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순환을 낯설게 드러내는 걸작, <박쥐>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부한 질문이나 당연히 직면하게 되는 문제이며, 그렇다고 해서 답해본 적도 잘 없을 것이며 결코 쉽게 답할 수도 없는 질문이다. 이것에 대한 주관의 답들은 개개인 삶의 지표가 된다. 연역적인 철학 문제의 제시는 추상적이다. 복수 삼부작 때처럼 무거운 출발을 가진 박찬욱의 영화, <박쥐> 역시 추상적인 시작을 가지고 있다. 추상적이라고 하여 간단할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출발은 하나의 점에서 시작될지 모르나 파생되는 문제들은 끊임없이 가지를 친다. 어떤 문제든 결국 확실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은 추상적인 반면 사회문제는 구체적이다. 물론 두 분야는 필연적인 교류를 한다. 추상적인 것들로부터 구체적인 것들이 나오며, 그에 역하는 방향도 있다. 이 두 경계에 절묘하게 위치하여 철학과 사회를 통행하는 통일성을 지닌 작품은 훌륭한 통찰력의 문학적 가치를 가진다. 이런 면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끔찍한 걸작이다. <박쥐>는 다르다. <올드보이> 이후로 박찬욱 영화의 정체성에 변화된 공통분모가 보인다. 하나의 스타일이 조금씩 명확한 틀을 새기며 형성 되고 있다. 이번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굵직한 반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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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사제가 흡혈귀가 되는 소재의 자극성에 비해, 사회 현실적 문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그러한 만큼 영화의 내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미학적인 완성도의 밀도가 아주 높다. 무엇보다 영화예술의 영역에 충실하게 위치하고 있다. 이것이 웰메이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웰메이드의 의미는 한국 사회의 정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일종의 시대적 경향에 불과하다. <박쥐>가 웰메이드가 아니라는 것은 감독은 이제 자신의 영역에 심취하게 될 것이며, 대중은 그에 대해 계속해서 낯설어하며 접근하기를 꺼려하게 될 행보를 짐작 가능케 한다. 그러나 영화의 가치는 영구적인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다시, 삶의 이유를 묻는 진부한 질문으로 영화 <박쥐>와 함께 되돌아오면, 질문에 따르는 단편을 관찰할 수 있다. <박쥐>가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절대적인 욕망이다. 욕망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 반문한다면, 차분히 근원적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욕망이 우러나오는 근본을 제시하여 그에 대해 반문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신앙으로 성스러운 구원을 원하는 사제가, 피를 갈구하는 흡혈귀가 되는 것은 상반된 문제의 정면충돌로 아이러니를 생성한다. 세상 앞에 나약한 인간은 종교와의 합의를 통해 구원을 믿고 심적인 평온함을 유지하며 죽음에 의연해질 수 있다. 그러나 사제인 상현(송강호 분)에게 피의 욕망과 동시에 초인적인 힘이 주어졌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실존을 강하게 받아들이게 되며 모든 쾌락을 갈구할 수 있게 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듯, 박찬욱은 또 한 번 관념의 순환을 조명한다. 욕망은 욕망을 낳는다. 벌거벗은 욕망과 그를 실현가능하게 하는 실제적 권력은 사회적인 관념들의 멸시를 받는 온갖 행위와 연결된다. 도박부터 간통, 강간, 살인까지 그들의 행위는 진전한다. 점점 화면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으로 도배되며, 구원을 상징하는 백색의 미장센으로 우리의 심장을 차갑게 한다. 그러나 붉은 피와는 철저히 대조되는 백색의 구원이다. 초인의 실존하는 능력이 과연 현실을 순탄히 타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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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김옥빈 분)는 기형적 인물이다. 인간적 소외가 낳은 안타까운 소산이다. 그녀에게도 욕망의 구원이 손길을 뻗는다. 굉장히 도발적이며 때로는 약한 인간의 심성을 드러내기도 했던 그녀는, 욕망 앞에서 철저히 변한다. 기형적으로 살아왔던 과거와 너무나 대조되는 피의 욕망과 힘은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크게 다가온다. 주체할 수 없이 날뛰는 욕망의 짐승이 된다.

 

<박쥐>는 배우에게도 큰 의미가 부여된 영화다. 특히 김옥빈은 굉장히 인상적인 여배우로 변화했다. 기존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줬던 어설픈 연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배우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감독과의 조율도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팜므파탈을 그녀 고유의 매력으로 뿜어낼 줄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거친 욕망에 의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광기서린 연기로 캐릭터와 영화의 분위기를 완전히 흡수하고 있다.

 

소재는 익숙하다. 그러나 드러내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화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 영화를 더욱 더 묵직하게 만든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B급을 B급스럽지 않게 하는 탐미적인 미장센의 뛰어남과 작위적이지만 뚜렷하고 재미있기 만한 캐릭터, 그리고 견고한 서사는 새로운 느낌들로 극을 꽉 메운 채 훌륭히 전개된다. 종교, 인간, 폭력 등, 소재의 과감한 혼합들은 영화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이런 잡탕이야말로 박찬욱의 의미를 더욱 강렬하게 새길 수 있다. <박쥐>의 영화적 가치는 극찬을 하기가 지겨울 정도이며, 한국영화계의 전대미문의 작품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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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권력이 그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러나 때때로 세상의 부조리한 불균형은 실존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해올 수 있다. 죽든 살든 진지하게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by 김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