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국어의 역사를 한번 되짚어 보자. 국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로서 북방 부여계와 남방 한계로 나누어지고 , 북방 부여계로부터 고구려어가 , 남방 한계로부터 신라어와 백제어가 갈라져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면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어가 중앙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삼국 시대에 고구려, 신라 , 백제 간에는 언어상 방언 차이가 있었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영화 황산벌은 존재했었다고 생각되는 삼국 간의 방언 차이를 맛깔스럽게 이용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웃음부터 나온다. 국사 교과서에 등장했던 영웅적인 인물들과 역사 속의 황제들이 사투리를 써가며 둘러 앉아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황산벌에서 계백과 김유신의 전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영화는 재미를 잃지 않는다. 두 나라 간의 탐색전과 신경전 , 농담을 주고받는 코믹한 병사들의 모습이 나올 때까지는 전쟁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 . 우리는 여태껏 국사 교과서에서, 그리고 갖가지 역사책에서 수많은 전투를 만나지 않았던가.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나.
어쨌든 전쟁이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 아무리 재미있게 묘사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는 것이다. 전쟁이란 무섭고 두렵다가 결국엔 비장해지고 그 끔찍함 속에서 치를 떨게 되고 ,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게 되는 사건인 것이다. 사람 한번 쳐보지 못한 병사들이 창을 들고서는 순식간에 여럿을 피튀기도록 찔러 죽였을 때의 충격은 ‘전장 속 ’ 에 있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일 테다. 김유신이 태종 무열왕을 가리켜 ‘ 정치는 알지만 전쟁은 모른다 ‘고 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땅따먹기 게임이 어떠한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장 속에서 직접 방패와 창을 들고 싸우는 자들의 두려움, 여럿이 함께 싸움에도 불구하고 떨칠 수 없는 공포감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 전쟁은 미친놈들이 하는 것 ’ 인지 아니면 전쟁을 하면서 미친놈이 되어 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 분명 전쟁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전쟁은 결국 서로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남기기는커녕 이긴 자, 패한 자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비장함과 엄숙함마저 느껴지는 그런 상처다. 계백은 자신이 패자가 될 줄을 알았음에도 싸웠다. 새삼스럽게 죽을 각오를 할 필요도 없이 그는 갑옷을 꿰매라고 명령했다. 김유신은 자신 앞에서 목이 잘린 계백을 잊지 못했다. 김유신은 외로움을 감당해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이자 이긴 자였다. 어쩌면 전쟁에서는 떠나는 것이 더욱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역사서 속에 이겼다는 말 한 줄을 남기기 위해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등에 짊어지고 그 무게만한 외로움과 고독을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긴 자의 슬픔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우리가 받고 있는 역사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과연, 이긴 자의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는가? 과연 , 역사가 된 그 사건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가? 무작정 암기하는 과목이 되어버린 ‘ 국사 ’ . 단순히 암기하기에는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무의미해진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왜 이러한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지 , 역사는 왜 그렇게 흘러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중요한 건 인간이다. ‘ 황산벌 전투 ’ 라는 그 날 전쟁 이름이 아니라 ,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기에 황산벌 전투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 날 그 현장의 사람이 되어 느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해 본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역사에 대해 깨달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구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