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과연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걸까?
사람의 본질은 결국 변하지 않는 건 아닐까?
1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그 후 9년의 시간이 흐른 후 만든.
영화는 갑자기 파리의 하루를 보여준다.
정말 뜬금없는 시작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하루.
그리고 그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인연의 두 사람이 재회한다.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활짝 웃으며 제시에게 인사를 하는 셀린느.
그들의 대화는 9년의 시간이 무색할만큼 자연스레 이어진다.
진짜 어제 만나서 나눈 대화를 이어가는 것과 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얼마나 변했는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영화의 시작은 파리의 작은 서점이다.
9년 전 셀린느와의 추억을 토대로 쓴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는
소설 홍보 차 유럽을 순회하며 독자와의 만남, 사인회 등을 하고 있었다.
한참 질문에 대답을 하던 제시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고,
거기엔 셀린느가 웃으며 서있다.
인사를 하는 셀린느. 당황하며 반가워하는 제시.
그런 제시에 비해 셀린느는 너무 편해보인다.
그 모든 감정이 다 지워진듯이.
제시의 들뜸이 셀린느에 의해 희석될 정도로 쿨하게.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도 있다며? 신문에서 봤어."
라고 말하는 셀린느에게서 묻어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제시의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했을 감정과
제시가 서점에 온다고 했을때 설레였을 마음을.
셀린느에게 그 감정은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제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 책을 쓰면 널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썼어."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이다-*라고 난 본다.
셀린느가 만든 노래를 듣기 위해 셀린느의 아파트로 간 제시.
셀린느가 제시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를 듣고 같이 차를 마시고.
서서 춤을 추며 어느 여가수 흉내를 내던 셀린느가 제시에게
"너 이러고 있다가는 비행기 놓칠거야."라고 말하자,
소파에 앉아있는 제시는 그저
"알아."라고만 한다.
영화는 거기에서 그냥 끝났다.
시작처럼 느닷없는 엔딩. 아마 제시는 가지 않았겠지.
꿈에서도 셀린느만 등장하는 제시인데...
영화는 비포 선라이즈보다 덜 수다스럽고 더 차분하다.
그리고 그때의 달뜬 설렘이 없다.
그들의 고민은 32살, 어리지 않는 나이의 고민.
가정과 의무감과 가정을 갖지 못한 여자로서의 고민.
조금 놀라웠던 건 셀린느의 대사.
"난 여자로서는 실패했어. 왜 그들은 나한테는 청혼하지 않지?"
결국 그녀도 결혼을 종착역으로 바라봤던 걸까? 여자의 행복은 결혼이라고?
나도 32살.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여튼 영화는 좋았다.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갖은 생각으로 평범을 가장한 평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다.
또 좋았던 것 하나.
배우들의 얼굴. 비포 선라이즈의 탱탱한 얼굴이 아닌,
주름이 파인, 핼쑥한 얼굴.
겨우 9년인데, 이렇게 변하다니 싶은 그들의 얼굴.
하지만 그래서 좋은 그들의 얼굴.
어리고 불안한 에단 호크보다 늙어서 안정감 있는 에단 호크가 난 더 좋다.
줄리 델피도, 조금 히스테릭한 모습이 더 좋아.
그리고 유람선에서 햇빛 받은 그녀의 모습이 그 공기까지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참 좋았어.
"노트르담 성당에 관해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퇴각할 당시에 성당에 폭발물을 설치했대.
연합군에 밀려 퇴각하면서 폭발하려고 했던거야.
하지만 남겨진 병사는 차마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대.
그래서 연합군이 그 폭발물을 발견한 거야.
참 아름답지? "
"하지만 언젠가 저 성당도 없어질거야."
"왜?"
"원래 저기에는 다른 성당이 있었어.
그것이 없어지고 노트르담 성당이 세워진거야."
영화에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대사.
음... 제시는 그 이야기를 아름답다했고,
셀린느는 하지만 결국 없어질 거라고 했지.
셀린느의 말이 맞지만.
그래도 난 제시와 같아.
예술에 대한 인간의 애착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일화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