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인생은 선택이다.
70년대에 리치몬드 고교 농구팀의 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켄 카터 (사무엘 잭슨 분) .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스포츠용품점을 경영하며, 역시 고교 농구 선수인 아들 데미언의 장래를 걱정하는 평범한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모교의 농구팀 코치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고, 카터는 망설임 끝에 코치 자리를 수락한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주로 가난한 흑인들이 거주하는 리치몬드의 흑인 아이들은 대부분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빗나간 인생 길을 걷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카터 코치는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인 아이들만 모아놓은 듯한 리치몬드 고교 농구 팀을 맡아, 마음 속에 두 가지 목표를 세운다. 하나는 4년째 최하위 팀에 머물고있는 리치몬드 농구부에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주는 일. 또 하나는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농구부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대로 학교를 졸업 시키고, 대학에 진학시키는 일.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항적이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최정상의 농구팀으로 만들어야할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졸업시키고 대학까지 진학시켜줄 수 있냐고 말이다.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항적이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최정상의 농구팀으로 만들어야할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졸업시키고 대학까지 진학시켜줄 수 있냐고 말이다.
선택했으면 책임져라
단지, 그들에게는 계약의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어떠한 룰을 정하고 그에 대하여 약속했으면 책임지도록 서로 합의하에 계약하는 것이다.
카터의 계약서를 받고,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히 거부가 아니겠는가!
어떤 아이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하려는 코치 카터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책임지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쳐야만 가능한 법이다. 결코 쉽지 않기에 함부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포기해버리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하고, 웃음거리만 될 뿐이기 때문이다.
또래의 친구들은 교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반하여, 체육특기생은 하루종일 운동장에서 땀을 흘려야 하는 아이러니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니 말이다.
그들이 "껌둥이" 라고 욕을 주고 받을때 카터는 말해준다. "너희들이 말하는 껌둥이가 무슨 말인지 아느냐! 우리 조상들이 노예생활할 때, 백인들한테 들었던 말이다."아이들은 서로를 껌둥이라 말하지 않게 된다.
우리들이 "조선놈은 안되! 패야 말을 들어!" 라고 학교에서, 군대에서 듣지 않았던가! 일제시대때 36년동안 들었던 단어를 해방 60년이 되었음에도, 왜 써야하는가. 우리가 그렇게 못나고 동물처럼 맞아야만 말을 듣는 존재였던가. 학교에서는 제발 쓰지 말기를 바란다.
농구할 때도 카터는 아이들이 지각하거나 반말하면 푸시업을 시키거나 코트를 뛰게 한다. 주먹을 휘두르고 나가버린 아이도 나중에 돌아올 때, 그만큼의 푸시업과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주어진 시간안에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 이때 나머지 아이들이 같이 푸시업을 하고 달리기를 한다. 그때 깨닫는다.
농구할 때도 카터는 아이들이 지각하거나 반말하면 푸시업을 시키거나 코트를 뛰게 한다. 주먹을 휘두르고 나가버린 아이도 나중에 돌아올 때, 그만큼의 푸시업과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주어진 시간안에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다. 이때 나머지 아이들이 같이 푸시업을 하고 달리기를 한다. 그때 깨닫는다.
책임은 어느 한 사람만이 아닌 전체가 지고자 할 때 Win-Win 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나이만 많을 뿐 아이인 사람들이 많은 세상속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믿음이다.
우린 우리 자신의 무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강한 힘을 가장 두려워한다.
우리가 어둠이 아닌 빛을 두려워해서 작게 행동하고 작게 움츠리면 피해가 가진 않지만, 세상을 구하진 못한다. 우린 아이처럼 빛을 품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빛을 빛나게 할 때 다른 이의 빛도 빛나게 되리라.
우리가 공포에서 자유로울 때
다른 이들 또한 자유로우리라.
정말 감사합니다, 절 구해 주셨어요"
영화 코치 카터 중 크루즈의 대사이다. 종교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가있는데,
그만큼 [코치 카터]를 단순한 농구감독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구제해준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존인물 "코치 캔 카터"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리치몬드 동네는 실업률이 높은 곳이어서 주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마을로,
가난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있다.
그 와중에 많은 아이들은 한쪽 부모 밑에서 살고 있으며
농구팀 45명 중 4명만이 양 쪽 부모님과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그들의 코치로서,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상담자가 되어주어야 했고
때로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야만 했었다."
나에게는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믿음이다.
자신의 강한 힘을 가장 두려워한다.
우리가 어둠이 아닌 빛을 두려워해서 작게 행동하고 작게 움츠리면 피해가 가진 않지만, 세상을 구하진 못한다. 우린 아이처럼 빛을 품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빛을 빛나게 할 때 다른 이의 빛도 빛나게 되리라.
우리가 공포에서 자유로울 때
다른 이들 또한 자유로우리라.
정말 감사합니다, 절 구해 주셨어요"
영화 코치 카터 중 크루즈의 대사이다. 종교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가있는데,
그만큼 [코치 카터]를 단순한 농구감독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구제해준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존인물 "코치 캔 카터"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리치몬드 동네는 실업률이 높은 곳이어서 주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마을로,
가난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있다.
그 와중에 많은 아이들은 한쪽 부모 밑에서 살고 있으며
농구팀 45명 중 4명만이 양 쪽 부모님과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그들의 코치로서,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상담자가 되어주어야 했고
때로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야만 했었다."
나에게는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가

학창시절의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정말로 잊지 못한 만남으로 스승을 만나게 된다. 스승의 모습은 어떤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지 않다. 아버지일수도 있고, 선배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나의 스승이 된다.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보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는 행복하다.
나에게는 스승이 많다. 10년이 지나도 연락하면 기꺼이 달려와줄 스승도 있다. 내가 스승에게 기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 뿐이다. 잘못했으면 용서를 구할 수 있고,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결코 빚을 지지 않는 편안함이 있기에 언제든 편지와 전화를 드릴 수 있다.
스승이 사라져가는 세상이다.
참다운 스승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감사함을 찾을 수 있는 대상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21세기가 아무리 풍족해도 불행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에서 벗어나, 존경할 수 있는 부모님, 형제자매, 선후배,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바라만 봐도 웃을 수 있고 눈물이 나는 대상이 있다면 그의 삶은 굳이 영화 [코치 카터]를 보지 않더라도 감동 그 자체일테니깐
참고사이트: 코치카터 홈페이지 http://www.coachcart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