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혹자는 그를 기괴하고 잔인한 싸이코라 폄하하지만 글쎄. '복수'가 모티브인 근래의 세 작품만을 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간과한 점은 없는지? 그의 내면에는 휴머니스트의 따뜻한 감성이 흐르고 있다. 이를 증명해 준 영화 <공동 경비구역 JSA>와 이를 다시 무색케 할 영화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 '복수'는 '용서'의 또 다른 이름

복수를 테마로 한 그의 작품 속에는 냉소와 풍자와 해학이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결코 웃어서는 안될 심각한 상황엔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고, 정작 웃어야 할 부분에선 한없이 진지하게 만든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의 영화를 감상한 직후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얼떨떨, 놀림당한 바보가 된 기분이 다. 아마도 박찬욱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이유로 싫어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세 편의 복수극들은, 표면적으론 이렇다 할 교훈도 없이 그저 진지함을 가장한 코미디로 '말장난' 한다는 느낌을 줄 뿐이거나 혹은, 무겁고 건조하고 팍팍한 암울함의 아우라로 관객을 무기력하게 짓눌러 버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박찬욱이 묻어둔 황금알을 찾아내는 것이 관객의 임무인 동시에 영광임을 모른다면 그의 영화를 볼 자격이 없다 (웃음).

그런 의미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더욱 세련되고 다듬어진 박찬욱 스타일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겠다. 그에게 열광하는 매니아층과 호기심 어린 대중까지 한번에 사로잡은 일석이조의 큰 수확은, 향후 박찬욱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입지를 더욱 굳혀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 그리고 바램.

온화하고 창백한 미소로 피를 부르는 복수를, 가녀린 손으로 광기어린 살인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금자씨. 나른하고 나긋나긋한 말투와 평온한 눈빛, 성녀같은 미소는 도대체 그녀의 어디에 살의殺意가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영화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박찬욱 감독은 전작의 두 편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와는 다르게 여성을 더이상 '희생양' 이나 '피해자' 가 아닌, 살인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올려놨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약자였기에 그녀의 '악'으로써의 군림과 복수는 이 때문에 더욱 통쾌하고 오싹하다. 영화 속엔 백선생에 대한 복수와 딸 제니에 대한 속죄라는 두 흐름이 있다. 백선생에 대한 복수는 10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철저히 완성된다. 하지만 제니에 대한 그녀의 속죄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그녀 답지 않게 필사적이다. 즉, 복수(살인)는 그 대상에게 응분의 댓가를 치루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므로 정당하고 타당한 행위일 수 있지만, 속죄(처벌)는 악을 응징했다는 후련함에 버금가는 무거운 죄책감으로 복수의 대상 못지 않은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그동안 신비주의를 고수해온것도 실은 오늘의 '금자'가 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억측하게 만드는 이영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또한 압권이었다. 무표정하고 매혹적인 그리고 어눌하면서 소름끼치는 그녀의 존재는 두려움 그 자체가 되어 엄습해왔다. 또한 허탈한 웃음을 짓게 해준 박찬욱 사단의 까메오 출연, 얼기설기한 플롯을 탄탄하게 메워주는 감독의 역량과 감각, 그만의 사색과 철학이 담긴, 엉뚱함의 미학을 몸소 드러내주며 멋스럽게 꼬인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 까지.

타이밍도 좋았고, 모든 게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