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본다..
아침부터 청승맞게 비가 온다..
이런 날은 뭘해야하나?
담배한개피를 물고 하늘을 본다..
잿빛하늘... 비도 추적추적... 뿌연 담배연기....
짜증나는 장마가 또 시작된건가?
떨어지는 빗방울에 잠시 손을 대본다...
그렇군... 오늘같은 날 극장에 가면 아무도 내가 혼자라는 걸 모르겠군...
비는 우산속에 홀로 몸을 숨긴 자에겐 무척 잘 어울리니까....

빗속을 뚫고, 극장을 찾았다..
몇년전 비가 내리던 이런날... 누군가와 영화를 함께 봤었다... 추억이라는 건 잔인하다... 하지만 잔인한 기억속 잔상들은 금새 사라진다... 우리가 함께했던 기억들을 뿌옇게 만든다... 이 영화의 화면처럼 뿌옇게... 혼자 영화를 보는 내내 웃고, 울었다.. 오래된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어 보는 것처럼 그 추억들을 보며 웃고, 울고.... 내가 웃는다는 걸 들키지않기위해 조용히.. 내가 운다는 걸 들키지않기위해 조용히... 소리는 없다... 하지만 날카로운 추억의 맛은 역시 쓰다....

너와의 추억에 젖고 싶던 어느날 드디어 영화 "살인의 추억"을 꺼내어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고 극장밖을 나왔다...
비오는날 홀로 본 이 영화는 내게 어떤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이 한편의 먼 80년대 "살인의 추억"이 지금의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든 추억이라는건 잔인했던 첫사랑의 추억처럼 이토록 씁쓸하기만 한걸까??
영화는 끝났지만 머리는 복잡하다... 사랑이 끝났지만 아프기만한 너와의 추억처럼....

영화 "살인의 추억"이 추억으로 묻히기 전에 이 영화를 말해야 한다... "살인의 추억"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한가지 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말하는듯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그저 깃털에 불과하다... 몸통은 뻔뻔하게 아직도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잡지못한채...

하지만 우리는 잡아야한다... 그게 감이든 과학이든... 진짜 범인을 알아볼줄아는 눈이 있어야한다... 범인은 1980. 5.18..광주에 있다... 우리는 이 아픈 추억을 잊기위해 상상에서 떠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어있었다... 이제는 너 긴장해라... 우리는 그 해묵은 금기를 분노와 슬픔이 함께 서린 눈으로 어두운 하수구 밑속을 들여다 보듯 범인 널 주시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광주학살.. 화성의 연쇄살인사건.. 두 사건의 살인마는 공통점이 많다... 미해결사건이라는것.. 심증은 있되 잡아넣을 만한 물증은 없었다는 것... 피해자는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는 것... 진짜 범인은 따로 있는데 다른 누군가를 잡아넣으려 애썼다는것... 우리는 사건 자체가 너무나 끔찍해서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엄두도 내지못하는 짓이라고만 생각했다는 것... 그런 우리를 비웃듯이 아주 유력한 용의자는 너무나 멀쩡한 놈이라는 것... 뻔히 눈앞에 보이는 그놈을 잡아 넣어보지도 못했다는 것.... 시대는 그런 우리를 분노와 슬픔의 혼란속으로 밀어넣었다는 것... 미치도록 잡고싶지만 아직도 잡지 못한다는 것...그래서 잊어야한다는 것... 이젠 떠올리면 안된다는 것.... 살인사건이지만 그저 추억에 불과하는 것...

영화의 끝무렵 미국에서 날아온 유전자 감식 결과... "범인은 용의자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광주살인마에게 준 면죄부와 일치한다.. 재판 결과... "성공한 쿠테타는 심판할 수 없다.."

이 영화는 뭔가 냄새가 난다.. 숨겨진 음모가 있다... 서태윤형사(김상경)가 절망적으로 바라보다가 떨어트린 감식결과문서는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열차가 짓밟아버린다... 이는 90년대라는 열차가 광주학살판결문을 짓밟아없애버려 이젠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려함을 의미한다...추억속에 묻힘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는 아픈 추억을 집요하게 끄집어내어 상처를 휘젓는다...

그쯤만 해도 뭘 말하려는지 다알텐데.. 이젠 아주 노골적이다... 요즈음 광주학살의 유력한 용의자께서 전재산이 29만원밖에 없어서 밥도 먹고 살기 힘드시댄다.. 그에 대한 걱정일까?? 야유일까??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범인 박현규(박해일)의 멱살을 잡은 형사 박두만(송강호).. 비극적 상황과는 부적절한 말 한마디를 던진다... "밥은 먹고 다니냐?" 라고... 어이~ 전씨.. 듣고 뜨끔 좀 하라는거겠지?? 진짜 밥은 먹고 다니냐?? 듣고는 있는거냐?? 응??

우리의 전씨처럼 범인은 암흑이 가득한 터널로 도망치듯 달아나며 사라지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2003년 박두만은 범행현장 하수구를 주시하며 추억에 잠긴다.. 하지만 추억은 잡으려던 자에게만 존재하는게 아니다.. 동네아이와의 대화속에서 얼핏보이는 이자리에 왔다간듯한 범인.. 육감으로 그것을 느낀 송강호 아니 박두만은 울듯말듯 화를 낼듯말듯한 묘한 표정으로 클로즈업된다... 영화는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 영화는 혼란밖에 주지 못한다... 추억은 너무나 아프다... 그런데?? 뭐?? 그래서?? 어쩌라고?? 이제 우리가 그걸위해 뭘 어쩔수있는건데?? 분노하며 주먹을 쥐어볼까? 눈물흘리며 주저앉아볼까? 아니면 다시 일어나서 범인 때려잡으러 뒤로 뛰어가볼까? 어떻게 해야하는지 혼란스럽다... 이제와서 어쩌잔 얘긴가? 해묵은 아픈 기억... 다 끄집어내서 눈물과 분노를 던지지만 그 이상은 없다... 그저 추억에 불과하다... 그래.. 잊지말자..6.25..

영화속 조영구형사(김뢰하)의 군화발 다리처럼 무우자르듯이 추억은 잘라버릴 수 없다... 그래서 아픈 기억을 추억하는 것만으로 큰의미가 있다고? 그러면 그 잘려진 다리 다시 찾아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는건 큰의미가 있는거냐? 그러면 그게 현충일날 보는 반공영화랑 다를것이 뭐가 있냐? 그러면 그게 3.1절 특집드라마랑 다를게 뭐가 있냐?

이 영화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살인의 추억"은 분명히 누군가 얘기했어야하는 것들을 서슴없이 말하고 있고 그게 기분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번쯤은 떠올려보는게 유익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자체는 역시 조금 아쉽다... 아니 혼란스럽다...

대종상최우수작품상에 빛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 더이상 딴지걸고 싶지않다.. 그러기엔 추억이 너무 아프기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비오는 날에는 아픈 첫사랑의 기억을 곱씹으며 "나쁜년"이라고 되뇌이고 싶기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비오는 날에는 우리의 아픈 광주를 곱씹으며 "나쁜놈"이라고 되뇌이고 싶기때문이다...

그녀가 빗속의 내게 던져준건 혼란밖에 없다..
영화가 빗속의 내게 던져준건 혼란밖에 없다..
시대가 빗속의 내게 던져준건 혼란밖에 없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전화저편의 미도리는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라고 물어보고 이 당황스러운 질문에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혼잣말하며 카오스상태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영화"살인의 추억"이 던진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난 그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혼잣말할 수 밖에....

이젠 더 뭘어쩌겠는가?? 혼란스러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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