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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발가벗은 몸을 얼떨결에 마주쳤을 때, 가린 손가락 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때의 기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한 편 한 편 마주칠 때마다 느끼는 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해야 할까. 홍상수는 인간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반복해서 들추어낸다. 그들의 외면도 내면도, 관객은 삼자가 되어 바라볼 수 있다. 사람구경이 이토록 재밌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뒤로는 어떤 무수한 것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미한 확신 아래에서, 단 한 명의 인간에게도 인간성, 인간미, 사람냄새, 말투, 성격 등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영역의 무궁무진한 흥미와 발견들이 포진해있다.

 

홍상수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군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인물들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상황의 가정 하에 그 상황들이 변화하면 거기에 맞춰 사람도 변한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너무 별 것도 아니라서 다뤄지지 않는 즉흥적인 상황들을 던진다. 그 곳에 사람냄새와 홍상수식 영화가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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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명예 있고, 예술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서 득도한 듯 보이는 예술인들,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나 미술가, 아니면 통통 튀는 감각으로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보이는 매력적 인간들, 그러나 결국 그것이 허영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 인물들이 이 영화의 주 인물들이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묘한 웃음이 나오며 그 웃음은 가식 없이 단백하다. 오늘 밤 그녀의 몸까지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남자의 하나도 안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랑한다는 말과 헛소리에 가까운 사랑의 갈구가 이어진다. 이런 헛소리가 나오는 입과 자신의 예술적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철학적인 언어가 나오는 입이 같다.

 

성적 본능은 누구에게나 당연하지만,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기에 그것이 일상 속에 남발되지는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인물들 역시 당연한 절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홍상수는 그 깊은 곳까지 따라가서 관객의 자리를 마련해놓기에 결국엔 드러나고야 마는 근성에 가까운 이성과의 잠자리 애욕은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 홍상수 영화가 매번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 중 하나이며, 이를 진지하게 관찰하는 행위에는 즐거운 실소가 동반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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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또 다른 흥미는 감독 자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대변하고 또한 자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어떤 의도를 파악하고서 넘겨야 할 것이라면 이 영화가 파생한 관객의 또 다른 헛소리가 되겠지만, 구경남(김태우 분)이 강의 중 학생이 "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데, 그 말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며 또한 홍상수가 직접 들려주는 것처럼 진정성이 느껴진다. 물론 모든 이가 서로 소통할 수는 없기에, 질문에 대답하는 구경남(김태우 분) 역시 조금은 무기력하게 비춰지기도 하지만 그것에서 오히려 더 진실의 깊이가 획득된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인 부분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감독(김태우 분)이 고순(고현정 분)과의 잠자리에서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들은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버린, 과거 영화인으로서의 동반자 부상용(공형진 분)이 이미 했던 이야기들의 되풀이다. 결국 삶과 부딪히며 완성해 온 자신의 철학도 결국 남 얘기의 부분적 모음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단지 홍상수 영화의 '들추어내기'에 의해 코믹하게 포장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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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고현정, 공형진, 정유미, 하정우, 엄지원, 오준상. 이렇게 열거하기도 쑥스럽고 버거운 스타들의 대향연과 그에 따르는 홍상수적 구성 안에 펼쳐지는 맛있는 연기들이 고요하게 내재되어 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자신이 실존하는 인간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되며 또한 주변의 인간들을 좀 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자 할 때 많은 것을 제시해 줄 것이다. 그 진지함에는 인간에 대한 본능적이고도 치열한 탐구와 그에 따르는 깔끔한 웃음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봐도 즐거운 것이 사람의 깊이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