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홍상수의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한 두 명의 남자에게 들렀다가 떠난다. 이들 캐릭터들은 남성캐릭터와 비슷하게 오랜 시간 상대 캐릭터와 마주하기 보다는 짧은 만남으로 상대를 일깨우거나(?), 엔조이 상대 이상이 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는 남성캐릭터의 욕망의 기재로 설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는 암묵적 ‘동의’ 가 존재하기에 더이상 갈등은 생기지 않은채 그것을 회피해버린채 마무리된다. 이렇게 그의 영화는 피상적인 갈등을 지향하지 않는 모던 영화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홍상수가 말하려는 주제 역시 늘 장르영화 서사의 틀에서 비켜나 있을 뿐 아니라, 짧은 시간과 비좁은 공간 내에서 공허한 담론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홍상수의 영화들 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는 캐릭터간 욕망이 가장 비열하게 드러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속된 말로 개새끼들이나 미친년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남성/여성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란 힘들다. 그만큼 로맨스는 멀리 떨어져 있고, 갈등이 시작될 무렵 또 다른 '관계'가 끼어들기에 허탈하기만 하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그렇게 단정짓고 넘기기에는 모호하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의혹이 남는 이상한 영화이다. 정말 홍상수 영화의 여성캐릭터는 남성 주인공의 하위기재로 움직이고 있는가? 홍상수 영화에서 욕망이 투영되는 방식은 남성캐릭터와 여성캐릭터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 글은 그러한 질문을 토대로 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와 <해변의 여인>의 여성캐릭터 다시보기" 라고 할 수 있다.
1.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선화는 왜 두 남자 사이에 끼워져 있는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선화와, <해변의 여인> 문숙은 각각 두 남자와 관계 맺게 된다. 얼핏 보기에 선화와 문숙은 ‘두 남자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들은 모두 자기 의지대로 두 남자를 경유한다. 그리고 그녀들도 <극장전>의 주인공 동수처럼, 그녀들은 가감없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떠나는 남자를 쳐다보며 다시 생각하거나<여자는...>, 또 다른 관계를 맺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밟아야 한다<해변의 여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선화(성현아)는 헌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라는 인물 사이에 끼워진 인물이다. 선화는 헌준의 회상으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사실 이미 그녀의 과거 이미지는(헌준과 문호의 기억을 통해 투사된) 중국집 여종업원과, 중국집 손님이자 창밖의 여자의 이미지를 통해 미리 예시되어 등장한다. 특히 중국집 여종업원은 헌준의 회상에서 나타난 선화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모습이며, 창밖의 여자는 마치 헌준과 문호가 예전의 선화를 현재 시점에서 기억해 낼 때 ‘과연 선화는 지금 저런 모습일까’라고 상상하는 이미지이다. 실로 이 영화의 두 번째 씬에서 중국집 여종업원은 헌준이 회상하는 선화와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예전 선화의 이미지처럼) 나이도 어려보이고, 창밖의 여자는 좀 더 나이가 든 성숙한 모습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두 남자가 각각 선화를 회상하기 전 바라보는 대상은, 중국집 여종업원을 거친 후 바라보는 창밖의 여자다.
이 영화에서 주안점은 ‘선화’의 이미지다. 헌준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감독이며, 문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선후배이자, 대학시절 선화와 관계했던 남자들인데 영화에서 선화는 이들을 통해 호출된다. 그래서 선화는 헌준과 문호가 대상화시키는 이미지처럼 보일 수 있다. 영화에서 선화는 독립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두 남자(헌준과 문호)를 통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화에 대한 실마리는 이미 중국집에서 볼 수 있는 두 여인을 통해 던져져 있지만 이는 선화가 두 남자의 회상으로 등장한 이후에 인식할 수 있다. ‘선화’라는 실체는 모방된 이미지의 두 실체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서 볼 수 있는 문호의 제자(여학생)까지 포함해 4가지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온전한 실체와 시뮬라크르의 실체들 모두를 하나의 ‘선화’로 통일해 본다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여성캐릭터는 두 남성캐릭터를 위한 욕망의 대상으로 그 집착의 강도가 얼만 큼인지 알 수 있다. 다만 두 캐릭터를 조종할 수 있도록 설정된 것은 온전한 선화(성현아)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대상화된 이미지로 볼 수 있는 선화는 어떤 인물인가? 그녀는 헌준의 배신 때문에 (문호의 말에 의하면) ‘변화’하긴 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인지 명백하지 않다. 헌준의 회상이후(헌준이 유학을 위해 출국하기 전 선화를 마지막으로 본 후) 그 다음 문호의 회상에서 알 수 있는 선화는, 문호까지 싸잡아 “남자는 다 똑같애, 당신도 그 새끼도 다 개새끼들이야”라고 말한다. 문호가 헌준을 경멸하는 이유는 “조강지처 버리고 도망간” 이유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호가 헌준을 질투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그래서 문호는 선화를 탐했던 것일까). 문호의 회상에서 그는 당시 선화를 좋아했었다. 게다가 헌준의 회상에서 볼 수 있었듯 문호는 ‘도망가는’ 헌준 앞에 선화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이 세 인물 간의 관계는 지극히 거짓과 불신, 배신으로 똘똘 뭉쳐있다. 선화가 일편단심 헌준만을 사랑했을까? 헌준의 마지막 말대로 “기다릴 수 있지?”라고 말했듯 몇 년 동안 그를 기다렸을까?
문호의 기억으로 보자면 생각보다 쉽게 그녀는 문호와 건조하지만 명백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선화의 체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욕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선화는 문호에게 ‘국화꽃’을 선물 받은 후 그의 애무를 받아들이지만 섹스는 거부한다. 그러나 이틀만에 그와 섹스를 하게 된다. 위의 두 번째 그림이 바로 문호와 섹스하기 전 모습인데, 그녀는 헌준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긴 생머리를 천박한 파마머리로 바꾸고 나서야 문호와 성관계를 맺게 된다. 문호 역시 헌준의 기억처럼 선화의 생머리 이미지를 동경했던 것 같다. 그녀가 머리를 어떻게 한 후 등장하자, 못마땅하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머리를 어떻게 했네요”라고 툭 내뱉는다. 결국 문호는 선화를 원해서 갖긴 했지만, 선화 역시 그를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선화는 문호의 집에 들어가기 전 “아무도 없으면 더 좋은데”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둘 간의 싱거운 섹스가 끝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 그녀가 “매일 그러는 건 아니죠?”라는 말을 하자, 그는 “다리에 털이 많네요”라고 비아냥거리듯 응수한다.
결국 헌준과 선화도, 문호와 선화도 결실은 없이 끝이 보이는 관계를 마무리 짓는다. 선화 역시 헌준을 만날 때, 다른 남자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녀가 눈물 흘리며 헌준을 기다린다고 해도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선화 말대로 헌준이든 문호든 다른 남자들이든 “다 개새끼들”이라지만, 그러면 그녀의 욕망이 단지 헌준의 배신으로 급격히 변질된 것일까?
그러면 왜 선화는 자신의 집에 온 두 남자를 하룻밤만에 깔끔히 정리해버리는 것일까? 선화의 집 시퀀스는 두 남자가한 여자를 욕망하기 보다는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농락하는 시퀀스이다. 기본적으로 두 남자는 선화를 욕망하고 있는데, 선화는 두 남자를 온전히 욕망하지 않는다. 헌준과 자고 나온 후 아무렇지 않게 문호에게 구강섹스를 해주는 선화의 얼굴은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문호의 만족스러운 표정만이 비쳐질 뿐이다. 그 후 둘은 다른 방에(헌준이 자는 방이 아닌) 손을 잡고 들어간다. 그리고 아침에 먼저 일어난 선화는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찌개 맛을 보고 있다. 선화가 두 남자에게 일말의 감정이 남아있었다면,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영화는 선화의 메마른 욕망의 놀이가 두 남자의 기억 속에서 호출되고, 현재형에서 선화의 관점으로 정리하는, 애초부터 결실없는 관계임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또한 두 남자(혹은 대다수의 남자들)가 이상화하는 여자의 전형성을 선화라는 이미지에 빗대어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은 결말부 문호의 욕망으로 (부질없이) 다시 실현되는 듯하지만(문호가 놀이터에서 만난 빨간 목도리의 여학생) 다시, 비현실의 현실 속에서 싱겁게 무산되고 만다. 문호는 선화와 헌준과 산에 오르기 전 놀이터에서 만난 그 여학생에게서 예전의 선화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 진짜 선화와 헌준과의 동행에 동참하지 않는다. 이제 문호는 헌준과도, 진짜 선화와도 더 이상 관계 맺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호의 또 다른 국면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헌준도, 선화도 이제 그 상태에서 멀고 먼 관계 이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화는 떠나버린 문호를 빈 쥬스병의 흔적으로 직감하고, 화난 헌준이 가버리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멀고 먼, 쉬운 관계를 정리한다. 선화가 애타게 원했던 헌준은 이제 가식이든 진심이든 다시 돌아와 그녀 앞에 취기를 앞세워 무릎을 꿇었지만 하룻밤의 허상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문호의 욕망으로 옮겨가 그 허상을 다시 한 번 깨지게 함으로써 또 한 번 ‘강조’된다. 리바이벌된 예전의 생머리 선화이미지가 빨간 목도리 여학생에게 옮겨지지만 역시 그 이상(理想)은 처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호는 학교에서 오르내리는 여학생과의 입소문을 경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욕망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헌준과 문호가 욕망했던 그런 진짜 선화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마치, 팜므파탈처럼 이상을 깨뜨리고 그 언저리에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배신을 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남성이 욕망하는 여성캐릭터의 이미지를, ‘두 남자 사이에 끼인 채’ 등장시켜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여성캐릭터 자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다. 여기서 선화가 오롯이 남성주인공들의 대상화된 캐릭터로 위치짓는 인물이라면, 그녀는 왜 다시 등장하여 그들에게 하룻밤동안 한꺼번에 자신의 집에서 그들의 욕망을 응수해 주었는가? 선화는 두 남자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현재형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어떤 이유도 없다. 이 영화는 그런 맥락에서 두 남자 캐릭터를 먼저 등장 시킨 후 ‘그녀를 찾아가게 되는’ 트릭을 사용한 것이다. 마치 여성은 남성들이 순수했던 시절 욕망했던 이미지처럼 등장해, 전혀 다르게 변모한 모습으로 두 남자 사이에 놓여 있다. 두 남자가 선화와 단지 ‘자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 선화를 소환했다면 그녀는 변모한 이미지로 등장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두 남자는 기대치가 무너지고, 여자는 싱거운 만남으로 욕망의 합리화를 반복하게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 속 여성캐릭터가 단지 남성들에 의해 ‘거쳐 가는 이미지’로 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오히려 여성캐릭터들은 남성들이 욕망하는 이상을 만들어주고, 욕구를 채우는 것 이상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방패막을 설정한다. 그럼으로써 이상화된 여성이미지는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변모시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vovovd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