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ccessful marriage requires falling in love many times, always with the same person.
- Germaine Greer

이 영화는 (영화 전체의 미학적 완성도를 떠나 이야기만 고려해 봤을 때) 전복적인 듯 하면서, 미묘하게 이중적이다. 두 주인공은 결혼이라는 불합리한 제도의 전복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그 체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면에 있어 이중적이다. 또한 연희는 가족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면에 있어 가정적이지만, 동시에 혼외 관계를 통해 가족의 행복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있어서 가정적이지 않음으로 이 또한, 이중적이다.

일반적으로, soap opera는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가장 높은 목적은 가족의 행복이라고 설득한다.(The search for tomorrow in today's soap operas, T. Modlesky, p. 92) 연희 역시 가정 내에서의 행복, 아내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며,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이고,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욕심은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추구하며 살기에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특유의 현실 감각으로 직시하였기 때문일까...) 그다지 강하지 않은, 주위에 있다면 (주로 다른 여성으로부터) 비난 받기 쉬운 여성이다.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말한 네가지 자본 중,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 연희는 사회자본(인맥, 연줄 등)과 상징자본(위신, 존망, 명예, 명성)을 추구하는 인물인데, 그녀는 이러한 욕망을 결혼이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제도를 통해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녀는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 두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준영의 추측이 맞다면)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몸매 관리에 공들인다. 그녀가 이처럼 가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는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우리 사회에서 성공적인 결혼을 유지하며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결국은 그녀 인생에 이득-앞에서 말한 자본들을 스스로의 치열한 노력 없이 획득할 수 있으므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만큼 연희는 충분히 영악하며, 그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노력은, 역설적으로, 준영과의 관계로 인해 더욱 안정된다. 매춘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방패라고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가 지적했듯이, 결혼 이후의 시점에서부터 갑자기 오직 한 사람만 좋아하며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상, 연희 역시 준영과의 관계를 통해 결혼 생활의 부족함을 채움으로써 결혼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soap opera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자유롭다는 모들레스키의 지적처럼(The search for tomorrow in today's soap operas, T. Modlesky, p.93) 이 영화는 멜로라는 장르를 빌어 결혼 제도의 모순을 말하며 도발적인 일탈을 보여준다.

우리 문화에서 소극성과 참을성은 여성적인 것이고 남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으로 간주되며, 재현이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멜로드라마와 soap opera라는 장르가 여성의 욕망과 관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냐의 문제는 논쟁으로 남아있다. (Woman's Genres, Annette Kuhn, p.24) 연희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에 있어 비교적, 적어도 준영에게 만큼은, 솔직한 편이지만, 그녀의 남편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소위, 조신한 여성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하지만,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는 준영에게도 지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준영이 그녀가 남긴 사진을 보며 말했던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연희가 준영에게 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하지 못했던 말은 사랑하니까 결혼하자는 말이 아니었을까. 연희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준영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준영의 결혼관 때문에, 결국 차선책으로 의사와의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연희의 감정은 결혼하기 바로 전 준영과 헤어질 때 그녀가 차 안에서 보여준 슬픈 표정을 통해, 그리고 실제 부부인 것처럼 행동하고 신혼 앨범을 만드는 그녀의 절실한 노력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해변에서 사진 찍을 때 보여준, 정지된 스틸 사진의 이미지는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슬픈 소망을 청각적,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보이스 오버는 준영의 것이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연희이며 그녀의 갈등이다. Basinger는 여성 영화에 대한 정의를 영화의 중심에 한 여성을 놓고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갖게 되는 감정적, 사회적, 정신적 문제들을 다루는 노력에 대한 영화라고 하였다. (Memlodrama and the Woman's Film, Steve Neale, p.189)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를 두고 여성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희의 갈등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갈등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남, 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결혼 제도 자체의 불합리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음, 혹은 결혼하지 않음에서 오는 갈등이기 때문이다.

여성 시청자들은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대해 공감하기보다, 여자 주인공의 소극적이고 잘 우는 캐릭터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며 오히려, 여성 악당에게 지지를 보낸다. 그들은 여성 악당이 그들의 육체가 아닌 두뇌를 사용하며, 더욱 힘 있는 캐릭터라는 면에서 환호한다.(Don't treat us like we're so stupid and naive, Ellen Seiter, p.238) 물론, 연희가 여기서 여성 악당의 위치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희는 고전적인 멜로의 선량하고 언제나 남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여성 캐릭터와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성들을 이용할 줄 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남성 관객들은 그녀를 비난할지 모르지만, 여성 관객들은 연희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며 지지를 보낼 것이다.

여성 픽션에서 낭만적 남성 영웅은 여성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는 남성적 공격성과 지배성을 버리고 여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Producing and Consuming the Woman's Film, Maria Laplace, p.160) 감우성은 자신의 외모와 목소리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매력을 준영의 냉소적인 캐릭터와 제대로 결합시키고 있다. 그의 눈웃음과 부드러운 선과 표정을 지닌 얼굴은 여성들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자아낸다. 하지만, 감우성이라는 배우가 혹은 그의 이미지가 여성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정도보다 엄정화라는 배우가 혹은 그녀의 이미지가 남성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정도가 더 크다는 점을 상정해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분명히 멜로라는 장르에 남성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 보인다.

라플라스에 의하면 여성은 인생과 감정을 나눔으로써 알게 되는 개인적 지식을 통해 타인과 동일시하려는 욕망을 가진다. 이런 면에서 얼굴과 목소리는 에로티시즘의 중심이 되며 따라서, 에로티시즘은 남성 장르에서의 관음증, 그리고 페티시즘-주체의 욕망에 대해 무관심하고 거부하는-과 다른 것이다. (Producing and Consuming the Woman's Film, Maria Laplace, p.160) 연희와 준영의 정사씬에서 연희 얼굴의 클로즈업이 빈번하게 사용되며, 이는 여배우의 육체, 나아가 여성의 육체를 물화시킨다기보다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감정, 느낌으로 이입하게끔 한다. 따라서 이는 분명 관음증적 포르노그라피와 차별화된다.

관객이 영화 안에서 스타를 본다는 것은 이전에 맡았던 영화 속 역할들에서 구축되었던 이미지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관객이 그 스타를 실제 사람으로서 (신문, 잡지, 등의 다른 매체의 기사와 같은 총체적인 정보를 통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Producing and Consuming the Woman's Film, Maria Laplace, p.148) 엄정화는 섹시한 가수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어왔으며, 이 영화의 주요 마케팅 요소의 하나였던 도발적인 영화 포스터와 함께 이 영화를 섹스어필함으로 이슈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면에서 비록 배우의 연기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마케팅 전략상, 그리고 배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면에 있어서 적절한 캐스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에로틱함에 대한 이슈화로 인해 모순된 제도에 대한 이 영화의 진지한 관심이 상당 부분 가려졌다는 점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는 결혼에 관한 문제에 있어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긴다. 연희와 준영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한 연희의 노력으로) 결혼한 부부처럼 지내지만 사소한 문제-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인한 집착과 기대라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로 다투고 결별하게 된다. 결혼 제도의 바깥에 있음으로 인한 두 사람의 갈등은 라면과 콩나물 비빔밥의 문제로 표출된 것이다. 하지만, 준영의 옥탑방-연희의 능력으로 구축된 일처다부제의 공간-에 들어서는 연희의 모습에서 영화를 끝냄으로써 영화는 결혼 제도를 수용하는 문제를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긴다.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작품의 통일성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그 텍스트를 의미투쟁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 텍스트는 열려 있게 되며, 따라서 대중문화는 잠재력으로만 존재할 뿐, 사용되어지는 방식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되는 것이다. (지식인과 TV문화: 심미안의 정치,  조 흡, p.108) 이 영화는 결혼이라는 제도, 사회 체제에 대한 모순을 이론적으로는 준영의 목소리, 결혼관을 통해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 실천 방식에 있어서 연희와 준영의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대안 제시도 하지 않은 체 결론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