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 곳에>를 보면서, 씬의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집중해서 보면서

응? 하고 길을 잃는 이상한 순간을 경험했다.


어느 순간, 관객인 나는 순이가 훌륭한 위문가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순이가 용감하고 자신있게 무대에 서는 멋진 가수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영화의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순이가 훌륭한 위문 가수가 되는 건 부차적인 것이고

결국 순이의 최종 목표는 남편을 만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냥 만나서도 안 되고, "달거리 한지 보름이 지났"을 때 섹스를 하는 것,

즉 대를 잇기 위해 임신을 하는 것이 순이의 최종 목표이자 영화의 목표이다.

위문가수가 되는 것은 베트남에 가서 남편을 만나서 섹스를 하기 위한 최초의 수단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어라? 했다.

영화의 명백한 최종 목표는 순이와 남편이 무사히 만나서 섹스를 하는 것인데

관객인 나는 어느새 순이가 훌륭한 가수가 되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이게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어!' 하면서 못 견디게 만들기 보다는

영화를 불균질하게 만드는, 약간은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가족이, 사회가 순이에게 부과한 목표와

순이가 스스로 자기에게 부과한 목표사이의 부조화 (순이는 뒤로 갈수록 정말 능숙한 위문가수가 된다. 그걸 즐기는 모습까지 나온다)

 

또 하나 어? 했던 것은

위문 가수에 대한 것이다.

방점은 위문이다.

순이는 그냥 마을 주민들에게 노래 불러주는 가수가 아니라

베트남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노래 불러주는 가수가 되길 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기 앞에서 웃통을 벗고 저질 댄스를 추는 군인들에게 속옷을 던져주는 위문가수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 약간 윤리적 고민에 빠졌다.

'나는 순이가 훌륭한 위문가수가 됐으면 좋겠는데, 순이가 훌륭한 위문가수가 되면

 남성들의 시선에 종속되는 것이고,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완전 눈요깃거리가 되는 거고 이러면...'

 

분명히 이게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순이가(써니가) 맨 처음 아이스께끼를 당하는 장면과 (내 얼굴이 화끈 거리더라)

군인들에 의해 들려져서 대대장 앞에 서는 장면과 (순이가 무슨 제물처럼 다뤄진다. 여지 없이 드러나는 남성 권력 사회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마지막 미군 장교랑 둘만 남는 장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순간 마다

영화는 순이에게(관객에게) 진짜 목표를 상기시켜준다.

'순이야, 너는 빨리 남편을 만나서 섹스를 해야 돼'

매우 간단히 정리하자면

70년대 한국 사회에서 아내인 여성이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전쟁터로 남편을 찾아가는 건

완전 훈훈한 가부장적 미담인 것이고,

순이가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려 할 때마다 영화는 이 '숭고'하기까지한 목표를 순이와 관객에게 상기시키며

그 상황을 이상한 방식으로 정면돌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깔려고 해도 마음 편하게 깔 수가 없다.

뭔가가 자꾸 걸린다.

여자는 남자 싸대기를 날리고

남자는 어린애 처럼 우는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상처 받은 남성과, 그걸 받아주고 꾸짖어 주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재현)

거기서 영화가 툭 끝나버리는 바람에

'뭔가 더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판단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영리하다면 영리한거고

찝찝하다면 찝찝하다

 

+ 그런데 영화는 이상하지만, 수애는 재고의 여지 없이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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