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사실 그 순간을 눈물타임으로 여기게 만든 건 몇 년 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얻은 학습효과였다. 노래를 듣는 순간, 브로크백 마운틴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터져 나왔던 눈물들이 생각났고, 이에 눈물샘을 억지로 짜보려는 노력도 생겨났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리 슬프지 않았고, 안구건조증과 건조한 극장 덕분에 정말이지 울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언제 멈춰버릴지 모르는 불안한 심장으로 램 잼을 위해 뛰어내리며 영화가 끝났기에, 랜디가 그 뒤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불이 꺼지듯 검은 화면으로 스크린이 뒤덮혔기에 70프로는 죽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30프로는? 구수하지만 애잔한 브루스의 노래 덕분에, 비참하지만 행복하게 '랜디'는 잘 살았더랍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물론 링 위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라고도 들린다. 그래도 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스프링스턴의 노래가 다분히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지향적인 노래라 그렇다. 현재 2009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힘들어도 다시 링 위에 서겠어'라고 다짐한 사나이를 위해 그런 노래를 한다는 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죽어버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슬픔은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것이지 죽은 자의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죽음 뒤는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건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죽어보기 전에는 그냥 모르겠다고 할 수밖에는. 물론 노쇠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링 위를 오르는 '랜디'가 불쌍했고,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은 미키 루크도 가여웠지만 그건 오직 그들이 살아있을 때까지만이었다. 유일한 주인공 '랜디'가 죽고나자 감정이입할 대상은 사라져 버렸고, 죽은자는 슬퍼할 수 없었다. 브로크백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잭의 자켓과 함께 홀로 남은 애니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슬퍼할 캐시디가 남았다. 딸은 이제 남남이니 생략하자. 계속 죽었다 죽었다라고만 얘기했는데, 이번에는 살짝 말을 바꿔 경기장 구석에서 울고 있을 캐시디에겐 이렇게 말하며 위로해주고 싶다. 그는 죽은게 아니라고. 랜디는 부활했고, 이제 승천했다고. 그리고는 신화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제 그는 영생을 얻었고,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그를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튼 슬퍼할 일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