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맛은 우선 매우 담백하고 정적이며 편안하고 씁쓸하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된 노신사의 내용을 담았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패전 후 많은 것들을 잃고 힘겹게 살아온 많은 일본인들이 그러하듯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들을 (지나온 과거들 옛 친구들, 늙어버린 선생님, 해병대 시절의 부하, 직장 후배의 결혼, 딸의 결혼 등을) 보내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자리로 돌아오면서 감독이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우선 내러티브 구조는 매우 단조롭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른다. 구성상 시간의 인과관계 따라 큰 사건도 없으며 친구들과 가족들과 다다미 위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장면이 전환 되면서 많은 인서트 컷으로 그 시대의 공장, 철길, 골목길, 간판, 전철, 아파트의 전경, 도시의 전경을 보여 주면서 일상 그 자체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들려오는 사운드의 인 아웃은 우리가 지하철을 기다릴 때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예보 종으로 때로는 파블로프의 방울 소리에 의한 개의 조건반사처럼 우리에게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조건반사적으로 씬이 넘어가는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버릇 아닌 버릇이 든다. 처음에는 사운드가 매우 영화를 보는데 방해 요소에 가까웠는데 이야기가 진행 되어가면서 자연스레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또 이러한 사운드는 자연스레 장면이 전환되기도 하지만 감독은 지금껏 자주 말해 왔듯이 영화에 너무 매료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영화를 봐달라는 신호의 종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다른 시각에서는 이 사운드의 장면전환은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한 장이 끝나고 또 다른 장이 넘어가기 전에 암전이 되는 것처럼 사운드가 지금까지 앞의 장을 다음 장이 이어받기 전에 수채화 같은 인서트를 보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오기도 하는 효과적인 전환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카메라의 이동은 아주 정적이고 인물의 동작역시 아주 단조롭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분위기와 인물들은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서술된다. 또한 전철을 기다리거나 인서트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때때로 화려한 옷을 입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인물들은 아주 단조로운 무채색의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부분은 감독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시대의 유행상- 일상생활에서 분위기를 은연중에 고조시키고 녹아들게 만든다.

 패전 후의 일본의 생활을 그린다고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우익적인 모습은 영화에 아주 잘 깔려있다. 은사를 만나로 간 은사의 집에서 해병대 근무시절 알았던 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감독은 이 인물로 인하여 일본이 승전국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서양인들이 일본을 동경하지 않았을까? 하는 말을 히라야마에게 던지지만 곧 그것은 관객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또 일본의 군국주의를 표방하듯 일본군의 군가를 들으며 거수경례를 해가며 보이는 행동이야 말로 오즈 야스지로의 우익적인 문화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일본영화이며 일본의 당시대를 반영하는 영화이기에 그들의 서글픔을 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점으로 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를 우익적인 일본의 감독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패전 후 고향으로 돌아오니 집은 불에 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아 많은 고생을 해버린 그리하여 돈을 빌려 자동차 수리점을 하고 있는 이 인물은 시대적으로 많은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전후 피해의식을 나타내는듯하기도 하다. 반성의 의미도 없이 이러한 부분을 영화에 표현하는 것은 실로 영화적으로 주요하게 조명 받는 거장으로서 실로 안타까움을 사기도 하여 개인적으로(한국인이기에)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씬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많은 부모세대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일본의 패전과 그 추억의 이야깃거리와는 관계없이 단어 그 자체의 추억으로 생각함으로서) 그런 일상의 무료함은 딸을 떠나보내고 외톨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감정과 맞물려 뛰어난 정서적 천착을 일으킨다. 관객은 오즈 영화의 저류에 흐르는 그런 외로움의 분위기에 서서히 침전되어 가며, 영화가 클라이맥스의 정서적 폭발에 다다랐다고 느낀 순간, 그때야 관객은 오즈 영화에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사각형의 프레임 속 사각형의 창문, 사각형의 다다미, 사각형의 골목길, 사각형의 대문 등 많은 것들이 일본의 건축학적인 부분과 맞물려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영화 내내 답답함을 주지만 앞에서 말했듯 단조롭고 쓸쓸함을 공간적인 미로서 히라야마의 모습을 더 처량하고 외롭게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아주 담백하고 정적인 영화를 또 하나 발견한 듯한 기분에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