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오랜만의 영화관 나들이. 딱히 어떤 영화를 보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에 흥겨운 음악이나 들을 겸 <맘마미아>를 선택했다. ABBA의 노래는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들으면 흥이 나는 그런 노래다. 특히나 댄싱퀸을 들을 때면, 나비가 생각나면서 두 팔을 퍼덕이는 그런 기괴한 춤을 추고 싶다. 하지만 <맘마미아>는 ABBA의 한번 흔들고 나오는 콘서트가 아니었고, 가만히 앉아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영화의 반을 채우는 흥겨운 음악 역시도 그리 즐겁게 들리지 않았다. 음악은 겉돌기만 했고, 영화는 영화대로 음악때문인지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영화사의 로고와 함께 나오는 돌비 서라운드가 한 바퀴 돌고, 뭔가 벌어질 거 같은 영화의 도입부가 나오는 그 잠깐이다. 친구 중 하나는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라 하는데, 나는 영화에서 그렇다. 정말이지 그 순간은 '아. 씨발' 한다. <맘마미아> 역시, 그 순간 만큼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떻게 "Gimme Gimme Gimme"의 도입부가 들리는데 안그럴 수 있나.
결혼을 앞둔 딸과 한 때 잘 나가던 엄마 사이에서 영화는 방황했고 바람직하게도 양쪽의 모두의 손을 들어주는 편으로 결론이 났다. 소녀에게는 꿈을, 세 아줌마들에게는 옛 영광을 다시 찾아줬다. 꿈을 이룰 거라는, 옛 영광이 다시금 찾아올거라는 착각은 가끔은 행복감을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착각이 아니고, 그 두 경우 모두 내게 가능한 착각의 모습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도 나랑은 먼 이야기란 것. 난 더 이상 꿈에 젖어 사는 20살도 아니고 한 때 놀았던 옛 향수로 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다 한들, 아무런 위안도 대안도 될 수 없다. 과거-현재-미래를 잊는 선을 앞뒤로 꼭 붙잡고 다니는 일은 되려 그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길을 확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결혼을 파기한 소피는 다시 엄마가 지나왔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것은 애써 지나온 길을 아름답게 향수하고 꿈에 젖은 미래를 상상하는 그런 현실적인 정신 노동이 아닌 그 어느 것과도 분리된 환각이다. 과거의 매몰 비용을 잊고, 미래는 철저히 현재 가치로 할인하라고 요구하는 세계에서 환각은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나 도나는 LSD와 섹스로 만들었을 화려했던 환각의 과거까지 현실로 끌어오면서 <맘마미아>를 반환각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설레였던 영화의 시작, "Gimme Gimme Gimme"의 인트로가 끝날 때, 내가 원하는 바는 마돈나의 "Hung up"이 나오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