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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는 아이의 아비는 남아도는 빵을 훔칠 권리가 있다는 프랑스 신부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혹은 땅이 없는 농민은 놀고 있는 지주의 땅을 경작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 브라질 헌법을 존중할 수 있는가. 장편 다큐멘터리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이현정, 2006)이 다루고 있는 빈집 점거는 바로 이 당당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스쾃(squat)이라는 말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빈집 점거 운동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주거권 및 도시공간의 사적 전유가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스쾃에 그리 주목하지 못했다. 영화가 기록하는 '더불어사는집'의 행보는 도시빈민의 한국 최초 빈집점거 사례라는 점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다.

더불어사는집은 빈민운동가인 양연수 고문(호칭이 매우 중요하다!)과 몇몇 노숙인들이 함께 살면서 자활을 도모하는 노숙인 생산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청계천에 위치한 삼일아파트에서 처음 시작됐는데 당시 송재희 대표, 허칠기, 박승석, 정화숙, 임채희 등의 창립멤버와 삐약이(닭), 보랭이(강아지)가 함께 생활했다. 2005년 5월의 청계천 팔가의 풍경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 때문인지 이들의 삶은 그리 신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여러 명이 모여살다보니 다소 부산할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청계천 팔가는 밤낮으로 철거투쟁이 한창 진행되던 격렬한 공간이었는데 영화 속 청계천 팔가는 훨씬 밝고 건강해보였다. 물론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노래 '청게천 팔가'의 가사)은 여전했다. 그러나 청계천 팔가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사는 '비참한 우리'가 아니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설파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들은 열심히 살고 있었다. 청계천이 (제멋대로) 복원된 후, 제반환경이 적지않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한 땀 냄새 가득한 거리'에서 노점판매나 고물수집 등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땅히 잘 곳 하나 갖지못한 이들에 대한 영화의 시선은 이렇듯 참 담백하다. 빈민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거두고 빈곤의 문제, 정확히는 주거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ARS 모금을 촉구하는 공중파 방송 등의 연극적 태도와 사뭇 구분된다는 점에서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컨벤션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실 다큐멘터리라면 응당 주목할만한 현상, 특이한 사건을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어딘가 나와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화면에 포착된 인물, 혹은 사건이 특이성과 보편성을 모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생활방식이 남다를 수는 있어도 삶에 대한 태도(어쩌면 삶의 본질)만큼은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관객은 더불어사는집과 적당한 거리를 둔 채 이들을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더불어사는집의 주요 활동은 매주 월요일 점심, 청계천 부근에서 진행되는 무료급식이다. 이는 더불어 사는집이라는 공동체를 알리는데에도 목적이 있지만 노숙자가 노숙자에게 점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이채롭다. 이 공동체의 존립목적이 노숙자의 자립에 있음을 대외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니 말이다. 나아가 더불어사는집의 구성원들은 노숙자 자립을 조직적으로 담보해줄 수 있는 전국실업자연맹의 창립을 진지하게 논의한다. 그러나 배식을 끝낸 구성원들이 언론사의 기념사진에 담기는 순간, 각 개인들이 더불어사는집에 모여있던 각기 다른 이유들은 모두 자립으로 환원된다. 프리즈 프레임이 가둔 다양성, 혹은 프리즈 프레임이 강요하는 집단성은 곧 '더불어사는집은 데모하는 데'라는 통념으로 이어지고 많은 구성원들이 이를 불편해마지 않는다. 게다가 뉴스에 이들의 급식 활동이 방송된 후, 정화숙, 송재희 등이 공동체를 떠난다. 사실 더불어사는집은 운동단체라기보다는 나름의 확고한 규율을 갖춘 생활공동체에 가까워 보인다. 가입원서를 받고 식사시간을 엄수하며 청소 등의 집안일을 구성원들이 분담한다.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집에서 그러하듯 편안하게 드러누워 TV를 보고, 믹스커피를 타먹거나 과일을 깎아먹는다. 다만 가족이 아닌 이들이 모인 공동체라 다소 낯선 풍경도 있는데, 함께 시레기국을 끓여먹고 담배를 나누어피며 연애를 하는 중년남녀의 모습 등이 그렇다. 물론 일반적인 운동단체의 활동이 전무한 것도 아니다. 전노련 활동가들의 주도 아래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제로 한 철학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논의가 채 진전되기도 전에 왜 배우냐는 질문, 과연 이런 공부가 필요하냐는 질문이 쏟아진다(사족 하나, 맑스와 무척 비슷하게 생긴 할아버지의 질문이라 더욱 아이러니했다). 내가 사는 이 세상, 그리고 지금의 내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만족스러울리 없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오직 '생활에 필요한 지침'뿐이었으니.

아니나다를까 더불어사는집은 정릉집으로의 이전투쟁을 치루며 격렬한 내분을 겪게된다. 삼일아파트의 철거로 인해 새 주거지를 물색하던 더불어사는집이 2005년 9월에 본격적으로 점거투쟁 계획을 세우면서 그동안 봉합됐던 문제가 가시화된 것이다. 이들이 목표한 새 주거지는 정릉에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서울시가 임대주택 사업의 일환으로 매입했으나 거주자 하나 없이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바로 정릉동 192-399번지. 이들은 칠흙같은 밤에 점거를 감행한다. 그리고 다짐하듯 힘주어 말한다. 우리의 목적은 주거일뿐,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점거투쟁이 있기 직전 몇몇이 떠났으며 점거에 성공한 후에도 일부 식구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삼일아파트에 남는다. 사람의 온기가 부족한 탓일까, 새로운 보금자리는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날이 밝자 때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전기나 수도 문제는 좀처럼 해결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들의 점거 사실이 알려진 후, 원 소유주인 도시개발공사는 건물사용에 대한 일방적인 협상을 제안했고 관할경찰서는 치안문제 때문인지 즉각 철거를 요구했다. 또 매번 해오던 월요급식도 더 이상 어려울 정도의 재정적 적자에 봉착한다. 이에 양 고문은 민노당 등을 찾아다니며 연대투쟁을 요청하지만 양고문의 막무가내식 태도에 모두가 답답해 할 뿐이다. 물론 예전부터 동사무소나 시청 등에서 공무원과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던 양고문이기에 별 새삼스러운 모습도 아니다. 다만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이 더 이상 양고문과 더불어 살 수 없게 된 것이 문제다. "왜 저런 사람하고 같이 다니냐"는 공무원의 지청구에 "그래도 뒤끝은 없는 분이에요."라며 웃어넘기던 이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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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양고문은 누가봐도 특이한 인물이다. 그는 삼일 아파트에서도, 정릉에서도 식구들과 온전히 함께 생활하지 않으며 비정기적으로 들러 자신의 말만 쏟아낸다. 썰렁한 추석을 보내고 있는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이 배를 다 깎아 먹었다고 잔소리를 해대거나 왜 이기지도 못할 술을 마시냐며 핀잔을 준다. 그러다가도 빈민운동은 무조건 개기거나 싸워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하기 일쑤다. 구성원들과 전혀 융합되지 못하고 권위적으로 자신의 입장만 강변하는 그는 타인의 문제제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편의에 따라 자기가 듣고싶은 말만 골라듣는 것이다. 아마 그에게있어 이 세상 모든 문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만 구분될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오직 양고문을 비출 때 뿐이다. 궤변을 늘어놓는 양고문, 그리고 거짓을 사과하는 황우석의 TV 영상이 나란히 배치될 때 주는 묘한 감정은 분명 의도된 편집효과에 기인할 것이다. 이렇듯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은 지금껏 그의 권위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고문 앞에 항의하고자 섰을 때에도 이들은 여전히 무력하고 순종적일 뿐이다. 결국 도시개발공사와의 협상이나 적자 문제 등은 양고문의 방식대로 해결된다. 수직적이고 비민주적인 소통구조는 오히려 견고해지고 공동체의 내부문제는 다시 봉합된 것이다. 더불어사는집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저 맥없이 감내할 수 밖에 없다. 대신 "지금이야 아쉬워서 여기 들어와 있지만" "날풀리고 살만하면" 당장 떠날 것이라는 환상으로 자신을 위무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거부한 순간은 바로 술기운을 빌어 예의 그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내는-울거나 욕하면서- 마지막 장면이다. 정릉집의 불켜진 창만 보이는, 무미한 화면 위로 그들의 술취한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러나 이 건조한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수 있는게 있으니- 더불어'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각적인, 그러나 지극히 정확한 답이다.

허공에 끊임없이 온갖 기호를 송출하는 라디오와 TV는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다. 화면과 전혀 맞지않는 음색과 내용의 소리들이 무작위로 들릴 때, 그래서 이물감이 더욱 두드러질 때 배가되는 리얼리티의 위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국의 달콤한 멜로디를 들으며 궁색한 방을 걸레로 홈치는 순간은 꽤 많은 이들이 겪어보았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소리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도저히 달변가라고는 볼 수 없을 등장인물들의 숱한 말을 경청해야만 이들이 왜 웃거나 화를 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 그것도 노숙인의 말을 집중해서 듣는 경험은 분명 진귀하고 특별한 것이다. 편의성을 이유로 사투리마저 표준어로 바꿔 자막처리하는 공중파 다큐멘터리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진지한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바로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의제를 다루면서도 쉬이 호기롭지 않고 지나치게 주저하지 않는 태도는 문제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폭로하기 마련이다. 정치적인 것을 표방한 많은 독립영화들이 추상성과 쇄말성이라는 양극단에서 길을 잃고있는 요즘, 이 영화가 성취한 정치성은 분명 수준 이상의 것이다. 여기에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가 제기한 주거권 문제가 대단히 시의적절한 것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집을 얻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생존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빈민들의 삶에 그 누가 무심할 수 있을까. 남한 인구의 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2007년 행자부 발표)이다. 선정적 문구도 좀 빌려오자면 한국땅을 다 팔 경우 캐나다를 두 번 사고도 남는다. 이 황폐한 공간에서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를 외치며 빈집을 점거하는 스쾃터들의 저항은 분명 유의미하다. '모두'의 공간이 응당 갖춰야 할 공공성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권리인 까닭이다. 집도 절도 없는 신세지만 '재테크에 미쳐'야한다고 강요받는 20대라면, 부디 부동산 광풍에 휩쓸리지 말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길. '더불어사는집'의 나지막한 말소리에 반응하는 순간, 어느새 이들과 대화하고 싶어질테니 말이다. (mimi)

덧.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는 2006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미 발매된 DVD로 만나보실 수 있어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의 영상자료실(http://library.koreafilm.or.kr/)에서 VOD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겠네요. 곧 서울독립영화제 2008(12월 11일~19일, 서울 인디스페이스)이 열립니다.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처럼 소중한 영화를 또 다시 발견할 수 있기를, 빌며!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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