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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에서 꿈은 매번 내러티브가 진행되는 동안 이음매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그의 첫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에서, 보경의 꿈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꿈 시퀀스가 시작되기 전 숏에서 보경은 그녀의 친구가 운영하는 약국 안쪽, 친구의 아들이 앉아있는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그 다음 숏은 그녀가 잠이 드는 장면이 아니라, 보경 자신의 영정 사진이 클로즈업된 숏이다. 물론 그 시퀀스가 꿈 장면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꿈 시퀀스가 끝나고 난 후 보경이 이불위에서 잠을 자다 깬 장면을 통해서다. 꿈 시퀀스에서 갑자기 등장한 보경의 영정사진, 그리고 보경, 그녀의 남편 동우, 보경과 내연관계인 효섭, 그를 좋아하는 민재가 그녀의 아파트에서 한 자리에 모일 때, 이상하기는 하지만 꿈이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수 있다. 난데없지만 미리부터 보경의 잠자리는 지시된 바 없고, 네 등장인물은 속이거나 숨겨진 떳떳하지 못한 관계로 얽혀있어 보경의 죽음으로 인해 급작스레 소급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결국 이 시퀀스는 짧지만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채 보경의 꿈으로 남게 된다. 홍상수의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꿈은 각각 영화 속 현실과 결코 동떨어진, “단지 꿈일 뿐”으로 그치지 않고 내러티브와 캐릭터와 연계된다. 그래서 꿈장면은 영화 내부적으로 내러티브의 반전이기도 할 뿐 아니라, 새로운 국면으로 착각될 만하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와 <극장전>(2005)에서 역시 꿈은 어김없이 주인공의 무의식적 욕망이라든가, 해석하기 힘든 난해함으로 등장한다. <여자는..>에서 문호가 학교 운동장 놀이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학생들과의 에피소드는 역시 <돼지가..>와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트릭처럼 작용하고, <극장전>에서의 1부(영화속 영화)에 등장한 여관-꿈 장면 역시 모호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밤과 낮>에는 성남이 꾼 두 번의 꿈 장면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성남이 유정의 발가락을 탐하는 꿈이고, 두 번째는 성남이 서울 집에 돌아와 꾼 꿈이다. 두 번째 꿈은 성남이 파리에서 머문 기간을 통째로 뒤엎는 역설적 의미를 품고 있다. 꿈 시퀀스에서 아내역할로 나오는 여자는 파리에서 영호가 그토록 애정을 표시했던 이유정(박은혜)의 미술학교 동료 지혜(정지혜)다. 그런데 성남은 그녀를 단 한번밖에 본적이 없다. 성남은 그녀를 통해 유정이 보여준 그림들과 학교 생활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유정에 대한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집착적이다. 임신했을지도 모르는 유정을 떼어내고 서울로 돌아온 성남이 아내 성인(황수정)과 잠든 채 꾸는 꿈. 왜 하필이면 꿈에 유정이 등장하지 않고 지혜가 등장한 걸까. 그리고 그녀는 왜 뜬금없이 성남의 아내가 되어 등장하는가. 그녀가 성남에게 비열한 욕지거리를 듣는 장면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민재가 효섭에게 손찌검과 욕지거리를 듣는 장면은 꽤 유사하다. 그러나 분명 변화된 성질을 보인다. 후자는 현실이고(그만큼 직설적이고) 전자는 꿈(무의식이 투영된 상상된 것)일 뿐이다. (허문영은 성남의 꿈에 지혜가 아내로 등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짚어둘 것이 있다. 이러한 꿈들은 주인공이 결코 밤에서 아침시간으로 이어지는 스탠더드한 취침시간에 잠을 자면서 꾼 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홍상수 영화에서 매번 등장하는 꿈은 내러티브를 잠깐이나마 교란시키는 성격을 띠고 있다. 주인공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그 다음 날의 일을 개의치 않고), 밤에는 자고 낮에는 깨어있는 일상생활을 보내지 않는다. <밤과 낮>에서 성남이 성인과 침대에 누워있을 때는 시퀀스의 흐름상 밤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그들은 ‘밤=잘 시간’ 의 룰을 지키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다. 성남의 꿈은, 그가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와 취하는 휴식이 아내의 거짓말과 그의 무의식적 욕망이 엉겨붙어 있는 찜찜한 소격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꿈은 파리에서의 도피 로맨스 역시 결정적으로 변질시킨다. 나는 짧지 않은 성남의 꿈 장면 때문에 긴 내러티브를 차지했던 유정과의 탐닉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과장된 해석일 수도 있다. 꿈은 꿈일 뿐이니까. 그러나 꿈 꾸고 난 후 틸트 업 되는 “구름 그림”에서 정말로 나는 비극을 맛보았다. 우리는 꿈 장면을 마주하고도 성남의 순진했던,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기억한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성인의 거짓 임신에 대해 성을 내지 않고, 파리와 여자를 청산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홍상수의 영화가 항상 그래왔듯, 성남이 밤에서 낮으로 이행하는 시간적 휴식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점은 홍상수 영화 전체를 특징짓는 비이상적 시간관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은 공간관념 역시 존재한다. 바로 ‘집’의 의미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집은 항상 ‘불안’과 ‘불완전함’ 그리고 안식처의 반대말이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 등장하는 집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어쨌든 <밤과 낮>에서 성남이 꾼 꿈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폭신한 침대위에 있는 구름 그림이 더욱 더 성남의 도피 여행을 답답하게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반대로 피상적 의미의 시공간 관념에서 벗어나, 홍상수의 영화를 즐기면 그것은 매력이 될 수도 있다. 괘씸하지만 허영으로 엉겨붙은 인간의 욕망. 거기서 낯선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과연 성남은 자신의 구름에서 헤어나올 수는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그의 꿈은 안쓰럽다. 홍상수의 시공간은 밤에서 낮으로, 낮에서 밤으로 이행하지 않는 욕망의 부유물과 같기 때문이다. (vovovdh)