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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변의 여인> 여성캐릭터와의 조우, 그녀들이 나아갈 길

<해변의 여인>은 이제, 좀 더 직접적으로 여성캐릭터의 유사이미지를 현재형에서 논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그것이 과거와 현재의 간격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유사 실체에서 결론 내려졌다면, 이 영화에서 유사이미지를 가진 여성캐릭터들은 서로 ‘조우’함으로써 또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남성 주인공 중래(김승우)가 욕망하는 문숙(고현정)의 이미지는 중래가 문숙의 솔직한 자기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그녀를 물러나게 하고, 문숙과 유사한 이미지(선희)를 찾게 한다. 결국 중래가 욕망하는 대상은 문숙이라는 한 명의 여자가 하나의 주춧돌이 되고, 그 위에 선희(송선미)라는 유사이미지의 여자가 기둥이 되는 셈이다. 중래가 욕망하는 대상의 이미지란,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고 싶은 문숙이라는 캐릭터처럼 불완전할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 역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동일한 의도를 갖고 있으며, 다만 다른 점은 이상화된 여성캐릭터의 실체를 ‘진짜’ 끼리의 충돌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래에게 이혼한 전부인의 떠올리기 싫은 (불륜)이미지와 문숙의 또 다른 과거이미지(외국남자와의 교제)는 결국 동일하고도 불완전한 욕망하는 대상의 이미지인데, 그는 그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치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문숙의 재등장으로 선희와의 관계도 이도저도 아닌 결말을 맞게 되지만, 애초에 그가 해변으로 와서 얻으려고 했던 것-시놉시스의 완성을 이루어 낸다. 이런 결말은 홍상수의 이전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구성으로, 좀 더 명백하게 캐릭터의 주체적 이동을 내러티브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 캐릭터가 남자, 여자를 만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얻는 것은 허탈함이라든지 모호함 이상을 나아가지 않았는데, 이 영화에서 그 결말을 문자 그대로 캐릭터들의 온전한 결실을 위한 유쾌한 결말로 과연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해변의 여인>이 홍상수의 이전 영화들과 다른 점은 캐릭터들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감추는 부단한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극장전>에서 그것은 주인공 동수의 자기합리화나 푸념 등으로 드러났었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그것은 아예 내면의 욕망상태에서 정체되었고, <생활의 발견>에서 그것은 조롱하듯 주인공에게 소나기를 퍼붓는 것 등으로 표현되었다. <해변의 여인>의 미덕은 바로 속이고 감추고 아닌 척 하는 캐릭터들의 내면을 캐릭터들 간의 싸움 즉 남자와 남자(중래와 창욱) 여자와 남자(문숙과 중래), 남자와 여자(중래와 선희), 여자와 여자(문숙과 선희) 등으로 맞붙여 놓고 입체적 캐릭터를 전면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관계를 관객들이 판단 내리게 하기 보다는, 영화 속 인물들 간의 갈등으로 지켜보게 함으로써 인간의 여러 욕망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홍상수 영화의 ‘눈치 보고 계산하는 인간형’들은 이제 좀 더 직접적으로 인간관계의 방식을 모색한다. 이 영화에서 결국 끝까지 거짓말하는 중래는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문숙과 헤어지지만, 속물근성으로 만족스러운 시놉시스를 완성한 뒤 서울로 되돌아간다(대신 다리를 다친다). 그리고 문숙은 중래와의 최종적인 싸움 전에 이미 선희를 만나고 늪지 숲을 거닐며 홀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은 듯 그와의 관계를 끝장낸다. 다음 날 그녀는 자신의 차가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위기를 겪지만 의외로 쉽게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시원하게 해변을 떠날 수 있다.

문숙은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해변을 질주함으로써 그녀는 중래가 대상화했던 이미지를 털어내는 듯 보인다. 그녀는 선희와 나누는 대화에서 서로 닮지 않았다는 강한 부정을 늪지 숲의 산책으로, 중래와의 결별로, 해변에의 질주로 표출한다. 그녀는 해변에서 자신이 애초에 말했던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는 믿음이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집착(아버지가 자신에게 하는)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중래에게) 집착을 행할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설사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가 깨달은 것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고 믿었던 것들인 것이다. <해변의 여인>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마찬가지로, 남성주인공 캐릭터들로 시작하여 그 사이에 놓여있는 여자캐릭터의 욕망이 무엇이었나를 탐색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남성캐릭터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상에서 빠져나와 자신들이 어떻게 나아가야할 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위치적인 성질을 간파한다. 여성캐릭터는 모두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깨닫게 되는 지를 남성캐릭터와의 관계 속에서 방향을 찾고, 그것은 다른 남성주인공들의 행위보다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vovov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