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단상

케잌은 삶을 축복하며 두부는 다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원한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눈이 떨어진다. 순결한 순백의 눈이 떨어지는 하늘을 향해 금자는 새로운 삶과 구원을 갈망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다시 지상을 향해 절망하며 두부 케잌은 뭉개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 되는 거야.”
자신의 눈을 뽑았던 오이디푸스, 자신의 혀를 뽑았던 오대수,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이금자. 속죄는 강조되지만, 어떻게 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그녀가 구원받지 않았더라도, 아니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니는 절망하는 금자의 뒤를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는 세속적이지 않다. 세속을 지시하는 폭력 역시 세속적이지 않다. <복수는 나의 것>으로부터 세속이 표백되어 도달한 지점, <친절한 금자씨>는 내용상 잔혹하긴 하지만 “무조건 예쁜” 영화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