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기억해주시오. 왕이나 영웅이 아니라 흠있고 결점많은 한 남자로...
Keep a memory of me. Not as a king or...a hero, but as a man full of flaws.

그는 용과 마녀와 괴물의 시대에 분명 영웅이었지만 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점이 있었고, 그 결점을 인정할 줄 알았기에 비로서 인간이 되었다.

베오울프가 물리친 그렌델의 팔이 바닥에 떨어져 그의 발목을 잡는 장면이 매우 상징적이다. 거대한 괴물인 그렌델을 죽일 때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용맹하던 베오울프가 인간처럼 왜소해진 데다 인간처럼 "나는 괴물이 아니다"라고 말을 하는 그렌델 앞에서는 주춤한다. 그렌델의 팔이 발목을 잡을 때에는 두려움을 드러내며 화들짝 놀라기까지 한다.

그렌델이야말로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구분되던 세계로부터 선을 긋는다. 괴물이면서 인간이고, 인간이면서 괴물인 그렌델의 존재가 두려운 것은 어쩌면 그것이 또한 베오울프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괴물이면서 인간이고 인간이면서 괴물인 그렌델의 팔이 베오울프의 발목을 잡는 것은, 베오울프에게 괴물이면서 인간이고 인간이면서 괴물인 존재가 전이됨을 의미한다. 그는 그렇게 주어진 운명에 "발목 잡힌다." 현명함보다 유혹에 발목 잡히며, 자부심보다 권력에 발목 잡힌다. 절름발이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한다. 저주받은 운명을 향해 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 저주받은 운명을 향해 제 팔을 자르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베오울프.

난세에 영웅이 필요하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신의 담지자가 아니다. 스스로 흠과 결점을 인정하며 '결자해지'하는 자이다. 진실은 하나다. 영웅은 진실을 향해 무릎 꿇는 일을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로 아는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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