는 지역과 그곳에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겹침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파괴되어 폐허가 된 삶의 형태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그런데 영화 &amp;lt;파주&amp;gt;의 이후 전개는 공감하기에는 조금씩, 점점 더 어긋난다. 은모는 보험회사를 통해 언니가 죽은 이유가 교통사고가 아니라 가스폭발 사고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관객에게는 은모와 중식의 8년이 모두 공개된 뒤 장면에서 은모는 철거 현장을 뚫고 들어가 중식에게 질문한다. 이런 일 왜 하느냐고. 중식은 이제는 할 일이 계속 생겨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물대포가 쏟아지고 중식은 은모를 감싸않아 보호한다. 그날 저녁, 은모는 다시 질문을 이어간다. 언니를 사랑했느냐. 사랑하지 못했다고 중식은 말한다. 그럼 자신은 어땠냐는 질문에 중식은 너를 사랑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은모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거냐고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한다. 이어지는 것은 키스, 그리고 은모는 뛰쳐나와 중식을 보험 사기로 고발한다. 할 일이 계속 생긴다는 것은 은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왜 중식은 은모를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 &lt;br  /&gt;보험 사기로 감옥에 가며 정작 철거촌도 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을 때, 중식의 지인은 진실을 밝혀야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중식은 철거촌은 괜찮을 것이다,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냐, 자신이 미욱했던 것 같다 등의 이야기로 은모의 실수로 생긴 가스폭발 사고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은모가 한 마리의 어린 양이 되는 순간 영화는 이상한 불편함을 준다. 그 대사 이후 은모는 사라지고, 그 순간 중식은 유일하게 할 일이 주어진 사람으로, 짐을 짊어진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중식은 은모가 실수로 꽂은 가위가 실수인 것을 아는가? 실은 이 질문은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실수이든 아니든 모든 것을 떠안으려는 중식은 다른 사람에게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혹은 떠안을 만큼 알 수나 있는 것인가? 어쩌면 중식이 감옥에 혼자 앉아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그 불가능성에 대한 좌절로 인한 어두움일 것이다. &lt;br  /&gt;그런데 중식은 자신이 미욱했다고 말한다. 그의 미욱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은모를 어린 양이라고 하는 순간이 바로 미욱하게 느껴진다. 만약 그가 좌절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린 양을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중식의 무겁고 어두운 어깨는 과연 어떤 좌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었을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또 은모가 확인하려고 하는, 그리고 확인해야만 한다는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왜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파주를 나가고 파주로 돌아오는 것일까? 영화가 이렇게 결말로 치달아 갈 때, 영화 &amp;lt;파주&amp;gt;는 소통이 불가능하고 파괴를 막을 수 없기에 폐허로 낳는다기 보다는 잘못된 소통과 잘못된 반성으로 인해 불가능해진 폐허를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중식과 은모는 결국 스스로의 밖으로 한 번도 나서지 않고, 그러고자 하지도 못했다는 느낌인 것이다. &lt;br  /&gt;그래서 좀 가혹하게 뱉어보자면 중식 역시 파주의 파괴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또 하나의 얼굴처럼 느껴진다. 중식이라는 인물이 주는 답답함은 파괴되는 것 앞에서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자의 것만이 아니다. 영화 속 파괴의 답답함은 중식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생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은모의 눈물도 그러하다. 아무 것도 감지할 수 없도록 만들어 지는 방식, 아무 것도 공유되지 못하는 방식이 초래하는 눈물인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영화를 보고 한동안은 은모의 도피는 소녀의 도피로만 느껴졌는데, 그 도피가 낳는 결과란 철거 투쟁의 큰 축이자, 반대 편 조폭 용역 입장에선 걸림돌이었던 중식의 사라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낸 성과란 은모가 부모님 집을 안정적으로 얻어냈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파주 속에 우뚝 남을 은모의 집. 그리고 얇게 미소짓는 자는 이경영이 분한 조폭 사장이다. 이경영이라는 많은 관객들에게 인지될 배우가 이 짧은 분량에 할애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러한 무게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마치 은모의 도피를 탓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필자는 이 영화에서 은모의 행동을 소녀의 치기로 평가하는 것이 이 영화가 회자되고 뻗어나간다면 이를 결론적 이미지로 느껴진다. &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여기서 다시 중식의 답답한 얼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왜 그는 은모를 한 마리 어린 양으로, 진실에서 소외되어야 하는, 그렇게 보호되어야 하는 자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필자는 바로 이러한 방식이 무기력을 생산하는 지점 자체라고 생각한다. 이 세계를 대상으로 대하는 방식. 주체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주체로 놓고 세계를 대상화하는 방식, 그로부터 느끼는 고통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자책, 그리고 그로부터 도달하는 무기력. 이것은 중식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처럼까지 느껴진다. &lt;br  /&gt;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바로 파주라는 공간을 더욱 더 우리가 결정할 수 없고, 허락받아야만 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그러므로 이 모호하다고 읽혀지는 영화에서 필자가 모두와 함께 묻고 싶은 것은, 과연 중식은 무엇으로부터 은모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중식은 실은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것은 자기자신인 것이 아닐까? 실수를 했기에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어린 양이 되어야 하는 ‘할 일’은 적어도 이 시대에 적절한 책임감이 아닌 것 같다. 은모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중식이 해야 하는 반성은 개인으로 남아있는 죄책감에 대해서다. 그리고 중식이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좌절은, 아무도 그렇게 제 손에 남아 있을 만큼 어린 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gipsymoon)&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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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아바타&gt;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title>
      <id>http://www.yhyd.org/11011</id>
      <published>2010-01-14T15:55:11P</published>
      <updated>2010-01-14T16:26:19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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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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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img.todaystory.net/img/afd157952a8af9c82622fed04e557171.jpg&quot; alt=&quot;&quot; style=&quot;border:0;&quot; /&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amp;lt;아바타&amp;gt;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중에는 ‘영화가 게임을 의식하고 제작한 형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에는 기존의 SF영화가 큰 규모로 제작되었으며 여기에 3D상영 정도가 가미된 것 정도인데 그리고 이미 3D상영은 있었던 ‘과거’인데 무슨 호들갑이냐는 의연한 태도도 존재하지만, 실제로 확인한 &amp;lt;아바타&amp;gt;가 그렇게 의연하게 처리할 정도의 SF영화로 간주하는 태도에는 반대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amp;lt;아바타&amp;gt;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무난한 것이며, 일부분 웨스턴 장르의 SF버전이며 미국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간사함이 묻어있는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로써 &amp;lt;아바타&amp;gt;의 비범함을 일견 인정하지만, 영화계는 의연함을 유지해야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연한 반복을 언제까지 유효하게 할 수 있을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사실 고전적인 영화의 형태가 어떻게든 어떤 형태든 바뀔 것이다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지만, 영화에 환호하는 방식과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 대상 자체가 크게 변화를 이루며, 이 변화의 과정에서 영화가 어떻다 저렇다 말하는 자체가 무기력해지는 풍경은 불안하긴 했지만 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짐작컨대 예전의 영화에 관한 글이 어떤 형태든, 영화를 봤거나 볼려고 하거나 영화를 알지만 안 보는 관객을 머리 한 켠에 염두하고 글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amp;lt;아바타&amp;gt;류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머리 한 켠에 영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잠재적 관객만을 염두한다면 &amp;lt;아바타&amp;gt;에 대한 글을 이어나가는 필자 자신 스스로 무기력해지는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다. &amp;lt;아바타&amp;gt;류의 영화를 말할때는 이제, 원하지 않아도 머리 한 켠에는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아이폰 스킨을 만들고, 웹스토어를 검색하며, 지속가능한 오덕질 속에서 3D상영의 ‘진보’에 대한 기대와 CG렌더링의 ‘진보’에 대한 기대 속에서, 잠시 게임을 멈추고 극장을 찾는 SF Nerd을 염두할 수밖에 없다. 그럼 과연 SF Nerd를 감당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필자 중에 완숙한 사람이 누가있을까. &amp;lt;아바타&amp;gt;를 보면서 영화매니아가 단순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에서 차츰 진심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은 단순한 개인적 불안인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방학을 맞이하여 어떤 영화 중의 하나로서 &amp;lt;아바타&amp;gt;를 찾은 학생 관객이나, 여러 개봉작 중 인기있는 SF영화로서 &amp;lt;아바타&amp;gt;를 선택한 관객에게 영화에 관한 ‘글’이 접속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된 판단아닌가.&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비유해 보건데 SF Nerd를 상대하는 것은 주성치 영화팬을 상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주성치 영화팬들은 주성치 영화 세계에 있는 매혹을 좋아하고, 영화에 관한 글(평론 등)이 주성치 영화를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천하게 보든 상관안하고 주성치 영화 세계 밖과는 평행선을 달린다. 주성치 영화의 팬들은 지적으로나 평론적으로 주성치 영화를 옹호하지도 않으며 대신 간섭받지 않겠다는 ‘포괄적 협정’을 만든 것에 비해, SF Nerd가 지지하거나 환호하는 &amp;lt;아바타&amp;gt;에 대한 입장은 훨씬 (잠재적으로) 공세적이다. &amp;lt;아바타&amp;gt; 관람을 나와 영화가 지닌 세계관이나 우주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소박한 수준이다. SF Nerd의 심급은 영화를 넘어 다시 현실 세계에서 생명이나 우주관, 이론상 가능한 일인지 확률상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분석, (주로 유전학에 바탕한) 생명과 인간 주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들이 행해지고 조사를 행하는 속도 또한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행되는데, 영화의 인문학적 평론가들이 극장을 나와 현실세계에 대한 현실적 질문 그리고 인간 내면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통한 영화에 대한 적정성 평가와 유사하다. 얼핏 예상해도 이 유사성과 각자가 처한 토대의 차이가 유치한 수준이든 보다 덜 유치한 수준이든 과학주의 대對 인문주의의 소모적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lt;/p&gt;
&lt;p class=&quot;st11&quot;&gt;안전한 내러티브 vs 많은 빈도의 피드백&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인문학 쪽 진영에 있는 소박한 평론가는 &amp;lt;아바타&amp;gt;를 통해 인간이 갖은 인간주의 오만함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나 판도라 행성을 정복하려는 지구인을 통해, 현실세계의 아마존 원시림 파괴나 소수인종말살에 대한 현실 지구 문제를 연상해 주길 바라는 소망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SF Nerd의 많은 사람들은 &amp;lt;아바타&amp;gt;를 보러 오기 전에 집에서 즐기던 게임에서 이미 반인간주의에 대한 태도를 충분히 갖고 극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lt;br  /&gt;가령,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amp;lt;스타크래프트&amp;gt;를 이야기할 때, 이 게임을 심화하여 이해하고 게임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게임유저는 각 종족의 다양성에 몰입되어 있다. 어느날 PC방에서 나오는 두 청소년 &amp;lt;스타크래프트&amp;gt; 유저가 나눈 대화가 인상적인데, 테란 유저가 “저그는 징그럽다”고 하자 저그 유저가 “저그 입장에서 테란은 혐오스럽게 보일지 모른다”라는 식의 대화, 저그의 귀여움(!)에 대한 이어지는 찬사는 굳이 &amp;lt;아바타&amp;gt;가 판도라 행성의 외계인을 파란색이었을 때 느끼는 태도가 아닌 것이다. (아마 부모님과 함께 극장을 찾은 학생 &amp;lt;아바타&amp;gt;관객의 많은 수가 ‘다시’ 집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부모님과의 스케줄을 마감하고 ‘다시’ PC방에서 게임을 했으리라.)&lt;/p&gt;
&lt;p class=&quot;bt11&quot;&gt;&amp;lt;아바타&amp;gt;에 관한 인터넷의 글 중에는 이 영화가 내러티브 면에서는 안전하고 무난하게 구성되었다고 한 문단 정도씩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극장을 함께 간 나의 친구 아무개 엔지니어는 이야기가 무난하다는 말을 &apos;&amp;lt;아바타&amp;gt; 영화가 많은 빈도의 피드백‘을 걸쳐 만들어진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을 한다. 같은 사안이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 표현의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확대해서 상상해보니, “안전한 내러티브...”류의 말을 엔지니어의 감수성으로 받아드린다면 “피드백을 많이 해서 당연한 것인데, 뭘 그리 다시 내러티브가 안전하닥고 하는지...”라고 해석하지는 않을까라는 상상이 들었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다시 &amp;lt;아바타&amp;gt;가 ‘영화가 게임을 의식하고 제작한 형태’라는 지배적 평가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여러 영화를 보다가 &amp;lt;아바타&amp;gt;를 보는 사람들이 느낄 영화가 게임을 ‘의식’한다는 것과 게임을 하다 극장을 찾아 &amp;lt;아바타&amp;gt;를 보는 사람들이 당연시 할 게임을 ‘의식’하는 것 사이의 맥락 차이와 감수성의 차이를 &amp;lt;아바타&amp;gt;는 전면적으로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는 하나의 영화로서 의연하게 받아드리거나 한편으로는 제임스 카메론의 기술적 진보의 성과를 받아쓰기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할애할텐데, 이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방식이 &amp;lt;아바타&amp;gt;를 이야기하는데 의미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 둘다 석연치 않으며 둘다 결과적으로는 환대받지 못할 방식이라는 것에 불안감이 남는다. &amp;lt;아바타&amp;gt;가 불러일으킨 이 상황, 누구에게 물어봐야 좋을까.(mamoro)&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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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파주&gt; 그곳은 어디에도 없었다</title>
      <id>http://www.yhyd.org/11007</id>
      <published>2010-01-14T15:50:48P</published>
      <updated>2010-01-14T16:24:51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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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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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img.todaystory.net/img/08994018350339e7e96167f7919399b6.jpg&quot; alt=&quot;&quot; style=&quot;border:0;&quot; /&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안개서린 옛 정취가 묻은 파주역, 기차에서 내린 중식(이선균)은 찌푸린 얼굴로 먼발치를 바라본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은모(서우)는 택시를 타고 깊은 밤, 촌스러운 네온사인 불빛을 가진 어딘가에 들어선다. 이 두 이미지는 ‘파주’라는 공간(지역성)을 확인시켜준다. 도시가 삭제되어 있는 공간 파주. 영화 &amp;lt;파주&amp;gt;는 왜 안개를 빌어 변방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일까. 이 영화는 도피처와 안개라는 설정 때문에 김수용의 &amp;lt;안개&amp;gt;를 떠올리게 하고, 개발과 귀향의 의미에서 이창동의 &amp;lt;초록 물고기&amp;gt;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대적 의미로도 해석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만이 남겨진 영화이다. 영화 속의 파주라는 공간은 무진과 같은 도피와 이상의 공간으로서도, 개발과 귀향의 의미로서도 명확한 설명 없이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다. 많은 의문을 던지게 하지만 결코 명확한 답은 얻을 수 없는 영화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파주는 중식에게 도피처였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보금자리가 된다.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의식적으로 주인공들은 자신이 사는, 돌아오는, 떠나는 공간인 ‘파주’를 말한 적이 없다. 도로 표지판, 기차역, 우체국 등으로 알 수 있는 그 곳은 이상하게도 펄럭이는 깃발처럼 영화 내내 지시만 될 뿐이다. 그래서 개발을 기다리는 버려진 농촌 같은 푸석하고 어두운 그곳은 과연 등장인물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일지 자못 궁금하게 한다. 수배 중이던 중식이 유부녀가 된 첫사랑에게 저지른 끔찍한 잘못(혹은 실수)은 그를 파주로 들어서게 하지만 중식은 결코 작금의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두만(이대연)을 만났을 때 중식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두만이 귀농하겠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중식은 은수(심이영)를 발견한다. 중식이 은수를 만나는 순간부터 중식에게 파주는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라 보금자리의 의미로 바뀐다. 공부방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그것은 하나의 설정으로 남고, 중식의 흐름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은수와 은모의 입장에서 중식을 보여준다. 은수는 중식에게 점점 호감을 가지게 되는데, 그녀는 중식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lt;/p&gt;
&lt;p class=&quot;st11&quot;&gt;파주, 안개로 뒤덮인 마을&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영화는 중식이 은모와 은수를 알게 된 시점부터 파주를 안개로 설명하지 않는다. 안개는 중식이 파주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은모가 파주에 돌아왔을 때에만 이미지화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파주는 지역 명을 주지시키는 몇몇 표지판 외에, 철거해야 하는 건물과 집안 내부, 네온사인 켜진 나이트클럽, 논밭의 정경, 휑하니 비어있는 국도를 보여줌으로써 파주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중식은 이방인이지만 너무 쉽게 파주에서 안식을 하고, 은수와 은모는 이방인인 중식을 너무 쉽게 가족으로 받아들인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중식은 파주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떠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수배중인 것을 감안했다 치더라도, 그가 왜 거기서 또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정착’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파주의 의미를 되새기기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중식의 아내가 된 은수는 그곳에서 가스폭발로 증발되어 버리고, 그녀의 동생 은모는 중식을 사랑한 나머지 언니의 죽음에 기여한 가해자가 되어버린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파주는 첫사랑의 아들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힌 중식이 도망치듯 떠나와 버린 도피처였지만, 그곳에서 은수와 결혼한 그는 안식처를 얻자마자 그녀를 잃는다. 중식은 죄책감을 짊어진 것처럼 파주에서 떠나지 않는다. 은모에게 파주는 부모님을 잃고 언니마저 잃어버린 끔찍한 공간이지만,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귀향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어쨌든 중식과 은모에게 끔찍한 기억을 만드는 파주는, 도피와 정착의 의미를 공존하게 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안개’로 수렴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중식이 철거민 대책위원장까지 맡아가면서 파주의 저개발을 붙잡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모는 결국 그에게 묻는다. “이런 일 왜 하세요?”라고. 중식은 대답한다. “모르겠어. 그냥…”&lt;/p&gt;
&lt;p class=&quot;st11&quot;&gt;파주, 모호한 군상들의 서식처&lt;/p&gt;
&lt;p class=&quot;bt11&quot;&gt;&amp;lt;파주&amp;gt;는 공간을 ‘위치 짓기’ 보다는 안개를 드리운 채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파주=안개’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실제 파주의 지역성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은수와 은모의 캐릭터가 좀처럼 설명되지 않고, 이들에게 중식을 향한 사랑만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래서일까. 적어도 중식은 운동권 출신이자, 신학공부를 했던 정체성이 부여되어 있다. 은수는 그렇다 치고 은모는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중학생이었던 그녀가 중식을 알게 되는 순간, 그녀는 공부방 학생이자 은수(보호자)의 동생일 뿐이다. 이미 중식 옆에는 은수가 버티고 있고, 은모는 언니에게 해야 할 말을 중식에게 바꿔 말한다. “우리 언니 건드리지 마” 라고. 은모는 단지 그런 말만을 할 수 있는 아이다. 그녀가 간접적이든 은수의 죽음을 방기하고 떠났다가(물론 은모는 몰랐지만) 3년 후 다시 돌아왔을 때, 철거대책위원장이 된 중식과 그녀는 이질적인 한 쌍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은모는 중식과 함께 철거농성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중식과 자신의 관계에 몰입한다. 언니가 남겨놓은 생명보험금 때문에 비로소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지만 은모는 그에 대한 죄책감이 정말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녀가 파주에 돌아와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그런 점에서 안개는 은모와 등식을 이룬다. 파주의 안개는 은모다. 결국 파주는 안개이자, 은모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안개=은모’의 등식을 곧이곧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은모가 파주에 돌아왔을 때 맞닥뜨리는 것은 언니의 죽음과 그녀가 남긴 생명보험금과, 부모님이 남긴 집, 대학입학 그리고 중식이다. 그녀는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며 선택을 해야 한다. 왜 영화는 은모에게 할 일을 부여하지 않고 선택만을 남겨놓은 것일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그렇다고 중식은 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가 “널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라고 은모에게 말했을 때 은모는 “그게 나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말이냐”고 울며 매달린다. 중식은 두 번의 상처를 경험한 남자다. 다시 말해 트라우마를 지닌 남자다. 그런데 은모에 대한 연민을 갑작스럽게 고백한 후 그는 진심에서인지 알 수 없게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이 형국이 과연 중식과 은모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의아하기만 하다. 희뿌연 안개가 의미하는 모호함처럼 중식과 은모의 불투명한 관계는 영화에서 설정한 파주의 이미지와 상응하지만, 결코 그들이 흩뿌려 놓은 사건들과 관계는 결론 내려지지 못한다.&lt;/p&gt;
&lt;p class=&quot;st11&quot;&gt;파주, 현재와 단절된 땅&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이 영화는 지금의 시대 현실과 맞물려 말할 수 있는 가치가 사실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철거민 문제라든가, 재개발 문제 등을 던져놓고는 있지만 결국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내러티브와 캐릭터 그리고 현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지 않은 채 끝맺어 버리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렸다. 묻고 싶다. &amp;lt;파주&amp;gt;는 한국영화로서 현재와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가?&lt;/p&gt;
&lt;p class=&quot;bt11&quot;&gt;&amp;lt;파주&amp;gt;는 1967년의 &amp;lt;안개&amp;gt; 와 1997년의 &amp;lt;초록물고기&amp;gt; 2006년의 &amp;lt;밀양&amp;gt; 등을 경유함으로써 한국영화에서 다뤄왔던 현대사회의 개인과 지역, 개발의 문제를 수직선에 두고 논해볼 중요한 가치가 있을 뻔했다. &amp;lt;파주&amp;gt;는 안개, 도피, 안식, 회귀, 죽음, 사랑, 지역성, 운동권, 저개발과 개발, 그리고 재개발의 문제를 나열해 놓고 어느 것도 제대로 파헤치거나 말하지 못한 채 끝맺는다. 과연 &amp;lt;파주&amp;gt;의 개인(특히 중식)은 어디서 온 인물일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점점 한국영화 속 공간은 &amp;lt;파주&amp;gt;와 같이 지역성을 지워버리려는 경향이 보인다. 한국사회는 도시 서울과 그렇지 않은 곳은 아직도 도시사회와 변두리(혹은 지방)로 이분화 되어 있다. &amp;lt;오! 수정&amp;gt;, &amp;lt;극장전&amp;gt;과 &amp;lt;멋진 하루&amp;gt;, &amp;lt;비스티 보이즈&amp;gt; 등 도시 서울에 대한 집착적 이미지들은 한국사회의 변두리는 삭제되어 있다. 반면에 변두리의 집착적 이미지도 있다. 지방만을 부각시켜버린 조폭영화는 지방도시를 영화적 공간으로 혹은 장르 화된 공간으로 한때 자리매김해 놓은 바 있다. 그러나 &amp;lt;행복&amp;gt; &lt;m&gt;&amp;lt;마더&amp;gt; &amp;lt;싸이보그지만 괜찮아&amp;gt; &amp;lt;박쥐&amp;gt; 등과 같은 영화에서 그려지는 한국의 지역은 실제 공간임을 부인한 채 가공의 공간처럼 설정된다. 한국이긴 한국인데 어딘지 도통 알 수 없고, 그럼으로써 캐릭터들은 더욱 방만하게 혹은 자유롭게 내러티브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lt;p class=&quot;bt11&quot;&gt;그런데 &amp;lt;파주&amp;gt;는 분명 가공의 시간을 설정한 것도 아니며, 가공의 공간으로 설정된 영화도 아니다. 제목으로 알 수 있듯, ‘파주’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만약 제목 파주가 지역 명을 지시하는 파주가 아니라면 모르겠지만(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는 현재에서 7년 전 그리고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적어도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의 히스토리를 전제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어쨌든 &amp;lt;파주&amp;gt;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전면화 시킨 파주라는 공간과 재개발의 모티브를 좀 더 현실적인 문제로 끌어당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거 농성 장면을 보면 나름 시위의 격렬함을 스펙터클하게 찍으려는 노력이 배어있다. 그런데 깡패와 철거민 사이의 긴장관계 역시 깊은 갈등으로 치닫지 않는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제목 ‘파주’가 왜 설정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뿐만 아니라 중식과 은모의 관계 역시 죽은 은수가 남긴 유산 때문에, 혹은 형부와 처제라는 그어진 금기 때문에 감정만으로 남고 만다. &amp;lt;파주&amp;gt;는 드라마를 가장한 멜로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중식을 둘러싼 세 여자의 이야기. 그러나 은모와 중식이 프롤로그에 차례로 등장하면서 둘 간의 이야기가 &amp;lt;파주&amp;gt;의 중심이 될 것을 예견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 은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도중 나이트클럽 사장(이경영)이 타고 가는 차를 보고 그와 시선을 교환한다. 영화는 중식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은모의 이야기로 도달한 채 끝맺어진다. 결국 &amp;lt;파주&amp;gt;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식상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라고 되뇌고 싶다. by 김다현(vovovdh)&lt;/p&gt;
&lt;p class=&quot;batang&quot;&gt;&lt;span style=&quot;COLOR: #951015&quot;&gt;김다현 [스크린] 2009. 12월호 게재&lt;/span&gt;&lt;/p&gt;&lt;/m&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lt;/p&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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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사랑의 노래 : 장 콕토, 장 주네 특별전 (2009. 12. 15. ~ 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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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2-10T15:07:18P</published>
      <updated>2009-12-10T15:07:18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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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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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 http://img.todaystory.net/img/8109c76720674695a8d3a3b6ec560903.jpg&quot; alt=&quot;8109c76720674695a8d3a3b6ec560903.jpg&quot; title=&quot;8109c76720674695a8d3a3b6ec560903.jpg&quot; width=&quot;350&quot; height=&quot;497&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오는 15일부터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lt;strong&gt; &lt;/strong&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어느 사랑의 노래 : 장 콕토, 장 주네 특별전’&lt;/strong&gt;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시인 3부작’을 비롯한 장 콕토의 걸작 영화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장 주네의 단편 &amp;lt;사랑의 찬가&amp;gt;와 더불어, 장 주네의 문학을 원전으로 한 &amp;lt;크렐&amp;gt;, &amp;lt;포이즌&amp;gt; 등 총 9편의 영화가 소개되며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영화학자, 영화비평가들의 강연도 마련되어 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상영 일정 : 2009. 12. 15(화) ~ 12. 20(일)&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상영 프로그램 문의 : &lt;/span&gt;&lt;a href=&quot;http://www.cinematheque.seoul.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http://www.cinematheque.seoul.kr&lt;/span&gt;&lt;/a&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특별 강좌&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 ‘장 주네에서 뉴퀴어시네마까지’ - 서동진(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교수, 문화평론가)&lt;br  /&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2월 16일(수) 20:00 &amp;lt;사랑의 찬가&amp;gt;+&amp;lt;우국&amp;gt; 상영 후&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2) ‘크렐 : 욕망과 권력의 스펙타클로서의 남성 신체’ - 박진형(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lt;br  /&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2월 19일(토) 19:00 &amp;lt;크렐&amp;gt; 상영 후&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3) ‘장 콕토와 오르페우스’ - 홍성남(영화평론가)&lt;br  /&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2월 20일(일) 19:00 &amp;lt;오르페의 유언&amp;gt; 상영 후&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앞서 상영하는 작품을 보신 관객들께 강연 참여 우선권을 드리며, 자리가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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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할리우드 고전 컬렉션 (2009. 12. 10. ~ 13. 광주극장)</title>
      <id>http://www.yhyd.org/10905</id>
      <published>2009-12-10T14:51:42P</published>
      <updated>2009-12-10T14:51:4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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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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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광주시네마테크는&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92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할리우드 고전 네 편을 필름으로 소개하는 &apos;할리우드 고전 컬렉션&apos;을 12월10일부터 나흘간 개최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다. 이번에 상영되는 네 편 &amp;lt;선라이즈&amp;gt;(1927),&amp;lt;분노의 포도&amp;gt;(1940),&amp;lt;신사는 금발을 좋아해&amp;gt;(1940),&amp;lt;실물보다 큰&amp;gt;(1956)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구축한 필름 라이브러리로 할리우드 걸작 영화들을 뉴 프린트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기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번에 상영되는 작품들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1920년대 무성영화의 걸작이자 스튜디오의 영화를 고품격 영화로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독일 영화의 거장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amp;lt;선라이즈&amp;gt;(1927), 그렉 톨렌드의 촬영과 존 스타인벡의 원작으로 유명한 사회적 리얼리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존 포드의 &amp;lt;분노의 포도&amp;gt;(1940), 스튜디오 시스템의 천재였던 하워드 혹스의 &amp;lt;신사는 금발을 좋아해&amp;gt;(1953), 시네마스코프 영화미학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니콜라스 레이의 &amp;lt;실물보다 큰&amp;gt;(1953)이 상영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상영일정 및 자세한 상영 프로그램 안내는 &lt;/span&gt;&lt;a href=&quot;http://cafe.naver.com/cinemagwangju/3728&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http://cafe.naver.com/cinemagwangju/3728&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참고.&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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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아시아 다문화주의 컨퍼런스 안내(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title>
      <id>http://www.yhyd.org/10887</id>
      <published>2009-11-17T01:18:54P</published>
      <updated>2009-11-17T01:18:54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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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gipsymoon</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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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kwon382.namoweb.net/asia/asia_01.jpg&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3718&quot; /&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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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2009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2009. 11. 11. ~ 15.)</title>
      <id>http://www.yhyd.org/10858</id>
      <published>2009-11-05T22:01:05P</published>
      <updated>2009-11-05T22:01:05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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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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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todaystory.net/img/f41efad99954acfdf6c5b5c52e2d0d30.jpg&quot; alt=&quot;f41efad99954acfdf6c5b5c52e2d0d30.jpg&quot; title=&quot;f41efad99954acfdf6c5b5c52e2d0d30.jpg&quot; width=&quot;345&quot; height=&quot;500&quot; style=&quot;VERTICAL-ALIGN: middle&quot; /&gt;&lt;/p&gt;
&lt;p align=&quot;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2009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2009. 11. 11. ~ 15.)&lt;/strong&gt;&lt;/span&gt;&lt;/p&gt;
&lt;p align=&quot;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a href=&quot;http://www.j-meff.co.kr/&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j-meff.co.kr/&lt;/a&gt;&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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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2009 국제애니메이션의 날IAD2009 상영회 개최 (2009. 11. 4. ~ 8.)</title>
      <id>http://www.yhyd.org/10850</id>
      <published>2009-10-30T18:24:14P</published>
      <updated>2009-10-30T18:24:14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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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img.todaystory.net/img/e5a0151bf690d82fa1ffa599f5c3f200.jpg&quot; alt=&quot;e5a0151bf690d82fa1ffa599f5c3f200.jpg&quot; title=&quot;e5a0151bf690d82fa1ffa599f5c3f200.jpg&quot; width=&quot;550&quot; height=&quot;777&quot; style=&quot;&quot; /&gt;&lt;br  /&gt;


&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제4회 국제애니메이션의날 (IAD: International Animation Day) 기념상영회가 11월 4일 ~ 11월 8일까지 5일간 방배동 백석예술대학교 아트홀과 신촌 이화여대 ECC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펼쳐진다. 오스트리아, 인도 등 전체 10개국 170여 작품을 상영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lt;/span&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gt;&lt;br  /&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일시: 2009. 11. 4. ~ 8.&lt;/span&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gt;&lt;br  /&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장소 :&lt;/span&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 11월 4일~11월 5일, 백석예술대학교 아트홀 (방배동)&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 11월 6일~11월 8일,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신촌)&lt;/span&gt;&lt;br  /&gt;&lt;br  /&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gt;&lt;br  /&gt;&lt;/div&gt;&lt;div align=&quot;justify&quot;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상영일정 및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lt;a href=&quot;http://www.asifakorea.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asifakorea.com&lt;/a&gt; 참고.&lt;/span&gt;&lt;br  /&gt;&lt;/div&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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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2009 SF과학영화제 (10. 29. ~ 31.)</title>
      <id>http://www.yhyd.org/10840</id>
      <published>2009-10-30T00:04:12P</published>
      <updated>2009-10-30T00:04:1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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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img src=&quot;http://www.yhyd.org/files/attach/images/3463/840/010/sffestival.jpg&quot; alt=&quot;sffestival.jpg&quot; title=&quot;sffestival.jpg&quot; width=&quot;351&quot; height=&quot;500&quot; style=&quot;&quot; /&gt;
&lt;p&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주최 : 한국과학기술학회, 국립과천과학관&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주관 : 서울SF아카이브, 고려대 과학기술학 협동과정,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후원 : 네이버, 동아 사이언스, 한국사회학회, 오멜라스, (주)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세움, 한국천문연구원, 2009세계 천문의 해 조직위원회, 필름포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개최 일시 및 장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일시 : 2009. 10 . 29 (목) ~ 10. 31 (토)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장소 : 국립과천과학관 어울림 홀&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주제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우주, 근미래에 대한 사회적 접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번 영화제는 과학기술과 사회(STS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성찰할 수 있는 SF 작품과 과학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에게 과학기술이 가지는 의미, 과학문화, 나아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성찰적 관심과 참여를 고취시킬 것으로 기대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강연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강연회는 과학문화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서 시민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서 준비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일시 : 2009년 10월 30일(금) 오후 5시&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장소 : 국립과천과학관 대극장&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강사 : 정재승 교수&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주제 : “영화적 상상력 vs 과학적 상상력”&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참석 대상 : 과학과 SF영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문의 : &lt;a href=&quot;http://cafe.naver.com/sffestival.cafe&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cafe.naver.com/sffestival.cafe&lt;/a&gt;&lt;/span&gt;&lt;/p&gt;&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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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상자료원 10월 연구소 포럼 (2009. 10. 30.)</title>
      <id>http://www.yhyd.org/10815</id>
      <published>2009-10-28T15:46:05P</published>
      <updated>2009-10-28T16:17:08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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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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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img src=&quot;http://www.yhyd.org/files/attach/images/3463/815/010/%EC%98%81%EC%83%81%EC%9E%90%EB%A3%8C%EC%9B%90.jpg&quot; alt=&quot;영상자료원.jpg&quot; title=&quot;영상자료원.jpg&quot; width=&quot;156&quot; height=&quot;109&quot; style=&quot;&quot; /&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주제 : 1950년대 대중예술계의 인적 유동성 - 무대와 음반·스크린&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일정 : 10월 30일(금) 오후 3시&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장소 :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3관&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pan&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발표연구자 : 이준희(대중음악연구자)&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구술증언자 : 오정심(작곡가 故 손목인 부인)&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참가방법 : &lt;a href=&quot;http://www.koreafilm.or.kr/main/bbs/news_view.asp?FindCol=&amp;amp;FindTxt=&amp;amp;seq=571&amp;amp;page=1&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e4ff75; COLOR: #000000&quot;&gt;영상자료원 홈페이지&lt;/span&gt;&lt;/a&gt;의 참가신청서를 작성해서 메일로 신청바랍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향후 일정 및 관련 내용에 대한 소식을 정기적으로 받고자 하는 분들은 02-3153-2085, &lt;/span&gt;&lt;a href=&quot;./mailto:phyozy@koreafilm.or.kr(담당자&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phyozy@koreafilm.or.kr(담당자&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박혜영)로 연락바랍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940년부터 1955년까지, 좀 더 넓게 잡아 1950년대 말까지는 한국 대중예술 역사상 무대의 역할이 가장 컸던 시기이다. 일제하 전시체제, 광복과 분단의 혼란, 6·25전쟁과 전후복구 등으로 인해 녹음이나 촬영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후반기는 그러한 악조건이 차츰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이어 1960년대에 한국 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하고 대중음악이 1930년대에 이어 두 번째 성세를 맞은 것도 그 이전의 역사적 경험과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다. 1950년대 10년은 무대의 하강, 음반과 스크린의 상승으로 인해 대단히 유동적인 때였고, 거기서 인적인 교류 또한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분야별 교류, 어떤 대중예술가가 복수의 분야를 아우르는 현상은 비단 1950년대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당시 대중예술계의 인적 유동성에는 분명 그만의 배경과 논리와 방식이 있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번 포럼에서는 이러한 1950년대 대중예술계의 인적인 교류와 유동성을 무대와 음반·스크린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포럼의 발표연구자로는 대중음악연구자 이준희 선생님이 참여해 개략적인 설명을 하고, 작곡가인 故 손목인 선생의 부인이신 오정심 선생님이 구술증언자로 자리를 함께 한다. 오정심 선생님은 가수, 영화제작자 등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악극 무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인물로 꼽힌다.&lt;/span&gt;&lt;/p&gt;&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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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2009 청룡영화상 청정원 단편영화상 작품공모</title>
      <id>http://www.yhyd.org/10811</id>
      <published>2009-10-22T17:18:12P</published>
      <updated>2009-10-22T17:18:1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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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화연대</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오는 12월 2일에 개최되는 제30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는 청정원 단편영화 신설, 단편영화상을 공모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청룡영화상의 단편부문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청룡영화상 홈페이지 &lt;/span&gt;&lt;a href=&quot;http://www.blueaward.co.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http://www.blueaward.co.kr&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를 참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접수기간 : 2008년 10월 19일(월) ~ 2008년 11월 9일(월)&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 시상내역 : 청룡영화상 청정원 단편영화상 1개부문 &lt;/span&gt;&lt;br  /&gt;&lt;br  /&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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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2009.10.22. ~ 11.01.)</title>
      <id>http://www.yhyd.org/10802</id>
      <published>2009-10-16T10:28:57P</published>
      <updated>2009-10-16T10:29:5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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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화연대</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img src=&quot;http://www.yhyd.org/files/attach/images/3463/802/010/1254914096.jpg&quot; alt=&quot;1254914096.jpg&quot; title=&quot;1254914096.jpg&quot; width=&quot;350&quot; height=&quot;497&quot; style=&quot;&quot; /&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 &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10월 22일부터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작품을 상영하는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을 개최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루키노 비스콘티는 귀족출신으로 청년 시절에는 공산주의자로, 말년에는 탐미주의에 빠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영화 안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루키노 비스콘티는 그의 영화 안에 오페라, 연극, 드라마, 음악, 문학이라는 모든 예술 장르를 새겨 넣은 흔치 않은 감독으로 고전예술의 미가 20세기에 점점 퇴락하고 있음을 근심한 예술가이자, 때마침 이탈리아에 불어 닥친 파시즘과 싸운 투쟁가이기도 했다. 이번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에서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생성된 새로운 영화 조류인 네오리얼리즘의 기수였던 그의 데뷔작 &amp;lt;강박관념&amp;gt;(1943)을 비롯해 그의 네오리얼리즘의 절정에 있는 작품으로 시칠리아 고기잡이 노동자들의 비참한 운명의 굴레를 사실적으로 보여준 &amp;lt;흔들리는 대지&amp;gt;(1948), 오페라와 연극을 접목해 화려한 귀족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 &amp;lt;센소&amp;gt;(1954)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소설을 영화화한 &amp;lt;이방인&amp;gt;(1967), 말년에 이르러 탐미주의와 심취한 비스콘티가 루드비히 2세의 파란만장하지만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는 4시간에 걸친 대작 &amp;lt;루드비히&amp;gt;(1972) 등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작 6편을 소개하며, 또한 영화 평론가가 참여해 루키노 비스콘티의 초기와 후기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짚어보며 그의 영화세계를 조망하는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어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Luchino Visconti // 1906 - 1976&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루키노 비스콘티의 삶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의 영화 역시 하나의 의미로 분류할 수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으로 음악가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귀족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청년 시절 공산당원으로 말년에는 탐미주의에 심취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젊은 시절 수많은 오페라와 연극을 연출한 연출가로도 이름을 알린 비스콘티는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해 1942년,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이 원작으로 네오리얼리즘의 맹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amp;lt;강박관념&amp;gt;을 발표한다. 그의 두 번째 영화는 &amp;lt;흔들리는 대지&amp;gt;(1947)로 시칠리아 섬의 고기잡이의 노동과 착취를 사실적으로 그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중심에 서게 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네오리얼리즘에서 출발했던 비스콘티는 &amp;lt;센소&amp;gt;(1954)에서부터 조금 다른 성향을 드러낸다. 색채, 구도, 카메라 움직임, 의상, 무대 디자인이 화려한 바로크 시대로 점철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오스트리아 점령기의 한 베니스 여인이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멜로드라마의 형식으로 녹여낸다. 시칠리아에서 밀라노로 이주해 사랑가는 가난한 가족의 고투를 담은 &amp;lt;로코와 그의 형제들&amp;gt;(1960). 19세기 시칠리아를 무대로 귀족계급의 가치가 쇠락해가는 과정을 웅장하고 우아하게 묘사한 시대극 &amp;lt;레오파드&amp;gt;(1963)는 &amp;lt;흔들리는 대지&amp;gt;와 &amp;lt;로코와 그의 형제들&amp;gt;과 함께 비스콘티 시칠리아 3부작 중 하나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60년대 중반 귀족주의적인 탐미성향에 빠져든 비스콘티는 &amp;lt;베니스에서의 죽음&amp;gt;(1971), &amp;lt;루드비히&amp;gt;(1972)를 통해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탐미주의 예술관을 드러냈다. 그는 &amp;lt;이노센트&amp;gt;(1976)를 유작으로 1976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영화사 강좌: 루키노 비스콘티의 세계 &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을 맞아 이탈리아의 영화전문가와 영화평론가가 참여해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세계를 조망해보는 영화사 강좌를 마련합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제1강. 10월 24일(토) 14:00 &amp;lt;강박관념&amp;gt; 상영 후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비스콘티와 이탈리아 영화- 홍성남(영화평론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제2강. 10월 25일(일) 13:00 &amp;lt;루드비히&amp;gt; 상영 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오페라와 영화- 한창호(영화평론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제3강. 10월 28일(수) 19:30 &amp;lt;센소&amp;gt; 상영 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멜로드라마와 역사-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제4강. 10월 31일(토) 14:00 &amp;lt;이방인&amp;gt; 상영 후&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951015&quot;&gt;비스콘티와 문학 - 정의진(불문학자)&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앞서 상영되는 작품을 보신 관객들에게 참여 우선권을 드리며, 자리가 남을 경우 선착순으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lt;strong&gt;[상영작 목록]&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amp;nbsp; 강박관념&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amp;nbsp; 1943 | 이탈리아 | 112min | B&amp;amp;W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2.&amp;nbsp; 흔들리는 대지&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amp;nbsp; 1948 | 이탈리아 | 157min | B&amp;amp;W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3.&amp;nbsp; 센소&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amp;nbsp; 1954 | 이탈리아 | 115min | Color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4.&amp;nbsp; 이방인&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amp;nbsp; 1967 | 이탈리아/프랑스/알제리 | 100min | Color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5.&amp;nbsp; 루드비히&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amp;nbsp; 1972 | 이탈리아/프랑스/독일 | 247min | Color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6.&amp;nbsp; 가족의 초상&amp;nbsp; 루키노 비스콘티&amp;nbsp; 1974 | 이탈리아/프랑스 | 121min | Color &lt;/span&gt;&lt;br  /&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문의 : &lt;/span&gt;&lt;a href=&quot;http://www.cinematheque.seoul.kr/&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http://www.cinematheque.seoul.kr/&lt;/span&gt;&lt;/a&gt;&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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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화적 체험展 (2009. 10. 16. ~ 25. 영상자료원)</title>
      <id>http://www.yhyd.org/10751</id>
      <published>2009-09-27T13:36:04P</published>
      <updated>2009-09-27T13:36:04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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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영화연대</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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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http://www.yhyd.org/files/attach/images/3463/751/010/cex1.jpg&quot; alt=&quot;cex1.jpg&quot; title=&quot;cex1.jpg&quot; width=&quot;650&quot; height=&quot;920&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2009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10월 16일부터 25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코파에서 귀빈 여러분들을 모시고 세기의 명배우 그레타 가르보 양이 주연한 『춘희』를 비롯, 국내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가르보孃의 처녀작 『괴스타 베르링스 사가Gősta Berlings Saga』, 『기쁨 없는 골목길Die Freudlose Gasse』 등을 상영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시대의 명배우 문예봉, 한은진 양, 심영 군이 존경해마지 않았던 샤루르 보아와에 씨의 &amp;lt;가행복&amp;gt;, 포라 네그리 양의 &amp;lt;마쯔루카&amp;gt;, 째넬 맥드날드 양의 &amp;lt;러부 파라듸&amp;gt; 등 1930년 대 모던 껄· 보이에게 사랑받았던 영화 10편을 통해 근 80여년이 지난 1920~30년대의 망탈리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특별히 이번 기획전에서는 금 9월 막 복원 출시된 『기쁨 없는 골목길』 DVD 제작을 총 지휘한 뮌헨영화박물관 슈테판 드뢰슬러 관장을 모시고 『기쁨 없는 골목길』의 복원 과정에 대해 듣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강연은 10월 17일 토요일 오후 5시, 입장은 무료.&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o 일시: 2009.10.16~25 (19일 월요일 휴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o 장소: 시네마테크KOFA 1,2 관&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o 주최: 한국영상자료원&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6&quot; align=&quot;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o 후원: 문화관광체육부, 독일 뮌헨영화박물관, 독일 분데스 아카이브, 스웨덴 필름 인스티튜트, 프랑스 CNC, 미국 ULCA 필름 아카이브&lt;/span&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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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끝맺음 없는 강박관념 - 반복되는 기억과 행위, 홍상수의 영화들</title>
      <id>http://www.yhyd.org/10745</id>
      <published>2009-09-26T21:18:48P</published>
      <updated>2009-10-13T18:14:39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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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영화연대</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class=&quot;bt11&quot;&gt;이제 한국영화에서 영화스타일을 말할 때, “홍상수 스타일이야”라고 말하는 경우는 이미 흔해졌다. 이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한데 묶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스타일’의 성립을 말하기도 하지만, 스타일의 변화 역시 포함할 수 있는 말이다. ‘홍상수식 스타일의 영화’ 혹은 ‘이거 홍상수식인데’라고 말하는 그의 스타일은 이렇게 한국영화에서 분명히 대중적이든 아니든, ‘다름’을 가진 형식을 가진 채, 일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드문 영화미학을 구축한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lt;img src=&quot;http://mamoro3.cdn2.cafe24.com/wb01.jpg&quot; alt=&quot;wb01.jpg&quot; title=&quot;wb01.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내가 홍상수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자 하는 부분은 그의 영화 속 인물의 모방과 재현이 말의 패턴, 행위의 패턴 등으로, 시공간 그리고 기억을 오가면서 개별적인 퍼즐을 구성하는 기이한 메커니즘에 관해서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홍상수’라는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려는 과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해 말하려는 본인의 욕망 중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홍상수의 영화에 관한 일련의 모호함을 풀어내려고 노력한 작은 시도이면서, 짤막하게나마 그의 영화 전체를 둘러보는 기회로 삼으려는 일종의 애정 표시이다.&lt;/p&gt;
&lt;p class=&quot;st11&quot;&gt;1. 말의 반복과 행위의 반복으로, 행위을 직조하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인물간의 대화와 행동이 기억과 결부된 모방으로 이루어지거나 반복된다는 것이다. 특히 반복된 말과 행동이 캐릭터 구성과 내러티브 구성으로 짜여진다. 이것이 혹, 흔히 말하는 ‘일상성’의 일부분 중 하나라고 규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mp;lt;생활의 발견&amp;gt;(2002)에서 성우는 경수와 함께 방석집에 앉아 술에 취해 몸을 좌우로 흔든다. 그리고 그는 경수와 명숙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도 역시 좌우로 몸을 흔든다. 이 행동은 경수가 경주에 내려가 선영과 술을 마시면서 재현된다. 후에 성우의 습관적 행동은 경수에게 전이되어(혹은 경수가 모방하여) 일시적 인간관계를 지체하는 일부분으로 작용시킨다. 방석집에서 취한 채 몸을 흔드는 성우에게 그의 파트너는 “왜 자꾸 몸을 흔드냐”고 다그치지만, 그는 취해서인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몸을 흔들 뿐이다. 그의 행동을 모방한 경수는 선영에게 같은 질문을 받는다. 반면에 경수는 “술 마실 땐, 술이 취하지 않게 하구요. 기분이 무거울 땐, 그냥 앞뒤로 흔드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대답은 진지한 대답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그 이전에 오히려 경수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성우의 행동을 경수가 ‘따라했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경수의 대답은 그다지 ‘진짜 이유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대충 대답한 것처럼 보인다. 왜 경수는 술 마실 때 몸을 흔들었을까. 성우도 그랬지만, 경수 역시 항상 몸을 흔들지는 않는다. 성우가 술이 취했을 때 그랬듯, 경수 역시 술 마실 때 몸을 흔들었지만 술이 취했을 때 흔들지는 않는다. “술이 취하지 않게 하구요”라는 경수의 대답은 오히려 성우의 행동과는 정반대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캐릭터간 행동의 모방이 결코 단순한 베끼기로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인간의 행동은 영향관계 속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방으로부터 모방한 것은 결코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전이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차이가 파생되고, 인물간의 동질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영화에서 설정한 단순한 인물의 대사와 행동이 인물간 갈등구조에 연결되지 않은 가닥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인물이 인물에게 영향받아 전이되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전혀 반대방향의 성질들로 변하게 되는 모순들을 지적해내고, 그것은 의도된 플롯 배치로 더욱 더 강조된다. 내러티브상의 존립근거를 무색케 하는 이러한 발상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의 중요성보다는, 객체들의 비합리성에 관한 조소섞인 배열로써 끊임없이 인물들의 말과 행위에 관해 묘사한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홍상수의 영화에서 캐릭터들의 행동은, 정해진 귀결을 좇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간적으로 다음 순번을 기약하지 않는다. &amp;lt;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amp;gt;(1996)에서 보경은 어쩌지도 못할 자신의 처지를 순간적인 우울로 표현한다. 영화는 이른 새벽, 신문을 보다 말고 천천히 신문 한 장 한 장을 마루에서 베란다 방향으로 깔아놓던 보경이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끝맺는다. 이 종결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amp;lt;강원도의 힘&amp;gt;(1998) &amp;lt;생활의 발견&amp;gt;(2002) &amp;lt;여자는 남자의 미래다&amp;gt;(2004) &amp;lt;극장전&amp;gt;(2005) &amp;lt;해변의 여인&amp;gt;(2006)의 결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amp;lt;강원도의 힘&amp;gt;에서 상권은 지숙과 (영화 속에서 잠정적인 마지막)섹스를 하고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새로 부임한 교직을 위해 사무실을 정리하던 중 상권은 키우고 있었던 세숫대야의 금붕어를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다. 이 장면은 기이하게도, 영화 초반부 지숙이 강원도 여행 중 산길에서 발견한 금붕어를 산채로 묻어주는 장면과 병치된다. 그런데 이 두 주인공이 마주하는 금붕어는 영화 속에서 어떠한 설명도 거두어내지 않는다. &amp;lt;생활의 발견&amp;gt;의 경수는 어떠한가, 선영을 문밖에서 기다리던 경수는 춘천에서 성우가 말했던 회전문의 전설처럼 천둥과 함께한 장대비를 맞으며 결국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amp;lt;여자는 남자의 미래다&amp;gt;에서 헌준은 선화의 (알 수 없는)행동에 화를 내며 사라지고, 그들과 같이 있던 문호는 우연히 만난 학교 학생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여학생과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여학생을 보낸 후 홀로 찻길에 휑하니 서 있다. &amp;lt;극장전&amp;gt;의 동수는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낸 후 선배감독 이형수의 병문안 을 마치고 “생각을 해야 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이라고 중얼거리며 열심히 걸어간다. &amp;lt;해변의 여인&amp;gt;의 문숙은, 서울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재빨리 해변을 벗어난다. 무엇이 주인공들을 ‘어디로 가야할까’라는 고민에서 자유롭게 하는가. 기실 주인공들은 결코 어떤 뚜렷한 방책도, 계획도 없는 ‘쉬어가는’ 사람들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극심한 갈등으로 점철된 내러티브가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들의 시덥지 않은 여유를 노출시키는 것 보다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캐릭터를 관조하기 때문이다. 홍상수는 캐릭터가 경유하는 시공간에 대해 기억의 모티브를 끄집어내어 해결되지 않을 문제를 다시 도제해낸다. 그 속에서 모방과 반복이 재생산되고, 인물들은 느린 걸음으로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관객은 다시, 느리게 영화를 사유한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그의 영화에서 인물의 행위가 대사를 통해, 행동을 통해 모방되고 반복되는 것은 외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가 아닌 비(非)장르적 성격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스펙터클하거나, 이야기에 깊이 빠질 수 있는 매력은 없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특정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든가, 캐릭터의 세부적인 행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지고지순한 사랑도 없고, 애틋한 멜로도 없으며, 캐릭터 상호간의 믿음이나 신뢰도 두각되지 않는다. 정말로, 인물간의 의사소통 그리고 관계에 관한 영화다. 인물이 서로 가지는 관계를 말할 때,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틈새를 포착하는 것, 그것이 말과 행위를 탐구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가볍고도 무거운 가치인 것이다. 정리해 보면, 홍상수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인물들의 시시껄렁함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거창하지’ 않다. 반복과 모방을 할 뿐이다. 그들은 공간 속에 놓여 있으며, 약간의 이동을 할 수 있고, 말을 하고 약간의 행위를 할 뿐이다. 그 뿐이다.&lt;/p&gt;
&lt;p class=&quot;st11&quot;&gt;2. ‘기억’으로 현재를 지속시키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점잖은 동창(이하 동창): 그래도 너 영화보러 온 거 보면, 너랑 형수선배랑 친하긴 친했다 그지?&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 학교 다닐 때 그랬지, 나도 안본 지 오래돼.&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 그래도 서로 닮은 게 많잖아.&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 뭐가 닮았어?&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 뭐, 쿨한 척 하는 것도 그렇구, (피식 웃으며) 또 여자도 많이 좋아하고. 그리구 이번에 하려던 영화도, 비슷하지 않아?&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 (피식 웃으며) 치, 자식, 난 하여튼 니네 집에서 해준 갈비찜만큼(이 때 줌 아웃하는 카메라. 동창과 동수의 투숏에서 옆에 앉은 친구의 아내까지 잡힌 쓰리숏으로) 맛있게 먹은 갈비찜이 없었어 진짜.&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 무슨 갈비찜? 아아, 그게 몇 년 전껀데에..&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처: 아아, 그걸 기억하세요? 아 역시,(멋쩍게 웃으며) 아직도 그런 걸 기억하시는 구나.&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 진짜 맛있었는데, 살이 이렇게(두 손을 올려 고기가 양쪽으로 쪼개지는 모양을 만들며) 완전히 살살 녹았어.&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하하 (다들 웃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 (동창을 바라보며) 너 근데 너 갈비찜 먹으면서 니 와이프 칭찬 몇 번 했는줄 알아?&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 갈비찜 먹으면서?&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처: 그랬어요? 당신이?&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동창처와 친구를 번갈아 본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 여섯 번이다. 내가 그때 세 봤거든. 여섯 번을 칭찬하더라고 니가.&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창:(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으며 손가락질한다) 별걸 다 기억한다니까.&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다들 소리 내어 웃음. 그 때 동수에게 원숏으로 다시 줌인.&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동수:(아래를 쳐다보고 웃으며 말한다) 난 누가 그렇게 음식 칭찬하는 거 첨 봤거든. (얼굴이 굳어지며 두 손으로 얼굴을 부빈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위 대화는 &amp;lt;극장전&amp;gt;에서 우연히 만난 동수와 그의 동창이 점심식사를 하는 중화요리 집 씬 중 일부이다. 여기서 이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동수는 동창이 형수선배(전반부 영화의 감독)와 자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바로 동창에 대한 기억으로 화제를 돌린다. 동창이 떠올리는 기억은 동수와 형수선배와의 유사점들인데 이 기억은 사람과 사람을 기억할 때 가장 평범하게 각인되는 것들이다. 반면 동수의 동창에 대한 기억은 몇 년 전 동창이 아내의 음식 솜씨를 ‘몇 번’ 칭찬했는지다. 동창의 기억은 과거, 현재를 아우르는 연속성이 부여된 것이라면, 동수의 기억은 그 자체로 단절될 수밖에 없는 기억이다.(중화요리집에 와서 몇 년 전 먹은 갈비찜이 떠오른다는 것 역시 의아하다) 동창의 칭찬으로 인해 당시 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동수의 언급은 그걸로 중단된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lt;img src=&quot;http://mamoro3.cdn2.cafe24.com/tale.jpg&quot; alt=&quot;tale.jpg&quot; title=&quot;tale.jpg&quot; width=&quot;760&quot; height=&quot;493&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다음 장면은 식사를 마친 후 음식점 문 밖에서 이루어진다. 어쨌든 동수와 형수선배와의 연관성은 단정적으로 동수의 입으로 동수의 입장에서만 정당화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동수와 형수선배의 취향은 단지 ‘비슷했을 뿐’인 것처럼 보이는데 동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수선배가 자신을 따라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amp;lt;오!수정&amp;gt;(2000)과 같은 기억의 차이가 논해질 것처럼 보이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이형수의 입으로는, 그의 시각으로는 언급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철저히 동수에 관한 이미지임을 자각해야한다. 여기서 형수의 기억따위, 제 3자의 기억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인간의 기억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전반부영화에서 상원과 영실이 있던 호프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다시 사랑한다면’은, 동창모임에 참석하려는 동수가 남산을 올라가며 휴대폰으로 듣게 된다. 그리고 동수는 모임에 참석한 배우 영실에게 그 노래를 신청함으로써 다시 반복하여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영화 밖을 빠져나온 관객(우리)이 너무 자연스럽게 상기해버릴 수 있는 감상적 기억들 따위와 동일한 것이다. 홍상수는 대단한 기억에 대해 말하지 하지 않는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amp;lt;해변의 여인&amp;gt;에서 문숙과 선희는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 중래는 전 부인의 나쁜 이미지와 문숙의 과거이미지 사이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들의 기억은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것이며, 인물들은 각각 영화 속 현재에서 혼자 갈등을 겪는다. 이에 반해 영화 속 인물들 간의 간극을 채워주는 회상씬을 집어넣은 경우를 보여주는 영화가 &amp;lt;여자는 남자의 미래다&amp;gt;이다. 헌준과 문호는 둘 다 그들이 함께 앉아있는 시퀀스에서 각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창문 너머의 같은 여자를 보고 그들의 과거 여자 선화를 떠올린다. 즉 하나의 시퀀스 안에서 두 개의 회상씬이 끼워져 있는 셈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각자의 기억으로 회상된 씬들은 &amp;lt;오!수정&amp;gt;에서처럼 각기 다른 시점의 동시간을 경유하지 않고, 철저히 분리된 시공간을 기억하는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 후 영화는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문호로 하여금 헌준과 선화의 관계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게 하며, 놀이터에 앉아 난데없는 나르시스적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 시퀀스에서 문호가 두르게 된 빨간 목도리의 주인인 여학생은 술자리 후 문호와 함께 여관에 가게 된다. 이제 헌준과 선화와의 어떤 관련도 맺어지지 않은 채, 오롯이 문호의 독립된 이야기로 집중된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 역시 문호의 서성거림으로 일단락된다. 영화 초반부, 열심히 헌준과 문호의 회상으로 이들을 ‘이야기’하던 영화는 오히려 헌준과 선화의 미래에 집중하기는커녕, 제3의 인물(처럼 보이는) 문호의 이야기로 후반부 힘을 싣는다. 사실 ‘기억’이란 것은 홍상수의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이지만, 그의 영화에서 좀 더 중요한 것은 물 흘러가듯이 흘러가야만 하는 영화 속 현재-자체인 것이다. 헌준과 선화의 관계는 거기서 끝, 문호와 선화의 관계 역시 거기서 끝이다. 헌준은 미국에서 돌아와 ‘무엇을 해야 할 지 결정해야’ 하지만, 문호는 진행형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히려 문호의 욕망이 영화 속 후반부에 배치된 것은 아닐까. 선화의 현재는 어쨌든 헌준과 문호의 회상 속에 존재했던 과거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미 그들의 기억 속을 지배하는 예전의 선화가 아니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홍상수는 도통, 영화 속 인물이 ‘기억하는 것’을 내러티브의 결정권 속으로 밀어넣지 않는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다. 다만 그들의 기억을 용의주도하게 ‘배치하는 것’에는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처절하게 기억의 상이함으로 영화 구성의 모티브를 만든다. &amp;lt;생활의 발견&amp;gt;에서 경수가 선영에게 다가서는 이유는 선영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중학교 시절의 기억 때문이 아니다. 겨우겨우 그녀의 손동작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말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러한 기억이 내러티브를 결정한다면 즉시 회상씬을 배치해야 하지만 결코 회상씬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홍상수가 말하는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영화라는 매체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현재를 말할 수 있는 모티브 중 하나가 되지만, ‘현재’의 짧은 순간 속에서 괄목할 만한 단서로 기능하지는 않는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홍상수의 모든 영화가 ‘긴 시간’을 설정하지 않는 ‘말하기’ 방식을 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보통 영화가 규정하는 방대한 시간성은 끊임없이 지나쳐가는 대과거/과거/이른 과거 등을 만들게 되는데, 그렇다면 온전한 영화적 현재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논의를 펼치는 영화로 &amp;lt;극장전&amp;gt;을 들 수 있는데, 홍상수는 방대한 시간성의 간격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전반부)와 온전한 영화적 현재로 구성되는 동수의 이야기를 이음매 없이 이어 붙임으로써, 시간의 단절을 좁히게 된다. 동수의 기억으로 말해지는 ‘말보로’담배와의 시간적 간극과, 자신의 행위를 모티브화 하여 영화(전반부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그의 말은, 회상으로 복귀하지 않고, 말의 일시성으로 환기될 뿐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amp;lt;생활의 발견&amp;gt;에서 경수의 날듯 말듯한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영화에서 대과거는 &amp;lt;여자는 남자의 미래다&amp;gt;의 회상씬과, &amp;lt;극장전&amp;gt;의 1부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온전한 영화적 과거는 아니다. 잠정적으로, 홍상수의 영화에서 영화적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는 현재를 향한 모티브로, 연속적인 시간성을 용인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의 영화는 철저하게 시간을 분리시킴으로써 그것이 현재의 시.공간과 얽매이지 않도록 하는 방법론을 구사한다. 인물의 기억과 시간의 상관성은 오로지 ‘영화’에서, 그것이 ‘영화’일수 있도록 조직될 수밖에 없다.&lt;/p&gt;
&lt;p class=&quot;st11&quot;&gt;3. 끊임없이 닫힌 시공간을 유영하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여행에서, 인물들은 술을 마시고 만난 지 몇 시간 안 되어 스스럼없이 섹스를 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은 적이 없다. 느슨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술의 기운은, 반대로 인물간의 관계 설정이 견고해지는 데 도움을 준다. 단지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술을 마시면서 대화의 진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상황 속에서 일련의 포인트가 구축되는 것이다. &amp;lt;오!수정&amp;gt;의 재훈은, 술자리를 통해 수정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동기를 만든다. &amp;lt;여자는 남자의 미래다&amp;gt;에서 역시 헌준과 문호는 둘의 술자리에서 각각 선화를 떠올리게 되고, 즉흥적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인물들은 뚜렷한 기약없이 행동한다. 그래서 더욱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밖에 없게 되고, 술을 마시거나, 여관에 갈 수 밖에 없다. 간혹 누군가의 ‘집’에 들른다고 할지라도, 역시 목적은 섹스이거나 쉬어가는 페이지의 일부분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영원히 정착할 수 있는, 혹은 묶여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시간 역시 얽매이지 않는 흐름 속에 놓여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놓을 여력은 없다. 역으로 말해, 시간과 공간은 산, 바닷가, 도시 속에서 배회할지언정 배회의 지점에 연결된 사다리와 같은 탈출구는 없다. 이들의 행위가 어느 순간 매우 건조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바로 그 점을 발견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그런데, 남녀의 행위에는 논리적이지 않은 대화, 술, 기다림 등뿐만 아니라 ‘섹스’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남녀가 가까워지는 순간은 술을 마시는 장소에서 이루어지지만 육체관계를 통해 또 하나의 의미없음을 만드는 순간은 남녀가 여관방에 공존하는 그 순간이다. 역시 끊임없이 무의미의 공간을 상정시키는 섹스씬에서 그들은 결코 ‘사랑’이라는 애틋함이 왠지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아니 표현하지 못한다. 이들 남녀가 벌이는 일종의 일탈은 어떤 의미에서 그 가치의 유무를 판단하게 할 수 있는가. &amp;lt;생활의 발견&amp;gt;의 명숙의 말처럼, “이제 거짓말하지 말자”라는 말은 정말로 솔직한 제스처인가. &amp;lt;오!수정&amp;gt;의 수정과 재훈을 제외하고, 나머지 영화들에서 남녀는 결합되기만 하면, 거짓말하지 않고 섹스를 한다. 그들의 밀착되어 있는 육체들처럼, 영화는 좀 더 닫혀있는, 은밀한 공간 속에서 행위를 전개시킨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홍상수의 영화는 굉장히 미시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이다. &amp;lt;해변의 여인&amp;gt;에서는 어떤가. 아예 해변가 숙박업소와 음식점 몇 군데로 한정된 인물들은 또한 이제까지의 영화들 중 가장 좁은 공간들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홍상수는 데뷔작부터 일관되게 짧은 시간동안 인물들의 움직임을 그려내는데, 이제 점점 그 영화적 시간은 단축되고 있다. 동시에 사건 역시 점점 줄어든다. 점점 분절되는 시간들은 공간 속에서 천천히 유영하고, 끊임없는 지체 속에서 동작을 반복, 구성한다. 
&lt;p class=&quot;st11&quot;&gt;4.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꼬리를 물고 미완성의 지도를 그린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미시적인 이야기 구성은 사실 영화적 현재에 충실히 집중하는 장점을 가진다. 그래서 홍상수의 개별적인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 이미지, 혹은 이야기(일회적인 말로써 증발되는 것들)가 부재했을 경우 그 여백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홍상수의 영화는 러닝 타임 속에서 꽉 찬 구성적 시간을 갖추고 있으며 흥미로운 시공간의 배열을 조직한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오브제들이나 대화들이 그러한 배열구조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은 반대로 미시적 시공간의 배열이 낳은 모순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amp;lt;극장전&amp;gt; 전반부에서 영실이 상원에게 갑자기 “첩해줄까?”라고 제안한다든지, &amp;lt;해변의 여인&amp;gt;에서 중래는 해변에서 만난 개 ‘돌이’를 무서워 하지만, 주인이 버리고 간 후 마주친 ‘돌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데, 그러자마자 중래가 다리를 다치게 된다. 이 엉뚱하고도 비인과적인 인물 행위의 결과는 비어있는 내러티브라는 구석진 공간에 침잠되는 상황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행위는 결코 플롯 구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있는 그대로 묻어둘 수밖에 없는 매개고리들이다.&lt;/p&gt;
&lt;p class=&quot;bt11&quot;&gt;이 풀 수없는 모순된 상황들은 끝까지 왜?를 물어보지 않고, 그 자체로 비워둔 채 영화 안으로 포섭된다. 홍상수 영화를 말하면서 가장 풀리지 않는 숙제가 이러한 부분들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amp;lt;극장전&amp;gt;의 동수가 행했던 것처럼, 끊임없는 모순과 모방적인 상황을 재현하는 인간들의 알 수없는 움직임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실제 순간들에서 감지한 채 우리의 은연 중 의식 속에 자리잡은 일부분이다. 영화 속 캐릭터가 영화 속 시간과, 실제 러닝타임 속에 귀속되어 미니어처처럼 작동되고 있는 동안 우리도 의식되지 않은 불균질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amp;lt;생활의 발견&amp;gt;의 경수가 선영에게 섹스가 잘 이루어지지 않자, “우리 같이 죽을까요?”라고 말하거나, &amp;lt;극장전&amp;gt;전반부에서 상원이 영실에게 “깨끗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이 역시 후반부, 동수가 배우 영실에게 하는 말로 전이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는 주인공이 결심하려는 죽음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에서 집중하는 것은 결코 주인공이 죽음을 결심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죽음은 그들 자신에게도, 심지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납득이 되지 않거나 설명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존재 의미 그 자체다. 홍상수가 던져놓고 결론짓지 않는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설정들이다. 반드시 드러내주어야 하는 것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 바꿔 말하면, 왜 그렇다면 그것들은 전부 말해져야 하는가? 라는 말로 치환된다. 어차피 홍상수의 영화는 처음부터 미수에 그친 이야기를 반복하는 중이다.(&amp;lt;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amp;gt;을 상기해 보라. 등장인물들이 비로소 ‘깨닫는 것’은 무엇이었나?)&lt;/p&gt;
&lt;p class=&quot;st11&quot;&gt;5. 결론의 부재&lt;/p&gt;
&lt;p class=&quot;bt11&quot;&gt;홍상수의 영화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 대해 집착적일 정도로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항상 같은 얘기만 한다고 느끼게 된다. &amp;lt;오!수정&amp;gt;부터 시작된 인물구도(남-여-남)는 대체적으로 &amp;lt;해변의 여인&amp;gt;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데, 인물들의 말, 행동 등 역시 거의 변하지 않는 패턴으로 이어간다. 그런데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영화 속 인물들은 거창하게 행동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갇혀 있지 않는다. 나는 이글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시공간을 유영하는 기억들이 반복과 모방의 행태로 재현되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는데, 이 점은 홍상수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들여다봐야 할 뼈대이다. 그는 정말 인간들이 놓치고 있는 무수한 소일들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것은 역설이기도 하고, 냉소이기도 하며, 일침이기도 하다. 왜 굳이 우리는 스펙터클에 시야을 노출시켜야만 하는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들여다보지 못할 부분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확대경이다. 그가 반복하고, 모방하며, 촉수를 곤두세우며 욕망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다현(vovovdh)&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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