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20대의 청춘을 가지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화려한 세상들이 서로들 자신들에게 오라고 유혹한다. 멋있는 옷과, 세련된 서구식 레스토랑, 경탄스러운 윤곽을 자랑하는 외제 차등. 물론 돈만 있으면. TV에서나 (인기있는) 영화에서는 어떤가. 20대의 청춘들이 대기업 간부로 나오고,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 청춘은 젊음을 버거워하기 바쁘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의 그려진 모습은 풍요롭다. 첨단의 시대의 주인인듯 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떨까. 그려진 모습과 같은 모습인가. 아마 풍요와 그림자 양단을 오고가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요즘의 대학생의 두 가지 필수로 ‘해외배낭여행’과 ‘실업’이라는 씁쓸한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인기있는 대중매체들의 상황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풍요와 화려함의 코드가 대중매체의 대부분을 잠식한지 오래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대중매체, 특히 영상매체들이 보여주는 오늘날의 청춘은 깊은 괴리감만을 던져줄 뿐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이런 대중매체 풍토 속에서 단비같은 영화이다. 많은 영화들이 풍요의 측면에 앵글을 맞추는 동안, 이 영화는 그림자에 그 시선을 돌렸다.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의 전개 없이 오래된 두 연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 병석은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결혼식 촬영을 하거나 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옹색한 옥탑방에서 비루한 삶을 꾸려간다. 여자 주인공 재경은 사채 사무실 경리직과 인터넷 상품 판매 대행 일 등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영화가 오늘날의 청춘을 그리는 방식은 담담하다. ‘신용불량’이라는 씁쓸한 영화의 내용을 감정의 과장 없이 그저 보여준다. 밥을 굶는 예전 세대는 벗어났지만,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늘 (어떤) 청춘을 말이다. 굶주림의 눈물은 벗어났지만 그 자리를 신용불량자라는 딱지와 무기력이 대신한 것이다.
이 영화는 오늘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상호 작용하는 오늘 세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주인공들에게는 그 어떤 정치적 담론도 나름의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무기력하게 애써 외면하려 할 뿐이다.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청춘. 이 양자 모두의 암울함을 감독은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들 주인공을 어리버리 하다고 말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3천만원의 제작비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그 배급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에서만 조용히 상영되었다. 불안한 음향과 거친 화면은 여기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물론, 영화가 저예산이고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동정(!)의 호평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마이 제너레이션>이 갖는 그 ‘내용’은 기술적 부족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이 시점 다른 어떤 영화보다 시대의 고민을 동시에 공명하려 하지 않나.
언제부터인가 한 편의 영화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도리어 무엇을 열심히 설명하려는 영화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영화가 더욱 정이 간다.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그래서 단순하지만 ‘정확한’ 영화 말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최근 만난 영화중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정확한’ 영화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해서, 그래서 정확한 영화이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의 그려진 모습은 풍요롭다. 첨단의 시대의 주인인듯 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떨까. 그려진 모습과 같은 모습인가. 아마 풍요와 그림자 양단을 오고가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요즘의 대학생의 두 가지 필수로 ‘해외배낭여행’과 ‘실업’이라는 씁쓸한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인기있는 대중매체들의 상황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풍요와 화려함의 코드가 대중매체의 대부분을 잠식한지 오래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대중매체, 특히 영상매체들이 보여주는 오늘날의 청춘은 깊은 괴리감만을 던져줄 뿐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이런 대중매체 풍토 속에서 단비같은 영화이다. 많은 영화들이 풍요의 측면에 앵글을 맞추는 동안, 이 영화는 그림자에 그 시선을 돌렸다.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의 전개 없이 오래된 두 연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 병석은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결혼식 촬영을 하거나 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옹색한 옥탑방에서 비루한 삶을 꾸려간다. 여자 주인공 재경은 사채 사무실 경리직과 인터넷 상품 판매 대행 일 등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영화가 오늘날의 청춘을 그리는 방식은 담담하다. ‘신용불량’이라는 씁쓸한 영화의 내용을 감정의 과장 없이 그저 보여준다. 밥을 굶는 예전 세대는 벗어났지만,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늘 (어떤) 청춘을 말이다. 굶주림의 눈물은 벗어났지만 그 자리를 신용불량자라는 딱지와 무기력이 대신한 것이다.
이 영화는 오늘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상호 작용하는 오늘 세대의 ‘모습’도 보여준다. 주인공들에게는 그 어떤 정치적 담론도 나름의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무기력하게 애써 외면하려 할 뿐이다. 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청춘. 이 양자 모두의 암울함을 감독은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들 주인공을 어리버리 하다고 말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3천만원의 제작비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그 배급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에서만 조용히 상영되었다. 불안한 음향과 거친 화면은 여기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물론, 영화가 저예산이고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동정(!)의 호평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마이 제너레이션>이 갖는 그 ‘내용’은 기술적 부족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이 시점 다른 어떤 영화보다 시대의 고민을 동시에 공명하려 하지 않나.
언제부터인가 한 편의 영화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도리어 무엇을 열심히 설명하려는 영화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영화가 더욱 정이 간다.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그래서 단순하지만 ‘정확한’ 영화 말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최근 만난 영화중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정확한’ 영화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해서, 그래서 정확한 영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