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 아워스'를 '좋게' 본 사람의 말

먼저, 이 영화를 감상한 관객이 '(다소 남루한 표현인) 가부장제 하에 놓인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실존적으로 끈적끈적한 고민을 잠시라도 하게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결국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문학, 그리고 그녀의 사상 등을 대략이나마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와 더불어 '(사회-구조주의 차원에서의)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선이해 여부에 상당 부분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 의 '작품적, 그리고 재현적 가치'에 대한 적극적 옹호 쪽의 주체는 당삼 최근의 페미니즘적 이론 내지 작품 따위에 약간의 관심, 혹은 그 이상을 가진 부류가 다수일 거라 나는 생각하는 바다. 그렇담 이 영화를 (썩 괜찮았던 '교차 편집'의 방식까지도) '어렵게' 받아들인 부류는 감상 후 도대체 무슨 생각을,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들에게도 '해야 할' 생각과 말이 영화 속에, 그리고 자신의 현실 속에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2. 영화 속 인물들 - 닮은꼴과 다른꼴 사이 어딘가에 놓인 그들

1)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쓴다. 그러나 그녀는 '글쓰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그녀는 '글을 쓰는 방법'을 쓴다. 즉, 그녀가 쓰고 있는 "댈러웨이 부인"은 결국 자신의 '글쓰기'와 '(여성으로서) 살아가기'에 관한 메타픽션인 셈이다. 소위 사회-구조적 음모론 내지는 공모론의 속내를 밝히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그녀의 힘든 글쓰기 작업 선상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2)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참전용사를 남편으로 둔 미국 중산층 가정 주부인 로라 역시 힘들다. 그녀와 같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케익을 만들고 아이를 기르고 "모든 게 다 잘 될거야"라고 말하는 것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예컨대, 로라가 임신을 할 수 없게 된 이웃 여자로부터 '당신은 운이 좋은 여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상황은 그들과 같은 중산층 여성들을 (남성)사회가 어떻게 대상화시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이해의 폭을 한결 좁혀주는 대목이다.

3) 클라리사는 언뜻 보기에 가장 성공하였으며 늘 자유로울 것만 같은 뉴욕의 현대 여성이다. 그러나 서구문명의 찬란했던 한 세기가 지나도록 '여성으로서의 삶(물론 적잖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연스레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그녀이지만, 여전히 옛남자인 리처드와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클라리사와 그녀의 삶은 오히려 리처드가 보기에 안쓰러울 따름이다.



3. '그남'들의 이성애적 이성, '그녀'들의 동성애적 감성?

영화 속 세 여주인공들의 심경은 모두 동성애에의 열망 혹은 관심과 연계성을 가지고 묘사된다. 그렇다면, 왜 동성애인가? 그리고 이와 동시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 그들의 동성애적 재현의 양태는 왜 단순히 '성적'인 욕망으로만 보이질 않는가?

이와 관련해 명확한 생체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그들의 주변 환경 요소들에 대해 좀더 유심히 생각해 보면서 그러한 모습들 뒷편에는 결국 '이성(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 내지 저항의 습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클라리사가 자신의 딸을 '아빠 없이 (정자를 제공받아)' 낳아 길렀다는 점은 상당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을, 여성으로서 나름대로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의 차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근원적인 문제를 회피하려는 '엇나간' 행위 정도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따위의 고민 역시 다분히 필요한 실존적 문제의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4. "그것은 죽음과 같았고, 나는 생을 택했다(It was death, I chose life.)."

후에 로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이들을 버렸다. 나의 지난 행동을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클라리사도 어쩔 수 없는 여성으로서 떠안아야 했던 자신의 은밀하고 후회스러운 강박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는 '글쓰는 사람' 이전에,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요구받고 하인들로부터 '안주인'을 요구받고 있다. '그녀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what is meant to her)'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그 '진심'만으론 절대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 항상 "내가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위태로운 삶, 그 위에서 그녀는 결국 '댈러웨이 부인'을 통해 "우리들이 이곳에 오기 전의 바로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갈" 방법론을 찾아보려 하는 것이다.



5. 왜, 어떻게 '끊을' 것인가

결국 울프의 지론대로, '우리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여성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고, 남성 또한 '자유로운 척'이나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각기 다른 시대와 사회에 놓여있는 세 여성들의 '단 하루'와 '그 시간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역시 사람들 간의 '얽혀있는' 관계를 관찰하고 그것의 '질긴' 끈들을 대략 감지하지만 그것을 우리는 과연 끊어버려야 할 지, 어떻게 끊어야 할 지에 대해서는 결국 또다시 고민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울프는 마침내, "통찰을 얻은 자, 곧 시인이 죽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이는 또 하나의 '비극'이자 네버엔딩 '도피'일 뿐일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놓아버려선 안 되는 상황과, 놓지 않고선 도저히 이 숨막히는 생을 끌어나갈 수 없는 상황 사이에서 많은 이들은 이리저리 고민하다 울프처럼 자살을 떠올릴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죽지 않는가. 여전히 혼란스럽고 숨막히는 '청춘'으로서, 더구나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국민'으로서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 물론 어려운 물음이지만 쉽게 말해보자면, 나는 울프나 리처드와 같이 '냉정한 이성'을 지녔다거나 '극한의 상황'에 몰리진 않았기에, 혹은 그 극한의 상황이 무언지 아직은 잘 모르고 있기에(모른 척 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껏해야 이렇게 영화 따위나 느긋하게 감상하며 총체적으로 삶과 텍스트를 분석질 한답시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것일 터이다, 라고도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P.S.
밑은, '디 아워스'가 다루고 있는 억압과 소외의 문제의식보다는 좀더 '뚜렷'하고 '유물론'적인 사례들이지만, 왠지 그냥 덧붙이고 싶어 같이 올려본다. 그리고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내가 여기서 '자살' 사건들만을 열거한다고 해서 '우선적으로 자살이라는 방법론에 주목하자'는 식의 의도는 전혀 아님을 쉽게 인지하시길 바란다.


먼저, 지난 7월 17일 제헌절,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충격적으로 전해진 이 비극은, 한 어머니와 세 자녀의 투신. 34세의 젊은 엄마는 두 자녀를 15층 아파트 복도 창문으로 던진 뒤, 자신도 막내를 안고 뛰어내렸다.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갈 만원 짜리 한 장이 없어 친구와 이웃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던 젊은 엄마. 막일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피부염을 앓고 있는 막내딸을 맡길 데가 없어 포기해야 했고, 기초생활 보호대상자 신청도 해보았지만 전국의 공사판을 떠돌며 날품을 찾는 남편의 중고차가 덜미를 잡았다. 이런 '젠장할' 경우를 접하면서 난 결국 빈곤과 소외의 문제는 95% 이상 전적으로 '사회, 체제의 문제'라는 믿음을 또한번 굳게 다진다. 그들을 보며 '개인적 자질' 운운한다거나, '그럴 용기 있음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평생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갈 사람들일 것임에 틀림없다.

8월 4일, 사무실에서 목매 자살한 송석창 국민연금관리공단 노동자. 그는 "보험료를 낼 수 없는 형편인 사람들을 납부자로 솎아내는 업무를 강요당하고, 영세민의 소득을 높게 설정할 방법을 찾아내는 일들을 한 달에 1천여 건 넘게 처리했다." 그는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없는 사람들을 쥐어짜는 데 동원된 자신의 처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힘없는 사람들의 갈등을 제조해내는 참으로 위대한 '신자유주의'다.

마지막, 추석연휴인 9월 10일, 머나먼 이역땅 멕시코 칸쿤에서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은 이경해 열사. 지난 90년 11월 제네바 가트(GATT) 본부에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항의하며 할복자살을 기도했던 그는 당시 귀국 인터뷰에서 "1천만 한국 농어민들의 위기의식을 세계에 알렸어야 했는데 살아서 귀국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둘째 딸의 결혼을 코앞에 둔 아버지가 자결이라도 해야 이 나라 농민의 고통은 겨우 신문의 한 귀퉁이나마 장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