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가 나타내는 메타포는 분명해 보인다. 하나의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이 괴물로 변한다는 설정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래로 줄곧 변주되던 인간의 이중성에 관한 물음이 담겨 있다.

물론 영화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실존적 고뇌와는 거리가 있고 캐릭터 역시 평면적이어서 그저 상징만 차용해 온 혐의가 짙다. 설령 괴물로 변했다고 하더라도 헐크는 여전히 선량하기 때문이다. 즉, 외현된 괴물의 모습과 포악스러움이 한 인간의 본질까지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설정이 전제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헐크를 쫓는 썬더볼트 장군이나 브론스키의 '악당스러운' 본질 역시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실제 괴물은 헐크가 아니라 썬더볼트 장군이나 브론스키인 셈이고 결말에 이르러 브론스키의 헐크화가 이를 증명한다.

브루스의 헐크와 브론스키의 헐크는 대비적이다. 브루스는 오직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을 때만 분노한다. 브루스의 분노나 공격성은 따라서 '방어적'이다. 브루스의 헐크는 본질적으로 평화를 원하지만 자신의 평화나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 드러나는 개체적 본능이다. 브루스의 헐크는 외친다. '날 좀 제발 내버려 둬!' 그러나 군인인 브론스키는 누군가를 제압하고자 하는, 그래서 누군가에게 제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분노요 공격성이다. 그것이 그대로 강인한 힘에 대한 숭상과 맹목적 추종을 낳는다.

브론스키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혹은 연약함 자체를 매우 추하고 부끄럽게 여긴다. 어쩌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헐크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브루스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한 여인 앞에 서서 약해지는 헐크는 다시 부르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함을 알고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는 분노를 누를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의 해결책을 사랑에서 찾는다. 부르스가 그토록 자신에게서 떼어버리고 싶어했던 괴물 헐크는 절대로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저 제어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 연약함을 인식할 수 있다. 헐크가 우리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은 연약함이 우리에게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니 우리가 그 연약함을 감추고 억누르는 대신 그대로를 직시하고 인정할 때 헐크의 방문은 늦춰지지 않을까? 물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그대로 드러내어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함께 공유하고 보듬는 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