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우리의 몸에 상처가 난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하기 위해 약 바르고 반창고로 싸매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상처가 난다면
쓰라리게 아프지만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씻고 소독할 때 아프기 때문이다.
절대로 아닌 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두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 덧나고 곪고 심지어는
몸에 일부분처럼 포기하며 살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 받았던 상처들을 위해서는
"사과"와 "용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쉽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영화 더 셀은 연쇄살인범 [칼 스타커]와 그를 잡으려는 FBI 요원 [피터노박]
그리고 심리 치료학자 [캐쓰린 디앤]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행동기저에 자리한 무의식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감독 [타셈 싱]은 새로운 과학기계를 가지고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심리치료를 제안하는데, 그 중심적 인물로 [캐쓰리 디앤]을 내세운다.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연쇄살인범의 설정은
미국영화에서 숱하게 나왔던 소재이다. 마지막 희생자로 잡히게 된 소녀는
연쇄살인범 칼 스타커가 만든 특수공간에 감금되어 죽음에 처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물이 차올라 익사시켜버리는 장치는 [칼 스타커]에게
물이 죽음과 연결되어있음도 알게 해준다.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은 생명이요, 여성이요, 새로움을 나타낸다.
그에 반해 물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나누는 황천길에서 알 수 있듯 죽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물은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음이다.
감독 [타셈 싱]이 인도 태생이고 미국으로 유학가기전까지 오랫동안 고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 물의 비중은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크게 자리잡을 법하다.
아버지의 폭력하에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그들의 아버지처럼 폭력화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칼 스타커에게 아버지의 폭력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종교의례중에 하나인 물과의 만남이었다.
그에게 종교의례는 성스러움이 아닌 공포였고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왜 여자들만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일까
여자들을 인형처럼 성적으로 노예화시키고, 물속의 제물로 바쳐져야만
칼 스타거의 정신세계는 안정을 찾는 것일까
바로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여자 심리치료학자인 [캐스리 디엔]이
그의 의식세계로 떠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의 뇌 상태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칼 스타거의
정신세계는 수많은 방들이 보여주듯 복잡하고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놀랍게도
[칼 스타거]의 어린 자아(Ego)가 숨박꼭질하듯이 돌아다닌다.
한 마리의 말이 갑자기 절단되어버릴 때, 어린 자아가 무서워하는 아버지(Superego)같은 존재인 [칼 스타거]가 출현한다. 선이든, 악이든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게 하는 신과 같은 정보가
그를 최고로 만들어준다.(이것을 자기우상화라고 캐스리 디엔의 대사를 통해 알려준다)
[캐스리 디엔]이 눈물 흘리며 지켜보았던 [칼 스타거]의 어린시절은 아버지에게 구타당하고
다리미로 지져버릴정도로 차마 눈뜨기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러한 어린 칼 스타커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던 [캐스리 디엔] 조차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한
[칼 스타커]의 초자아로부터 공격을 받고 결국에는 그의 의식안에 갇히고 만다.
그의 방에서 또 다른 여자인형처럼 될지도 모를 [캐스리 디엔]을 위하여 FBI 요원 [피터노박]이
그녀를 깨워준다. 여기서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그녀의 과거였고,
이것이 무의식에 자리한 기억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의식세계로 가두어버린 인형처럼 박제화시키려던 [칼 스타거] 를 위하여
그녀의 의식세계로 초대하여 용서하고 물이 주었던 공포로부터 상처를 보듬어주고 해원시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게 해준다.
영화를 통하여, '용서와 화해' 라는 몇 가지 윤리적 가치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보다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뛰어들어간
용기와 희생이 더 중요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캐스리 디엔]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정신분열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삶을 위해 길을 떠나는 구도자를 닮았다. 어쩌면, 환자들의 정신세계에 스스로 갇힐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도 자기희생을 택하기에 그녀의 삶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칼 스타거]처럼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복수의 화신을 키워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밖에 실제로 더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비록 드러나듯 드러나지 않듯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캐스리 디엔]의 정신세계가 성녀의 꽃밭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어린시절이 아무리 천국같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삶이 꼭 그렇게 이뤄질거라 장담할 수 없기에, [칼 스타거]의 출현만으로도 꽃밭은 다 죽고 말았지 않았는가(그런 점에서, 둘의 정신세계는 극명한 색채의 대비처럼 닮아있다. 다만 그녀의 어린시절이 생략되었을 뿐이다.)
의식은 외부의식과 내부의식 그리고 무의식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눈뜨고 귀듣고 입으로 말하는 것들은 외부의식을 통해 정보처리되는데,
그 보다 깊은 것은 내부의식으로 심지어 무의식으로 침전되는 경우도 많다.
빙산의 일각처럼, 무의식이라는 세계는 정말로 큰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언제든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숨을 고르며 참고 있기에 잘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던진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로
자리할지는 그가 말을 털어놓기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몸의 상처는 약 바르면 나을지 모른다. 겉에 보이는 상처가 다 나았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그 안에서 말 못하여 담고 있던 또 다른 마음의 상처가 언제든 또 다른 상처를 내고 말테니깐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어루만지는 손이 약손이라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도구 없이도 마음으로 치유해주던 손길을 받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조금만 상처에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니깐
[영화 더 셀]은 눈이 피로할 정도로 현란한 색채의 대비가 인상적인데,
[칼 스타커]가 만들어낸 의식세계는 형형색색으로 물들어져있어도
그의 어린시절은 왜 그렇게 색깔이 별로 없는지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상처를 깨끗이 씻고
소독하기 위해 약 바르고 반창고로 싸매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상처가 난다면
쓰라리게 아프지만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씻고 소독할 때 아프기 때문이다.
절대로 아닌 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두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 덧나고 곪고 심지어는
몸에 일부분처럼 포기하며 살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 받았던 상처들을 위해서는
"사과"와 "용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쉽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영화 더 셀은 연쇄살인범 [칼 스타커]와 그를 잡으려는 FBI 요원 [피터노박]
그리고 심리 치료학자 [캐쓰린 디앤]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행동기저에 자리한 무의식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감독 [타셈 싱]은 새로운 과학기계를 가지고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심리치료를 제안하는데, 그 중심적 인물로 [캐쓰리 디앤]을 내세운다.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연쇄살인범의 설정은
미국영화에서 숱하게 나왔던 소재이다. 마지막 희생자로 잡히게 된 소녀는
연쇄살인범 칼 스타커가 만든 특수공간에 감금되어 죽음에 처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물이 차올라 익사시켜버리는 장치는 [칼 스타커]에게
물이 죽음과 연결되어있음도 알게 해준다.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은 생명이요, 여성이요, 새로움을 나타낸다.
그에 반해 물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나누는 황천길에서 알 수 있듯 죽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물은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음이다.
감독 [타셈 싱]이 인도 태생이고 미국으로 유학가기전까지 오랫동안 고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 물의 비중은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크게 자리잡을 법하다.
아버지의 폭력하에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그들의 아버지처럼 폭력화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칼 스타커에게 아버지의 폭력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종교의례중에 하나인 물과의 만남이었다.
그에게 종교의례는 성스러움이 아닌 공포였고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왜 여자들만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일까
여자들을 인형처럼 성적으로 노예화시키고, 물속의 제물로 바쳐져야만
칼 스타거의 정신세계는 안정을 찾는 것일까
바로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여자 심리치료학자인 [캐스리 디엔]이
그의 의식세계로 떠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의 뇌 상태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칼 스타거의
정신세계는 수많은 방들이 보여주듯 복잡하고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놀랍게도
[칼 스타거]의 어린 자아(Ego)가 숨박꼭질하듯이 돌아다닌다.
한 마리의 말이 갑자기 절단되어버릴 때, 어린 자아가 무서워하는 아버지(Superego)같은 존재인 [칼 스타거]가 출현한다. 선이든, 악이든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게 하는 신과 같은 정보가
그를 최고로 만들어준다.(이것을 자기우상화라고 캐스리 디엔의 대사를 통해 알려준다)
[캐스리 디엔]이 눈물 흘리며 지켜보았던 [칼 스타거]의 어린시절은 아버지에게 구타당하고
다리미로 지져버릴정도로 차마 눈뜨기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러한 어린 칼 스타커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던 [캐스리 디엔] 조차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한
[칼 스타커]의 초자아로부터 공격을 받고 결국에는 그의 의식안에 갇히고 만다.
그의 방에서 또 다른 여자인형처럼 될지도 모를 [캐스리 디엔]을 위하여 FBI 요원 [피터노박]이
그녀를 깨워준다. 여기서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그녀의 과거였고,
이것이 무의식에 자리한 기억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의식세계로 가두어버린 인형처럼 박제화시키려던 [칼 스타거] 를 위하여
그녀의 의식세계로 초대하여 용서하고 물이 주었던 공포로부터 상처를 보듬어주고 해원시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게 해준다.
영화를 통하여, '용서와 화해' 라는 몇 가지 윤리적 가치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보다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뛰어들어간
용기와 희생이 더 중요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캐스리 디엔]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정신분열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삶을 위해 길을 떠나는 구도자를 닮았다. 어쩌면, 환자들의 정신세계에 스스로 갇힐지도 모르는
위험을 안고도 자기희생을 택하기에 그녀의 삶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칼 스타거]처럼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복수의 화신을 키워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밖에 실제로 더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비록 드러나듯 드러나지 않듯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캐스리 디엔]의 정신세계가 성녀의 꽃밭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어린시절이 아무리 천국같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삶이 꼭 그렇게 이뤄질거라 장담할 수 없기에, [칼 스타거]의 출현만으로도 꽃밭은 다 죽고 말았지 않았는가(그런 점에서, 둘의 정신세계는 극명한 색채의 대비처럼 닮아있다. 다만 그녀의 어린시절이 생략되었을 뿐이다.)
의식은 외부의식과 내부의식 그리고 무의식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눈뜨고 귀듣고 입으로 말하는 것들은 외부의식을 통해 정보처리되는데,
그 보다 깊은 것은 내부의식으로 심지어 무의식으로 침전되는 경우도 많다.
빙산의 일각처럼, 무의식이라는 세계는 정말로 큰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언제든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숨을 고르며 참고 있기에 잘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던진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로
자리할지는 그가 말을 털어놓기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다.
몸의 상처는 약 바르면 나을지 모른다. 겉에 보이는 상처가 다 나았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그 안에서 말 못하여 담고 있던 또 다른 마음의 상처가 언제든 또 다른 상처를 내고 말테니깐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어루만지는 손이 약손이라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도구 없이도 마음으로 치유해주던 손길을 받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조금만 상처에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니깐
[영화 더 셀]은 눈이 피로할 정도로 현란한 색채의 대비가 인상적인데,
[칼 스타커]가 만들어낸 의식세계는 형형색색으로 물들어져있어도
그의 어린시절은 왜 그렇게 색깔이 별로 없는지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