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감흥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이럴땐 수다가 필요하다...
"야~ 너 이영화 봤냐?"
"뭔데?"
"하긴.. 말해봤자.. 너따위가 알리가 있냐?? 타인의 취향이라고 들어나 봤냐?"
"뭐?? 타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아냐??.."... 사오정 자식.. 재미없다.. 중략이다...
아무튼 감격에 버겨워 상기된 목소리로 난 계속 떠들어댔다...
"이 영화는 취향의 다양성과 그 존중에 관한 얘기야.. 영화란 이 영화처럼 말하자하는 바와 재미가 함께 존재해야 되는거야... 이런 영화를 이제서야 보다니..어쩌고저쩌고..."
그녀석 귀가 따갑게 떠들어댔다...
그녀석이 말했다... "난 요새 슈퍼맨 다시 보는데 넘넘 감동이야.."...역시 내친구는 바보다..
"장난까냐?? 어떻게 타인의 취향 얘기하는데 슈퍼맨따위를 입에 올릴 수 있냐?"
쏴붙여주고 바로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았다..
내 친구의 한마디 때문에...

"너 영화헛봤구나? 취향의 다양성과 그 존중이라며??"

잠시 적막이 흘렀다.......

영화를 헛봤다... 아니 지금껏 본 모든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니 나는 영화를 보려고 하지도 않은채 쓰려고만 했다... 존중이라는 말은 내 속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적당히 보기좋게 글쓰고 대충 뭔가 많이 아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남들앞에 서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내 영화평밑에 안좋은 답글이라도 남기면 기분상해하고 오만한 마음으로 남들을 깔보면서 나르시즘을 즐겼다... 오해하진마시라... 지금 나는 반성이나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고백을 하는 중이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자신을 발견했다...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려면 먼저 존중을 하라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냥 얘기만 했다... 그 허울좋은 격언 속엔 나는 없고 그 말을 듣는 타인들만이 있다... 나는 없다.....

본영화는 친구에게 내가 말했던 것처럼 타인의 다양한 취향, 그 존중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카스텔라와 클라라, 그리고 앙젤리크.. 이 세사람과 프랑크와 마니, 그리고 브루노.. 이 세사람.. 전부 여섯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처음부터 서로의 다른 취향이 부딪치고 삐그덕거린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의 취향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하고 너의 취향은 나를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바로 카스텔라의 아내로 나오는 앙젤리크다... 영화는 이 독선의 취향을 지닌 이 여주인공에게 그렇다면 넌 놀이공원이나 가라며 비아냥거린다...
카스텔라와 클라라의 사랑을 중심축으로 삼고 사랑을 통해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과 접근법을 이야기한다... 카스텔라의 콧수염은 타인의 취향에 대한 존중, 그 깨달음의 상징이다... 그 콧수염이 잘리는 순간 모든건 바뀐다... 이 콧수염의 주인공은 자신의 취향을 무시당한채 아내 앙젤리크의 취향만을 쫓는다... 그의 콧수염을 잘라버리며 찾아온 사랑은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고 존중받는 법을 알게된다... 주인공 카스텔라는 처음과 나중의 성격이 변하는 입체적 인물이며 깨달음의 존재이다... 우리는 그의 변화를 놓쳐서는 안된다....
프랑크와 마니, 브루노 이 셋의 관계는 곁가지인데 이 영화는 주인공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약점일 수 있다... 이 영화가 그저 사랑이야기에 불과했다면 분명히 약점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로멘틱코메디에서 쓸데없이 조연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이야기전개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로멘틱코메디가 아니다... 다양한 주인공들의 제각각 다른 시각속에서 어떤 사람의 취향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여섯 주인공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도 소외시켜선 안된다...
이 영화의 뜬금없는 결말은 우리에게 전율을 던진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주인공 브르노가 잘 불지도 못하는 플룻을 들고 연습한다... 영화의 마지막씬에서 그 이유는 설명된다... 브르노는 동호인들로 구성된듯 보이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다... 브르노는 여전히 플룻을 잘 불지못한다... 하지만 브르노 혼자 플릇을 불고있다... 모든 단원들이 브르노만 쳐다보고 있다... 이젠 슬슬 모든 단원들이 브르노를 질책할까봐 염려스럽다... 그 순간 모든 단원들이 다함께 연주한다... 브르노의 불협화음은 멋진 연주가 되어 강한 느낌을 선물한다... 자막은 올라간다...

이 영화는 정말 좋다... 감동이 밀려 온다... 그러나 달갑지는 않다... 난 세상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을 지닌자는 없다고 말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결국 타인들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말이었다... 역시 나는 없다...
"선생 김봉두"를 표리부동의 모순이라고 하고, "취화선"을 패배적 순응주의라고 말하면서 오만함이 엿보이는 거울속의 내모습을 보며 즐겼다... 아니 지금 이순간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자... 그 훌륭한 말은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독선이 되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미 내 뼈속깊이 녹아있는 독선... 이제 난 어쩌지?? 놀이동산에나 가야하나???

진실은 이렇다... 표리부동이란 단어는 이런 나를 위해서 만든 말이며 패배적 순응주의는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채 체념하고 살고 있는 내 인생의 단면이다... 진실은 아프다...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반성이나 후회의 눈물은 아니다... 다만 억울할뿐이다... 이렇게 들켰다는게...
사실은 이렇다... 난 아직도 모르고 있다... 내 오만한 글의 연주는 나를 존중해준 그대들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었다는 것을... 이 세상이라는 음악속에 나의 불협화음이 섞인 독선의 음악이 계속 연주되어왔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서투른 연주는 그대들로부터 존중받음으로써 완벽한 연주가 되고있다는 것을.... 그때도 알지 못했고 지금도 난 알지 못한다... 사실은 그래서 슬프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 한편을 보았다... 올해 봤던 영화 중에 최고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영화 "타인의 취향"은 1999년 프랑스에서 탄생했으며 2001년에 우리나라에 온뒤 그렇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죽은 영화이다... 이 이름모를 프랑스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에는 스크린쿼터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명화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대중들에게 묻기전에 이 영화를 죽인 그 대중의 취향을 존중하고 싶다... 이 영화가 바로 그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있기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착하다... 결코 오만하지 않다... 그래서 죽어도 싸다... 하지만 난 바로 그대들에게 이 영화를 한번만 다시 봐주기를 권유하고자 한다.... 바로 카스텔라가 클라라에게 빠진 사랑처럼 그대들과 사랑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이란 서로의 취향을 모두 보여준 벌거벗은 몸앞에 다가서서 마음에 우러난 존중을 해주는 것이다... 난 지금 그대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 지금껏 내 오만한 글들을 기쁜 마음으로 존중해준 그대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젠 진심으로 그대들을 존중하고 싶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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