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과학

  
사랑과 추억의 함수관계를 기억이란 도식 속에 대입시켜 거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낸 <이터널 선샤인>의 공장장 미셸 공드리가 이번엔 꿈과 현실을 마블링한 <수면의 과학>을 만들어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 "영화 속 스테판은 바로 나"라고 말한 만큼 그는 주인공 스테판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과 잠재의식을 마음껏 분출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을 발명가라고 소개하는 스테판처럼 감독은 이번 영화를 연출했다기보다는 발명했다는 표현이 더 맞춤한 설명일 것 같다.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분수령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주인공 스테판은 현실의 불만을 꿈속에서 독재자 못지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통해 분출해 상황을 통제하고 인간들을 휘두른다. 이런 스테판의 행동은 종종 유아기적인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에서만큼은 사랑도 일도 완벽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왜 자꾸 자신이 의도한 바와는 거꾸로만 진행되는지……. 이것은 비단 스테판만의 고충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현실 속 모습도 어릴 적 공상 속에서 그리던 왕자님, 공주님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멀어져 버린 지 오래다.

  어릴 적, 종이 왕관을 만들어 쓰고, 어머니가 파마머리 가리개용으로 쓰시던 보자기를 망토로 탈바꿈해 못에 동여 맨 채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마당 혹은 세를 좀 더 넓혀 골목을 주름잡던 사내아이의 꿈. 또는 어머니의 진주 목걸이를 몰래 꺼내 목에 걸고, 이번에도 또 어머니의 애용품인 또각하고 소리 나는 한 뼘이나 큰 구두를 신고 공주 놀이를 하던 여자아이의 꿈들은 어른이 돼서 자각한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스테판이 자신이 원하는 일인 ‘달력 디자인’과는 너무나 격이 차이나는 ‘종이 잘라 딱풀로 붙이기’를 현실에서 지루하게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적 놀이를 추억해보면, 공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머니의 애용품을 무상 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그러나 무상 대여가 반복되고 반납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거기서 더 나아가 대여물품에 손상이라도 입히는 날엔 어머니와의 무기한 신경전이 벌이진다. 경기의 승자가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이 장기전에서 아버지가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상황이 역전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항상 이 도식에 대입되지는 않겠지만 스테판에게는 이런 상황이 적용됐었나 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반면, 멀쩡히 살아계신 어머니에 대해선 황혼길 남자친구마저 못마땅해 하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스테판에게 아버지는 든든한 지원투수가 아니었을까 가늠해본다.  
    
  스테판의 꿈은 보드라운 천과 사물이 비치는 셀로판지, 누런 골판지 등으로 이미지화된다. 이런 소재들에서도 스테판과 감독의 유아적인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사랑의 메신저 골든 포니 보이는 천 조각을 실로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감독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손때 묻은 수작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스테판은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퀼트처럼 꿈과 현실의 차이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그 경계 사이를 자유롭게 소통한다. 물론 정상인이 보기엔 정신 나간 행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런 그를 사랑해 주는 짝 스테파니가 있지 않은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높은 벽을 만들어 이성의 명령을 우악스럽게 행하는 현대인들. 가끔은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퀼트처럼 꿈과 현실의 소통을 주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미셸 공드리 감독이 이끄는 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