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jpg

 영화 <사과>에서 전적으로 현정(문소리)의 시각에 한정된 상훈(김태우)과 민석(이선균)은 한 마디로 답답한 존재다. 그들은 ‘선언’하지만(“헤어지자!”, “지방으로 내려가!”) ‘부연 설명’하지는 않는다. 현정은 나름대로 해석해보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더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널 좋아하는 만큼 날 양보하는 게 널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거든. 그러다 보니 내가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

물론 민석의 이 말은 상훈에게도 해당이 되며, 현정에게 어떤 깨달음을 준다.

“난 여태껏 사랑이라는 걸 그래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정말로 정말로 노력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애. 미안해.”

그래서 현정은 민석과 상훈 모두에게 ‘사과’를 한다. 상훈과 민석은 사랑하는 현정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양보하며 살았지만 현정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결론은 대단히 보수적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파국은 현정의 잘못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석의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어떤 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지우며 살 수 없다. 그래서 민석은 현정에게 이혼을 선언하고, 상훈은 구미로 자진해서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민석과 상훈은 현정을 사랑하면서 현정과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즉, 소통조차 되지 않는데 사랑이라고 믿고 연애하고 결혼한 것은 양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현정에게만 ‘사과’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의 미덕은 우리네 삶에 스며 있는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민석도 상훈도 현정도 사실 서로에게 소통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아니 깨달을 수 없다. 이는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착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장 주관적이고 고립된 감정이면서도 상대방과 함께 공유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사랑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 끝났을 때뿐이다. 그래서 민석은 현정과 소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성찰해 내고 현정 역시 자신을 돌이켜 민석에게 ‘사과’를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끝나 버리는 것일까?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늦더라도 이렇게 성숙해 간다.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현정은 다시 사랑할 힘을 얻고, 또한 다시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