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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어둠(달빛)을 갈망하고, 여자는 빛(태양)을 갈망한다. 남자는 스스로 빛나기 때문이고, 여자는 스스로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는 수백 년의 지혜를 지녔고, 여자는 태초의 육신을 지녔다.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욕망이라면 따라서, 남자는 여자의 육체를 원하고, 여자는 남자의 지혜를 원한다.

물론 여자에게 잘 생긴 남자라면 더 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에게 있어 남자의 외모는 피와 살이 아니다. 그 외모 역시 남자의 지혜나 정신세계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외모는 차갑고(비육체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이 영화가 다소 단순한 도식에서 비껴서는 대목은, 남자가 여자의 피와 살을 끝내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의 피와 살을 취하느냐 마느냐가 이 영화의 긴장을 유지시켜주는 주요 장치인 셈이다.

여자는 영화의 말미까지 남자가 자신의 피를 취해주기를 바란다. 남자는 원초적 욕구와 이성적 제어 사이에서 방황한다. 여자는 어린 소녀다. 그녀의 갈망은 성장기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심리일 것이다. 소녀는 지혜로운 남자를 통해 성장할 것이다.

어쩌면 이 반동적 영화(혹은 소설)에 대해 많은 관객들이 호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현재 우리가 고투하며 살아가는 사회에 불안이 만연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나마 영화 속에서 불안에 대한 도피 심리를 위무받을 수 있다면, 영화가 좀 진부하거나 전근대적인들 무슨 상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