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웨스턴 바’라는 이름으로 서부 영화 포스터가 붙은 맥주집이 있을지언정, 실제 서부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일은 이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을 배경으로 정의로운 영웅담 또는 현상금을 위해 유랑하는 비정한 떠돌이들이 주인공이었던 서부 영화는, 전성기를 누리던 6-70년대를 지나 차츰 사라져 이제는 이 장르 자체가 무색해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선악의 구분이 뚜렷하고 네 편과 내 편이 선명하며, 이야기의 종착지가 분명한 서부 영화의 구조는 여전히 많은 영화들에서 유효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악의 무리 타도’가 분명한 목적인 영화일수록 서부 영화는 유령으로서 은신하고 있다. 영화 <칠검>은 바로 유령이 되어버린 서부 영화 장르가 중국 무협 영화에 어떻게 은신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영화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격변의 시대를 배경으로, 모든 무술 연마를 금한다는 ‘금무령’이라는 황제의 명을 빌미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현상금을 챙기는 풍화연성 군단과 ‘무장’이라는 마을의 선량한 양민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설정에는, 선량한 무장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군단을 맞서 싸울 능력이 없다. 이에 무장 마을의 젊은 남녀 한지방과 무원영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속세와는 떨어져 천산에 은둔해 있는 무림 고수를 찾아가고, 강호의 절정고수를 설득하여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풍화연성 군단을 타도하는 ‘의로운’ 일에 동참토록 만든다.

이렇듯 <칠검>은 ‘조용한 마을에 찾아 온 위협과 이를 해결하는 이방인’이라는 서부 영화의 전형적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선악의 구도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 심지어 풍화연성 군단의 장수들은 전투력에 별도 도움도 되지 않는 묘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 보는 순간 ‘아 저녀석들이 악당이구나’를 바로 식별하게끔 해주는 친절함까지 보이며 서부 영화를 답습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 <칠검>은 난삽하고도 진부한 또는 진부하고도 난삽한 이야기만을 풀어 놓는다.

물론 서부 영화를 답습했다고 해서 답습한 영화가 무조건 진부하고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다. 다만 별다른 성찰 없이 식상한 구도를 부자연스럽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고전 장르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얼마나 많은 훌륭한 재창조를 낳았는가!)

이야기의 치밀함 면에서도 <칠검>은 엉뚱하고 심한 비약을 갖고 있다. 이는 이 영화가 대서사의 무협 소설 <칠검하천산>을 원작으로 해서 축약적으로 만들었다는 점과 베니스 영화제 때 상영한 2시간 30분 분량의 버전을 한국판에서는 2시간 이하로 다시 한 번 축약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악의 무리 쪽이나 마을을 구하는 협객 무리 쪽, 양쪽 인물들 모두에 대한 배경 설명의 매우 허약하여 인물들의 행동의 인관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포기해야할 지경이다. 따라서 관객은 ‘우리 편' 사람들인 협객에게 감정 이입을 시킬 수가 없으며, 그저 먼 산 구경하듯 선악의 대결을 바라봐야할 뿐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스케일과 화려한 검투 신이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헛웃음과 당혹감만이 교차한다. 오랜만에 서극 감독이 컴백하여 챙겨 봤지만, 영화 <칠검>은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이다. (mamo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