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한 번 보고 난 후 그 영화에 대해 어떤 글을 쓴다는 건 사실 꽤 무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는게 아닐 터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치 드렁크 러브>에 대해서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다. 아니 그 영화가 그렇게 만든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아마 주인공 배리가 갖고 있는 특별한 호감에 그 이유가 있는 듯 하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펀치 드렁크 러브>는 사회 부적응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사회 부적응자의 행동양태가 특이하다. 길가에 버려진 소형 풍금을 대단한 비밀병기라도 되는 듯이 몰래 가져와서 사무실 책상 위에 모셔 놓는다든지, 레스토랑의 화장실을 충동적으로 부셔 버린 후, 모르쇠 시치미를 뗀다든지,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슈퍼마켓에서 푸딩을 잔뜩 구입해서 그 마일리지를 모은다든지, 어찌 보면 대단한 일탈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이 주인공 배리의 남과 다른 행동에는 일곱 명의 누이가 있는 듯 하다. 보통 누이가 아니다. 막내 남동생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보이고, 동생에 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면 끝날 줄 모를 것 같은 그런 누이들이다. 어찌보면 자상한 일곱 누이가 있는 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일까. 식구들끼리 파티를 할 때 누이들은 배리의 어릴 적 이야기를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제였을 것이다. “그 때 생각나니? 배리가 어렸을 때, 왜 학교에서 오줌 싸고 왔잖아. 근데 그걸 숨기려고…” 이런 류의 이야기. 누나나 고모, 이모들에게는 귀엽고 재밌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본인은 그만 듣고 싶은 이야기. 배리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듣다 참지 못하고 집의 통유리창을 깨어 버린다. 배리의 나이는 30대 중반은 되었을 것이다.

베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혼란보다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과정에서 보이는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고쳐나갈 힘.

 

예 하나, 유리창을 깬 후 매부와 은밀히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배리.

“매부, 의사 맞죠?”

“(주저하는 목소리도) 응”

“(매우 진지하게) 저 이따금 이유도 없이 눈물을 흘려요. 그것도 아주 많이. 왜 그럴까요???”

“처남, 나 치과의산거 알잖아.”

 

예 둘,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는 좁은 통로이다. 이 것은 베리가 악덕 폰섹스 업자들로부터 도망다니는 골목길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행기 탑승로로 나타나기도 하고, 호텔 로비로 나타나기도 한다. 좁은 통로는 무엇을 의미할까. 레나를 만나러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러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배리의 뒷모습과 함께 탑승로의 저 끝에서 강렬하게 쏱아지는 빛을 본다. 이 좁은 통로를 벗어나면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빛이 보인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레나로 가는 길, 배리는 30년 이상을 기다려온 그 길을 통과한다. 이것이 통과의례 아닐까. 배리는 여러 관문을 거쳐서 드디어 하나의 독립된 성인의 문턱에 다다른다. 그리고 배리는 레나와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랑의 고백.

 

베리 : “난 당신 얼굴을 해머로 뭉개버리고 싶을 만큼 당신을 엄청 사랑해.”

레나 : “난 당신 눈알을 빼내 씹고 빨아먹고 싶을 만큼 당신을 엄청 사랑해.”

 

완벽한 커플이다. 그동안 한번의 실수(?)로 계속 배리를 괴롭혀 왔던 악덕 폰섹스 업체와의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배리는 이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빛과 그림자의 대조, 유치할 정도로 선명한 색깔의 사용등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띤다. <시암 선셋>이 생각난다.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운명적 사랑.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냉장고도 그들의 사랑 앞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던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만일 <펀치 드렁크 러브>를 들고 찍기 같은 현실감을 불러 일으키는 기법으로 촬영을 했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항상 쭈뼛쭈뼛하고 자신감없는 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사랑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원을 떠나 이미 환상적이다. 레나와 배리뿐 아니라, 영화의 색감과 배리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goomd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