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 007 영화를 봤습니다. 영국에서도 미국 못지않게 난리랍니다. 선전대로 엄청난 액션에 박진감 넘치는 카메라 쇼트가 정말 멋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전방 DMZ 부대에서 근무했던 저로서는 북한에 대한 기본 설정 및 사고 방식등등, 정말 말도 안되는 기가 찬 내용에 근 2시간 반동안 고통을 감내하면서 봐야 했습니다.

무기밀매업자인 북한군의 문대령(윌 윤 리)이 나쁜 놈으로 나옵니다.---문대령 자기말로는 옥스포드와 하버드에서 공부했다고 하더군요. 이놈은 나중에 유전자조작 치료로 서양인의 가면을 쓰고 구스타프(토비 스티븐스)가 됩니다. 그리고, 또 한명 나쁜 놈인 문대령의 부관인 자오(릭 윤)도 나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구스타프는 북한군 제복을 입지만, 괴상하게도 김정일 및 북한군과는 아무 상관없이 북한 상공을 지맘대로 휘젓고 다닙니다. 또한 우리의 007과 본드걸 역시 북한 전역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김정일의 북한군과 싸우는게 아니라 나쁜 놈 구스타프와 싸우죠. 사실, 구스타프(문대령)나 자오 둘다 이 놈들 확실히 맛이간 놈들입니다. 이 맛간 구스타프는 북한군 장성인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북한을 파괴할 놈이라고 반대하는 것을 듣고 열받아서 아버지조차 살해하는 패륜아입니다.

전체 내용으로 봐서는 황당무게한 007 스토리(특히 최근 피어스 브로스난 등장 이후)에 잘 어울립니다. 이번 영화에서 007은 심장박동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고, 007이 타는 자동차는 카모플라즈 기능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마치 공상과학영화 같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말을 이 영화가 뒷받침한다는 식의 우려는 그리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영화가 남-북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게 더 큰일이죠. 하여간 한국인의 입장에선 흥이 안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영화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못 봐줄 것도 없습니다. 반대급부적으로 생각하면, 이 영화로 인해 한국(KOREA)의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어필될 것 같네요. 비록 그게 좀 왜곡되었다는게 큰 흠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좀 올라갈 것 같아 보입니다. 아직도 코리아가 남아메리카에 붙어있는 줄 아는 무식한 유럽인들도 있습니다. (북한이 아주 못사는 나라로 그려지는데, 저는 적어도 이건 왜곡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007영화에 기대할께 뭐 있나요. 007영화는 옛날부터 황당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동-서독 현실이나, 미-소 냉전, 옛날의 일본, 최근의 중국 배경을 그릴 때에도 황당 일변도 였습니다.
영화가 영화는 물론 단순히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를 과도하게 영화 이상 생각하고 오버하는 것도 좀 쑥스러운 일이죠. 007영화는 현실 고발 영화가 아니라 그냥 어거지 액션 영화일뿐입니다.

onomat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