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소년 네모(김관우)는 면회 다녀온 어머니(조민수)를 잃는다. 이 장면은 <모래시계>의 한 장면과 겹친다. 어린 태수(김정현)는 지리산에 다녀온 어머니(김영애)를 잃는다. 네모의 아버지(오광록)는 민주투사로 수감중이며 태수의 아버지는 빨치산으로 지리산에 뼈를 묻었다. 게다가 네모의 어머니나 태수의 어머니 모두 이별의 강력한 모티브인 기차에 목숨을 잃는다.
이쯤 되면 네모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과 아울러 이 영화가 80년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임을 기대해봄직하다. 민주 투사는 엄혹했던 시절 그저 세상 돌아가는 대로 둥글둥글 살지 말고 차라리 모나게 살라고 아들에게 네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과연 그 무거운 정치성을 소년이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영화는 <모래시계>와 현격하게 격이 갈린다. <모래시계>는 소년 태수로부터 청년 태수에 이르기까지 시대성과 정치성을 우회하지 않는다. 정치 깡패와 광주 민주화 운동, 삼청 교육대, 카지노 따위의 시대적 표지들이 태수를 관통하고 지나가면서 태수는 시대적 캐릭터로서 위상을 얻는다. 그러나 네모는 네모라는 이름이 뜨악할 지경이다. 그가 네모지게 사는 것이라고는 그저 학교를 땡땡이 치고 연탄을 가는 것뿐이다.
영화는 네모를 모성성의 판타지로 인도한다. 일종의 도피이자 퇴행인 셈이다. 기실 미혼모인 부자(염정아)는 네모의 어머니를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어머니의 울타리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몸은 서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키스는 미숙하고 태권 브이의 과장된 낭만성이 그를 지배한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 애잔한 사운드 트랙과 함께 쓸쓸한 정조를 전달한다. 미혼녀를 향한 네모의 사랑은 우스꽝스럽고 유치하며 부자의 순정 역시 비현실적일 정도로 어리숙하지만 그 허황된 비현실성이 도리어 이들의 사랑을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네모에게 구현된 급속한 신체적 성장은 어쩌면 암울했던 시대, 성장기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욕망을 상징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네모의 아버지는 이 급속한 성장을 일컬어 짧지만 의미 있게 사는 것이라고 네모를 설득하지만 이는 분명한 기만이다. 어떤 삶의 시간도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는 법, 도무지 차근차근 경유하며 정상적인 성장을 겪을 수 없었던 시대에 이런 비정상적 욕망을 위로하는 역설적 어법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죽는다. 소년이 간 천국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 그 천국은 현실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고 비현실성만을 강조할 뿐이다. 이처럼 모성의 판타지라는 영화적 한계는 뚜렷한 셈인데, 아쉽게도 영화는 슬픈 정조 이외의 결정적인 힌트를 외면함으로써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코미디도 멜로물도 시대극도 아닌 참으로 어정쩡하고 애매한 필름이 됐다. (정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