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Fear eats the Soul) – 잠식당하지 않는 영혼을 위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말은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 제목뿐만 아니라, 그룹 자우림 출신의 가수 김윤아의 노래제목으로도, 시인 조용미의 시명(詩名) 으로도 사용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알리는 엠미에게 우리의 사랑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면서 아랍 속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을 들려주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둘의 애정관계 그리고 두 사람의 영혼은 잠식되는 듯 보인다.

#1. 파시즘의 유전자

일반적으로 이 영화는 ‘라인강의 기적’ 뒤에 숨어 있는 독일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 좀 더 격하게 말하자면 독일 사회 내에 잠재한 파시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파시즘이라고 했을 때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그리고 독일과 일본의 생체실험이다. 그러나 파시즘의 유전자는 꽤나 곳곳에 퍼져 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프리카를 난도질한 유럽의 제국주의는 파시즘의 기원이다. 더욱이 파시즘은 국가 차원의 이데올로기나 전쟁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이민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또는 이민 2세들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에서 전형적인 파시즘의 유전자를 찾아볼 수 있다. 법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폭력, 일상의 파시즘은 계속된다. 얼마전 프랑스에서는 이민 2세 들의 폭동이 일어나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알리를 ‘개나 돼지’ 취급하는 독일인들, 엠미를 따돌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파시즘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방황을 겪는 알리와 엠미의 모습을 통해 파시즘의 유전자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확인하게 된다. 엠미는 알리에게 처음에는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고 말하는데,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이름의 불안은 결국 현실화되고 둘은 이 앞에서 무력해진다.

#2. 한국의 경우

한국은 박정희의 ‘파시즘 정권’에 힘입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라인강의 기적 이후 독일에 이민노동자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처럼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두 국가가 ‘발전-자국민의 생활수준의 향상-제3세계 노동자의 유입’이라는 같은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글로벌 인재를 키우자고 목청 높이는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진정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계화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3. 안산 원일초등학교의 경우

이 영화의 원제는 'Angst Essen Seele Auf'이다. 그런데 사실 이는 독일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란다. 본래대로 하면 'Angst isst Seele auf '가 된다.  
공부를 하러온 것도 아니고, 이민노동자로 일하러 온 아랍인들이 어렵다고 소문난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엠미는 알리에게 훌륭한 독일어를 구사한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즈벡, 일본, 중국, 몽골, 인도에서 온 친구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안산 원일 초등학교.  그 누구도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외국인인 이상 완벽하게 한국 문화를 이해하거나 그에 동화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국에 왔다고 해서, 독일에 왔다고 해서 그 나라의 언어화 문화에 대해 ‘완벽’할 것을 요구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지속적으로 세계는 저마다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점차 뒤섞여 살게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파시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해 오히려 일상의 파시즘이 발현하게 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완벽’이 아닌 ‘공존’을 추구한다면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넘어선 공통점과 새로운 소통 방식이 생겨난다. 엠미와 알리는 서로 너무나도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지 않았던가.

#4. 좀 더 나아가, 푸코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좀 더 넓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엠마와 알리의 결혼은 인종 뿐만 아니라 국경과 나이마저 넘어선 결합이었다.
모든 가치체계가 동일자와 타자를 구분한다고 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의 다양성을 외면하고 국적, 인종, 성, 계급, 그리고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정상’의 수준을 잣대로 동일자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두가 파시즘이다.
푸코도, 이 영화의 감독인 파스빈더도 모두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푸코의 사상 그리고 파스빈더 영화의 극적인 인물 설정과 영화의 시나리오는 그가 원했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갈망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그 어떤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구의 영혼도 잠식당하지 않는 세계, 가장 인간다운 세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